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왕관'눌러쓴 채 당당한 山勢 과시

산에는 이미 봄이 오기 시작했다. 세상의 IMF 한파와는 아랑곳없이 산은 이미 몸속에 간직하고 있던 봄기운을 발산하고 있다. 정상부근의 산봉우리마다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있지만 오는 봄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이번 산행은 1천m가 넘은 산이 10여개나 되고 산세가 험한 산군(山群)들이 운집해 있는 경남 거창의 두무산(1,038m)을 택했다. 두무산은 밑에서 올려다보면 정상 언저리에 늘상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두무산은 겨울산행의 끄트머리와 초봄산행의 중간쯤에 있어 산행 묘미가 더할 나위없이 좋다.

산행코스는 양지마을 - 수포대 - 해인농장 - 두무산 정상 - 산판도로 - 산제저수지 - 관수사 절 - 묘산초등학교로 잡았다.

산행시간은 4시간 가량이나 부산에서 거창까지 가는데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다 산행초입 마을까지 가는 완행버스가 자주 없으므로 시간에 맞춰 일찍 서둘러야 한다.

양지마을 입구에서 황토길을 따라 10여분 걷다보면 작은 정자가 나온다. 수포대다.그 왼쪽에 계단식 계곡이 만들어져 있는데 가까이 다가서 보니 얇게 얼은 얼음 밑으로 봄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사방댐이다. 여기서부터는 산길이 시작된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경쾌하다. 200m 쯤 가다 작은 계곡을 건너 오른쪽 산길을 방향을 틀어 올라야 한다. 주능선을 타기위함이다. 산행로를 찾기가 힘들어지면 국제신문의 산행 안내리본을 보면 된다. 곧이어 묘지 3기를 통과하면 소로로 바뀌나 등산길은 명확하게 보인다. 잡목덤불을 헤쳐가면서 왼쪽능선에 바짝 붙는다는 느낌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몇차례 하다보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광활한 목장지대가 나타난다.

세상살이에 찌든 마음이 시원스레 씻겨 내려가면서 속이 후련해진다. 목장지대라서 그런지 바닥에 아직 눈이 녹지 않고 있다. 발목까지 눈속에 쏙쏙 잠긴다. 잠시 동심의 세계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산행은 쭉 이어진 능선을 바라보며 농장 오른쪽 길을 계속해서 오르면 된다. 눈이 많이 녹은 자리는 땅이 질퍽질퍽하다. 잡목터널을 통과하게 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은 버리고 오른쪽 주능선을 타야 한다. 목장을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은 20분.

지금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올 겨울 산꾼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 하얗게 미소짓고 있다. 칼바위라 불리는 급경사지대를 지나야 한다. 정상까지는 1시간이 소요되므로 힘을 적당히 분배해야 한다. 클라이밍 하는 기분으로 조심조심 오른다. 응달지역 잔가지에는 산고대(눈꽃)가 무수히 피어있다. 다가올 봄을 시샘해 처연한 아픔을 드러내 보이기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은 주능선에서 왼쪽으로 20여쯤 위에 있다. 남쪽으로 오도산(1,134m)이 우뚝 서있고 그 뒤로 숙성산(899m)과 합천호가 한폭의 그림을 수놓고 있다. 오도산 오른쪽에는 여인이 머리를 풀고 누워 해산하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민여봉이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듯 가파르게 솟아있다. 북쪽으로는 비학산(1,125m)과 시루봉이 능선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 보인다.

정상부근에는 점심을 할 만한 곳이 많아 이곳에서 식사를 해도 좋다. 하산길은 정상 오른쪽이다. 햇빛을 받은 잔설이 비오듯 후두둑 떨어진다. 20분 정도 잡목 오솔길을 걸으면 오도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가 다시 잡목 숲길을 지나면 어느새 오도산이 오른쪽에 서 있다. 풍광이 참 좋다.

묘지 1기를 돌아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몹시 가파르다. 신경을 써야 한다. 하산길 왼편으로 계곡물 소리가 봄을 재촉하고 있다. 봄이 오는 소리에 취한 채 30여분 내려오면 산판도로(임도)를 맞닥뜨린다. 사실상 하산길이 끝난 지점이지만 마을까지는 1시간 가량을 더 걸어가야 하므로 매우 지루한 느낌이 든다.

산제저수지의 윗 계곡물이 너무 맑아 첨벙 뛰어들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구식 방앗간의 털털거리는 소리 등 정겨운 농촌 풍경을 감상하며 관수사를 지나 묘산초등학교까지 내려오면 산행은 끝이 난다.

# 교통편

두무산은 거창 가조면에 속해 있다. 부산에서 거창까지는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여기서 가조면 수포대(양지마을)를 가려면 금천동에 있는 완행버스 터미널로 가야 한다.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서흥여객의 도리행 완행버스를 타야 한다. 오전 7시 10분, 8시 40분, 낮 12시 등 하루 6차례 밖에 운행하지 않으므로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에서 가조 IC에서 빠지거나 고속도로상의 가조휴게소에 차를 세워둔 채 양지마을로 걸어 가는 길이 있으나 이 경우 두무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왔던 방향으로 다시 내려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묘산초등학교를 하산지점으로 할 경우는 합천 거창 고령 등지로 나가는 차편이 수시로 있기 때문에 걱정 안해도 된다.


거창군 가조면사무소는 (0598) 42-0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