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사를 조성할 당시 당대 최고의 단청장(丹靑匠)이었던 명공은 승려들에게 앞으로 7일간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들여다 보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7일째 되는날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한 승려가 안을 들여다 본 거야. 그랬더니 붓을 들고 일하던 명공이 파랑새로 변해 날아가 버렸어. 이 새가 날아간 쪽이 바로 새신바위야.』

　마을 어귀서 만난 한 촌로가 새신바위에 얽힌 설화의 한토막을 귀띔해 준다. 진기한 설화와 옛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는 이같은 산은 산악동호인들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준다. 특히 산허리에 고사찰이나 이름난 서원이 자리하고 있다면 산행길은 더욱 즐거워진다. 조망이 뛰어나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들이 곳곳에 터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찾는 근교산팀이 이번 주에 다녀온 경남 산청군 와룡산~정수산 종주코스는 골이 깊고 탁트인 조망으로 산사람을 매료시킨다. 들머리에는 서원이, 하산지점엔 사찰이 자리하고 발길 닿는 곳마다 구수한 설화가 숨쉬고 있다. 와룡산 아래 자리한 서계서원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덕계 오건 선생를 모신 곳이고 정수산에 터잡은 율곡사는 신라중엽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사찰이다.

　선인들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는 이번 산행코스는 「산청군 덕촌마을~금천사~임도~와룡산(416m)~임도~헬기장~상여봉(511m)~488.3m봉(헬기장)~비득재~밤나무밭~569m봉~828.2m봉~정수산(840m)~척지마을」로 산행시간은 7시간 걸린다.

　이번 산행은 낮은 산에서 서서히 올라 높은 산에서 산행을 마쳐야 하는 코스로 산행시 체력배분을 잘해야 한다. 오랜시간 능선을 달려야 하는데다 올랐다 내려갔다 하는 구간이 많아 체력소모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다 지금은 추운 계절이라는 점과 산행시간이 길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산행초입은 산청군 산청읍 덕촌마을 금천사다. 산청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 20여분 산청우체국, 산청전화국을 거치면 2차선인 3번 국도에 닿는다. 왼쪽 함양방면 도로를 따라 300여m 직진해 내려가면 「덕촌마을」표지석을 만난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면 덕촌마을이다.

　삼거리에서 「금천사 입구」 입간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50여m 걷는다. 농협창고 못미쳐 왼쪽에 나있는 좁은 샛길로 들어선다. 「휴식대(休息臺)」 표지석에서 왼쪽 갈래길로 오르면 탁트인 콘크리트포장도로를 만난다. 여기서 016PCS 중계기를 지나 금천사까지는 30분 거리. 땀이 날 즈음 절마당에 닿는다.

　금천사에서 바라다보는 덕촌마을의 전경이 예사롭지 않다. 왕산, 필봉산, 국수봉, 지리산 천왕봉 등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대웅전 오른쪽 위에 자리한 산신각이 이번 산행의 기점이 된다. 공사가 한창이므로 마당을 가로 지를 때 절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한다.

　산신각 오른쪽으로 난 비탈길부터는 국제신문 리본이 산길을 안내한다. 바싹마른 나뭇잎과 삭정이로 뒤덮인 계곡 사이로 희미한 길이 나있다. 20여분간 잡목을 헤쳐 오르면 꽤넓은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타고 오르면서 능선으로 오를 기회를 엿본다. 10여분 뒤 4번째 커브길이 능선으로 오르는 곳이다. 길이 꺾이는 지점에서 숲으로 파고든다. 길잡이를 위해 입구 양쪽에 리본을 부착해 놓았다.

　숲은 소나무 천지다. 노송이 털어버린 누런 솔잎 융단길 위로 아삭아삭 밟히는 솔방울 소리가 경쾌하다. 20여분 능선을 타고 오르면 오르막이 살짝 꺾이는 언덕빼기를 만난다. 이곳이 와룡산 정상이다. 그러나 주변에 비해 고도가 낮은데다 웃자란 잡목으로 둘러싸여 산꼭대기에 서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시 내리막에서 임도를 만난다. 길을 건너 맞은편 능선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매어야 하는 길은 이제부터다. 만만찮은 오르막 비탈길이 30여분간 계속되기 때문이다. 헬기장을 거쳐 5분 더 오르면 주능선에 닿는다. 눈썰미만 있다면 이곳에서 남은 산행구간을 그려볼 수 있다. 병풍을 두른듯 능선줄기가 「ㄷ」형태로 이어지다 맞은 편 끝에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이곳이 이번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정수산이다.

