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모산, 지리산의 겨울이 깊어간다. 주능선을 온통 은빛으로 치장한 눈꽃도 그 순백의 깊이를 더해간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지리산의 겨울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름답기로 덕유산의 상고대라면, 장쾌하기로는 지리산 설능이 으뜸이다. 1천8백m고지의 능선을 따라 활짝 눈꽃을 피운 고사목과 운해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많은 산악인들이 한겨울 지리산 종주를 동경한다. 그러나 지리 종주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산 위에 눈이 내렸는지, 눈 위에 산이 솟았는지 모를 정도의 많은 눈이 앞길을 가로 막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같은 심설이 산꾼들에게는 겨울 지리산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낭만과 스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 산행은 지리산 설능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구간을 걸어보자. 지리산 천왕봉에서 제석봉, 장터목산장에 이르는 1.7㎞ 구간. 이곳은 겨울 지리 능선의 백미로 손꼽히는 곳이다.
산행코스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매표소~야영장~칼바위~삼거리~망바위~로타리산장~법계사~개선문~천왕봉(1,915m)~통천문~제석봉~장터목산장~유암폭포~붉은광장~삼거리~칼바위~중산리매표소’로 이어진다. 산행시간은 7시간 안팎. 적설량, 기상에 따라 2시간 정도 더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자.
진주에서 중산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중산마을회관 옆 계단을 따라 오르면 중산리 신상가로 가는 도로를 만날 수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주차장과 상가를 지나 매표소다. 승용차를 가져 가면 이곳에서 곧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매표소를 지나 200여m쯤 오르면 삼거리다. 삼거리에는 야영장 관리소, 산악인 허우천 씨를 기리는 비석, 화장실이 위치해 있다. 왼쪽으로 꺾어 비석 옆을 지나면 천왕봉 가는 길이 열려 있다. 천왕봉까지 5.4㎞.
초입은 돌부리가 가지런히 정돈된 길이다. 10여분 가량 걸어가면 철계단을 지난다. 잎을 모두 떨군 쪽동백나무 비목나무 벚나무 등이 오는 봄을 기다리며 숨 죽이고 있다. 숲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칼바위다. 칼바위 옆 안내판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에 얽힌 전설을 전해 주고 있다. 100여m 오르면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은 천왕봉, 왼쪽은 장터목산장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틀어 철다리를 건넌다. 급경사구간의 돌계단이 시작된다. 40분 정도 숲길을 치고 오르면 풍채 좋은 바위가 길을 막는다. 바로 ‘망바위’.
30여분 뒤 헬기장을 지나면 로타리산장과 법계사가 눈앞에 나타난다. 법계사를 에돌면 다시 경사가 급해진다. 빙판구간이 많아 발끝에 신경을 모아야 한다. 일부 바위구간에는 로프가 내려져 있어 산행을 돕는다.
50여분이면 바위가 양쪽으로 선 ‘개선문’에 닿는다. 개선문을 지나면서 경사가 잦아진다. 잠시 숨을 고르던 산길은 천왕샘을 앞두고 크게 솟구친다. 천왕샘에서 천왕봉까지는 300m. 그러나 겨울철에는 바람이 센데다 눈이 발을 붙잡아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정상까지 15분은 족히 걸린다. 길게 늘어내려진 로프를 붙잡고 능선 위로 올라선다. 왼쪽으로 고개 돌려보자. 천왕봉 이정표가 늠름하게 서있다.
천왕봉. 남한에선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다. 높은 데서는 멀리 볼 수 있는 법. 남으로는 광양만이, 북으로는 덕유산자락이 손에 잡힐듯 내려앉아 있다.
하산은 장터목산장 쪽이다. 지리의 눈세상은 천왕봉에서부터 시작된다. 내리닫는 주능선을 따라 좌우로 설화가 활짝 펴 있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도 서설로 하얗게 변했다. 30여분이면 고사목으로 유명한 제석봉에 닿는다. 제석봉 인근은 불법 벌목을 일삼던 이들이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질러 황폐화된 안타까운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구간은 눈발이 자주 휘날리는데다 기상마저 불규칙해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제석봉에서 10여분만 더 가면 장터목산장이다. 장터목산장은 겨울철에도 주능선을 종주하는 이들로 붐빈다.
하산은 유암폭포 쪽이다. 중산리까지 5.3㎞ 이정표가 갈길을 알려 준다. 100여m 아래 식수대를 지나면 길은 뚜렷해 진다. 30여분 내려오면 나무다리인 ‘명성교’다. 병기막터를 지나 20여분 더 길을 이으면 유암폭포가 멋드러진 빙폭을 드리우고 있다. 아쉽게도 유암폭포 일대는 지난 98년 집중호우 때 경관이 많이 망가져 버렸다.
10여분 내려오면 홈바위교가 계곡을 건너고 있다. 홈바위교 아래는 붉은색 돌이 너덜을 이루고 있다. 일명 ‘붉은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98년 홍수 때 상류에 있던 붉은 돌들이 휩쓸려 내려오면서 이 지역에 깔렸다. 눈이 많이 온 날에는 길 찾는데 애를 먹을 수 있다.
‘지리 04-03’ 표지목을 지나면 비로소 잔설만이 희끗하다. 양달이어서 눈이 많이 온 다음날을 제외하고는 아이젠을 신지 않아도 된다. 계곡을 따라 30여분 신나게 내려 닿는다. 철망문을 지나면 천왕봉 갈래길이 되었던 삼거리로 되돌아온다.
칼바위를 지나 되내려간다. 중산리매표소 아래 버스종점까지 50분이면 충분하다.
/ 글·사진 박병률 기자
------------------------------------------------떠나기 전에
중산리~법계사~천왕봉은 지리산 정상을 밟는 최단코스다. 가장 널리 알려진 등반길로 당일 산행을 주로 한다. 그러나 눈이 깊은 겨울철에는 그리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8부 능선부터 심설이 쌓이는데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운무가 자주 낀다. 이 때문에 중산리 상가에서 1박을 한 뒤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코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도 많이 애용한다. 장터목산장(055-973-0399)에서 1박을 한 뒤 정상길을 밟는 것이 정석이다. 산장에 묵기 위해서는 산행전 예약이 필수다.
지리산은 기상 여건이 좋지 못할 경우 관리소에서 산행객들을 통제한다. 산행 전 현지의 상황을 먼저 알아봐야 한다. 중산리분소 055-972-7785. 매년 11월 15일~12월 15일, 2월 15일~5월 15일 봄철 산불예방기간에는 중산리~칼바위~법계사까지만 산행이 가능하다.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 문의=만어산장 245-7005
----------------------------------------------교통편
부산 사상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주행 버스를 탄다. 약 10분 간격으로 있다. 요금 4천9백원. 1시간20분 소요.
진주에서 중산리행 버스로 갈아탄다. 오전 6시50분, 7시50분, 8시45분, 10시 등에 있다. 요금 3천5백원. 소요시간 1시간10분 정도.
부산에서 중산리행 직행버스를 타도 좋다. 단 이 버스도 진주에서 머문다. 부산 출발 오전 6시45분, 8시51분 등. 요금 8천9백원. 3시간 소요.
중산리에서 진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6시10분, 7시, 7시35분 등에 있다.
중산리 버스 종점상회 055-972-1122. 진주에서 부산 막차는 밤 9시10분이다. 이후는 심야버스를 이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