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최초로 이사직 맡아
- “술에 너무 관대한 우리 사회
- 심각성에 더 경각심 가져야
- 중독자 치료 예산 늘리고
- 부처별 정책 일원화 필요”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적 있습니까.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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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김성곤 교수는 “오는 11월 벡스코에서 열리는 국제중독의학회 연차대회는 한국이 세계 중독 치료 연구를 주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서순용 선임기자 |
술 마신 다음 날 ‘블랙아웃’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 경험이 있다면 뜨끔할 얘기다. 국내 알코올 중독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부산대 김성곤(의학전문대학원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를 중독으로 진단했다.
‘부산이 한국 알코올 중독 연구의 중심지’라는 김 교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부산경남중독연구회를 출범(1995년)하고,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관련 학문과 연구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70여 편의 논문을 냈으며 ▷한국적 알코올 중독 위험 유전자 분석 ▷아시아 최초 약물 유전자 치료 ▷매운 음식 선호와 중독 치료의 상관관계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알코올 중독 연구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김 교수는 최근 알코올중독전문국제학회(ISBRA) 이사로 재선임되면서 세계적 수준의 학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ISBRA 이사진은 전 세계에서 엄선한 12명으로 구성되는데, 김 교수는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선출된 데 이어 이번에 연임이 결정됐다.
그의 학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하나는 ISBRA 산하 미국알코올리즘학회(RSA) 공식 학술지(ACER)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알코올 중독 연구를 주도하는 미국에서 학술지의 편집위원이 되려면 새로운 논문을 평가할 수 있는 학식과 트렌드를 읽는 감각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 50여 명의 편집위원 가운데 아시아인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처럼 꾸준한 연구와 높은 성과로 세계적 인정을 받는 그지만 알코올 중독 위험에 둔한 한국 사회와 정부 정책에 힘이 풀릴 때가 많다.
“우리나라는 술에 대한 두려움이 부족한 사회입니다. 술 마시고 필름 끊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죠. 굉장히 위험한 신호인데도 말입니다. 회식문화가 특히 그래요. 과음 때문에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을 줘도 관대합니다. 오히려 상사는 충성스럽다고 여기죠. 술에 관대한 한국 사회는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정책에도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부산알코올중독치료센터가 운영비로 지원받는 연간 예산은 직원 3명의 인건비 포함 1억4000만 원(국·시비)이다. 캠페인 등 1차적 예방 활동 외에 실제 환자를 치료하기에는 빠듯한 수준. 소득별 치료법 연구 등 여러 사업을 따낸 덕분에 겨우 5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직원 11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그나마 이곳이 전국적으로도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중독 치료 전문병원이 생기는 등 20년 전 단순 입원·격리했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요. 중독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국무총리 산하에 통합중독위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는 부처별로 알코올 게임 도박 마약 등이 나뉘어 있는데, 예산을 한 곳에 지원하고 정책 효율성을 높여야 합니다. 더는 경제 위주의 정책에 국민 건강이 밀려서는 안 돼요.”
김 교수는 오는 11월 3~6일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20차 국제중독의학회(ISAM) 연차대회 준비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서 ISBRA가 연구 중심의 학회라면 ISAM은 실제 치료적 접근을 핵심으로 하는 단체다. 세계 50개국에서 알코올뿐 아니라 비만 게임 인터넷 등 각종 중독을 연구하는 인력 800여 명이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주제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이번 회의를 통해 세계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한 많은 논의와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한국이 중독 치료와 재활, 정책 등에 있어 세계를 주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