- 50여 주제로 나눠 책장 구성
- 신간·구간 구분 않고 책 선별
- 취향·라이프스타일 발견하는
- 책 편집숍 같은 정체성 추구

“우리 서점의 ‘방향성’은 개인의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거예요. 책을 매개체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앞으로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라는 이름도 이러한 고민을 담았어요.”

에머슨 퍼시픽 브랜드개발팀 이호진 수석은 “이터널 저니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좇기보다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발견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kookje.co.kr

부산 기장군 복합리조트 아난티 코브 안에 위치한 서점 이터널 저니는 ‘호텔 속 서점’으로 지난 7월 오픈과 동시에 지역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특히 기존 대형서점과 달리 여유로운 책장과 주제별 진열, 북카페 같은 분위기가 주효했다. 아난티 코브 운영사인 에머슨퍼시픽의 브랜드개발팀 수석이자 이곳을 총괄하는 이호진(여·39) 수석은 “책장 앞에서조차 마음의 여유가 없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서점처럼 많은 책을 빽빽하게 꽂기보다는 표지가 보일 수 있게 눕혀 진열한 것도 이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책장 구성도 남다르다. 신간 코너는 150여 개의 책장 가운데 3개뿐이고 나머지는 인물, 바다, 환경, 책에 대한 책 등 크고 작은 50여 개의 주제로 분류되는 책으로 채웠다. 책은 주제별 관련 작가나 전문가, 번역가 등의 아이디어를 모아 구·신간에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선별했다. 책 편집숍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가령 ‘전쟁’ 코너의 경우 전쟁사를 설명하는 서적뿐 아니라 ‘전쟁의 문헌학’ ‘전쟁의 물리학’ ‘무기의 그늘(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등 여러 분야의 책 100여 종을 한곳에 모았다. 이러한 책장은 관심의 확장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코너를 안 만든 데도 이 서점의 철학이 담겼다. 성공이나 높은 연봉, 내 소유의 집과 같은 것은 개인의 ‘취향’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수석은 “대부분의 사람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이를 좇고 또 집착하게 된다. 이터널 저니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작가 김민정)이라는 시집 제목과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한다. 돈이나 집을 구하는 데 쓸모는 없더라도 각자의 취향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찾아가는 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여러 취향의 책장을 제공하기 위해 거의 한 달에 한 책장씩 주제를 바꿔가고 있다. 100만 가지 취향이 있다면 100만 가지 책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책장을 쭉 살펴보면 책이 움직이는 게 보여요.” 그는 책이 판매되고 다른 책이 채워지는 모습을 책이 움직인다고 표현했다. “움직이지 않는 책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이터널 저니의 책은 정말 고르게 나가고 있죠. 그만큼 사람의 취향이 다양하고, 우리가 제안한 책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매출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꾸준히 책이 팔리기는 하지만 실용서가 없어 일반 서점보다 수입이 적을 게 분명하고, 경영 철학도 좋지만 운영비에 허덕이다 금세 문을 닫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이 수석은 웃으면서 “문을 열기 전엔 적자를 예상했는데 다행히 흑자 경영을 하고 있다”며 “에머슨퍼시픽 이만규 대표가 단순히 하룻밤 머물 공간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한다는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기획한 곳이기 때문에 이익과 관계없이 앞으로 더 다채로운 시도를 선보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터널 저니에 대한 이 대표의 애착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서점 작명부터 책장 구성, 지역 작가의 작품을 따로 코너로 만들어 선보이는 것까지 이 대표의 아이디어다. 파주출판도시에서 12년을 근무하다 이곳으로 옮긴 것도 이 대표의 서점에 대한 철학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다. “사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문을 연 게 아니에요.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촉박하고 걱정이 많았죠. 그때 이 대표님이 먼저 서점 문을 열고 책장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멋지지 않겠냐고 얘기해줬어요. 영국의 오래된 서점들이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과 히스토리가 쌓여 멋진 공간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터널 저니는 지금도 채워나가는 중이에요. 이곳을 찾는 분들도 책장마다 호기심을 갖고 스토리를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최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