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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최근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고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탓입니다. 고문과 폭행으로 사건을 조작한 경찰을 30년이 지나 고소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5일 오후 만난 고호석(55·거성중 교사) 전 전교조 부산지부장은 이날 오전 부산지검에 1981년 부림(釜林)사건 당시 자신을 비롯해 14명을 고문·폭행한 경관 2명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본지 지난 5일자 9면 보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림사건은 5공 시절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 1981년 7월 초 당시 부산경찰청이 부산지역 양서협동조합을 통해 사회과학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 22명을 최장 두 달간 영장 없이 불법 구금한 뒤 고문·폭행해 조작한 사건이다. 당시 김광일,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변론을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고 교사는 대동고에 재직 중이던 1981년 8월 2일 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영문도 모른 채 모처로 끌려갔다.
"숙직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어요. 갑자기 몇 명이 나타나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부산 중구 중앙동 부두길 근처에 '내외문화사' 간판을 달고 있던 부산경찰청 대공분실이었습니다."
첫날,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한 마디에 "역시 두목이라 간이 크군"이란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5, 6명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맞고 구토했지만 '신고식'에 지나지 않았다.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만 36일간 "그만 죽여 달라"고 할 만큼 끔찍한 고문과 폭행·협박이 반복됐다.
"고문 과정에서 엄지 발톱이 빠지기도 했지만 저는 정도가 심한 편이 아니었어요. 팔과 다리 사이에 곡괭이를 넣어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무차별 구타하는 일명 '통닭구이'고문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칠성판에 누운 채 전기고문을 당하기도 했죠."
당시 고문과 폭행으로 사건 조작에 가담한 경관들은 서로를 '전무' '상무' '부장' 등으로 불렀다. 당시 '부장'으로 불리며 숱한 고문·폭행을 자행했던 송모 씨도 이번에 고소하려 했으나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대상이 줄었다. 고 교사는 피고소인 중 한 명으로 당시 전무로 불렸던 이모 부산경찰청 대공분실장의 소름 돋는 협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가죽장갑을 끼고 들어와 가슴을 툭툭 치며 '이렇게 50대쯤 때리면 폐가 삭아서 몇 달 안에 죽는다'고 협박하더니 '근처 바다에 돌 매달아 던지면 아무도 모른다'는 말도 했어요. 이런 사람이 어떤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시의원 후보로 출마하다니…."
형법상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는데도 고문 경관들을 고소한 이유가 궁금했다.
"피해자들이 이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 위반 전과자로 취급받습니다. 반면 고문·폭행 경찰과 사건을 지휘한 검사는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어떤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습니다.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