물기잃은 소나무 잡목구간을 헤치며 20여분 더 길을 이으면 상여봉이다. 아랫마을서 올려다 보면 암봉이 상여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이번 산행구간에서 가장 좋은 조망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2시 방향에 황매산, 5시 방향 둔철산, 8시 방향 지리산 천왕봉, 왕산, 필봉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상여봉을 뒤로하고 산길을 재촉한다. 높이 오를수록 산도 덩달아 거칠어지는지 내리막길이 예사롭지 않다. 20분 뒤 고개를 만난다. 오른쪽은 내수리, 왼쪽은 송경리로 하산하는 길이다. 고개 주변에는 세뼘 남짓한 웅덩이가 있다. 멧돼지가 이곳에서 물을 마셨나 보다. 이곳 저곳에 멧돼지가 파헤치고 비벼댄 흔적이 또렷이 남아있다.

　제법 산이 깊어졌다. 사람들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원시림 구간이다. 헬기장을 지나 소나무숲 사이를 다시 한번 헤쳐 내려오면 비득재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인 이곳은 아직 개통하지 않은 구간으로 내수리 내수마을과 전리 윗맥골을 잇는 도로다.

　맞은편 임도로 들어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밤나무길이 기다리고 있다. 오랫만에 옷깃을 여미는 여유를 부리며 20분간 맛보는 산길이 더없이 호젓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다시 소나무 잡목구간으로 이어진다. 너덜이 많아 힘이 든다. 20여분 올라 569m봉에 다다랐지만 숨고를 틈도 없다. 더 급한 경사구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300여m를 곧바로 치고 올라야 800m대의 정수산 정상이다. 이 구간에는 안전을 고려, 철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땀을 흘리며 힘겹게 올라서면 숨을 고를 수 있는 산길로 바뀐다. 억새와 웃자란 소나무, 참나무가 뒤얽히며 걷기좋은 산길이 산행자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준다. 30분간 능선을 따라 달리면 정수산 정상에 닿는다. 초입부터 지금까지 소요시간은 6시간. 짧지않은 산길을 달려온 셈이다.

　이제 하산길로 접어든다. 산길도 또렷하다. 30분가량 내려오면 고개에 닿는다. 직진하면 율곡사, 새신바위다. 왼쪽은 평촌마을. 오른쪽은 척지마을이다. 여유가 있는 동호인이라면 율곡사까지 이어가기를 추천한다. 그러나 시간관계상 취재팀은 척지마을로 하산했다. 고개 10여m 아래 창고를 지나 30여분 내려오면 마을로 향하는 임도에 닿는다.



# 교통편

　부산서 산청으로 갈때는 진주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편리하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4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진주행 버스가 출발한다. 요금 4천9백원, 소요시간 1시간30분. 산청행 버스는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 10분마다 운행하고 있다. 요금 2천5백원, 소요시간 40분.

　부산서 산청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 오전 5시40분부터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진주를 경유하기 때문에 출발시간을 고려해 버스편을 선택하면 된다. 요금 8천원, 소요시간 2시간30분.

척지마을로 하산하면 오후 6시40분께 「척지마을」 표지석 앞에서 산청행 버스를 탈 수 있다. 교통편 사정에 따라 척지마을 도착·출발 시간이 다소 달라질 수 있으므로 20분정도 일찍 나와 기다린다. 요금은 900원, 산청읍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한다. 4인기준으로 9천원. 산청개인택시(055-972-4848, 055-973-2224)로 연락하면 곧 차가 도착한다.

　산행 뒤 배가 출출할 땐 산청명물 흑돼지 삼겹살을 한점 구워먹는 것도 괜찮다. 산청시외버스터미널 옆 진미식육식당(055-973-2153). 산청서 진주행 차는 늦어도 밤 8시께는 타도록 한다. 진주서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밤 9시10분이기 때문이다. 더늦게 진주에 도착하면 부산행 심야버스를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