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과 동물만 감염 전염병
- 예방 백신 없어 치사율 100%

- 1월 몽골·4월 캄보디아 발생
- 한국도 이제 안전지대 아냐
- 바이러스 유입차단 힘모아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위험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만에 하나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되면 그 피해는 2010년 구제역 사태보다 심각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정석찬 본부장이 최근 세종시에 있는 본부 회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위험성과 예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이하 방역본부) 정석찬(59) 본부장은 지난해 11월 취임한 이후 최근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겨울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여유를 찾을 만도 하지만, 정 본부장 앞에는 커다란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다.

ASF는 돼지과(Suidae) 동물에만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출혈 전염병이다. 예방 백신이 없어 치사율이 100%에 이른다. 이 때문에 ASF가 국내에 유입되면 양돈 산업 등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으로 우려된다.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가 지난달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ASF의 국내 유입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방역본부는 1999년 설립된 농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최근 세종시 방역본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한 정 본부장은 ASF를 막아야 하는 이유와 공항·항만에서의 검역 상황, 국민이 지켜야 할 예방법 등을 전파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ASF는 돼지 콜레라인 ‘돼지열병(CSF)’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전염병입니다. 백신이 개발된 CSF와 달리 직접적인 치료약이 없습니다. 지난해 8월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에서 ASF가 발생했고 지난 1월과 2월에는 각각 몽골과 베트남에서, 4월에는 캄보디아에서 발병했습니다. 한국이 ‘ASF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ASF는 지난해 8월 이전까지 주로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발생했다.

정 본부장은 ASF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큰 경로로 ▷발병 국가를 다녀온 한국 여행객의 현지 축산물 반입 ▷외국인 근로자의 자국 축산물 한국 반입 ▷국제 우편물을 통한 발병 국가 축산물 불법 유입 ▷중국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국내 농가 접촉을 꼽았다.

그는 “80도 이상에서 30분간 열처리를 하면 ASF 바이러스가 죽지만, 햄과 소시지 등은 그 이하 온도에서 주로 가공된다”며 “그렇게 되면 ASF 바이러스가 죽지 않고 살아 있기 때문에 축산물을 통한 국가 간 전파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SF 발생 국가를 방문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예방법이지만, 가더라도 현지 축산 농가는 방문하지 말아야 한다. 귀국할 때에도 축산물을 반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ASF가 국내에서 발생하면 2010년 경북 안동발 구제역 사태 때처럼 양돈 산업은 회복되기 힘들 정도로 피해가 클 것입니다. 우리 정부도 (국내 발생 즉시)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 이후 한국은 무역 규제 대상이 됩니다. ASF를 선제적으로 예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2010년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국내 축산 농가는 3조 원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당시 300만 마리 이상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지금까지도 국내 축산업 역사상 가장 피해가 컸던 구제역으로 인식된다.

다만 그는 ASF 예방법을 철저히 준수하되 지나친 공포감은 갖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설령 우리나라에 ASF 바이러스가 유입돼도 농가에서 소독 등 차단 조처만 제대로 하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방역본부를 포함한 당국이 공항·항만 검역 등에 총력을 쏟는 만큼 국민도 ASF 발병 국가의 축산 농가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 유입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남 합천 출신인 정 본부장은 경북대 수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수의학 박사)을 졸업했다.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에서 근무한 뒤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농림축산검역본부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방역본부를 이끌고 있다.

이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