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준비를 하고 떠나자.
[암릉을 따라 산성이 있다 . 뾰족 솟은 봉우리가 호구산 정상이다 .]


들머리에 가시덩굴이 무성하다. 긴 팔과 바지 긴 옷은 필수. 장갑도 있으면 좋다. 가을이라 나뭇잎이 지면서 날카로운 가시가 더 맹위를 떨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마음의 준비. 연발할 감탄사를 충분히 ‘장전’해 놓아야 한다. 바위와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에 무슨 수로 입을 닫고 있을 것인가. 남해의 산사람들은 그래서 호구산이 외부에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게 호구산은 장롱속에 깊이 숨겨 놓은 보물처럼 생각날 때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어하는 그런 곳이다.

산의 형상은 호랑이가 누워있는 언덕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이 호구산(虎丘山).

산행코스는 용소마을회관~봉전소류지~축사~유자과원조성단지~공동묘지~헬기장~산산골~진양 하씨묘~호구산(560곒)~염불암~백련암~용문사~용소마을. 약 4시간 걸린다.

용소마을에 내리면 마을회관 정면에 작은 골목길이 있다. 따라가면 성남교회가 나온다. 교회를 지나 동네를 가로질러 계속 직진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바다. 황톳빛 갯벌이 쫙 펼쳐진다.

마을을 벗어나면 길 오른쪽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 논길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가다보면 양 옆으로 축사 가건물이 몇동 서있다.

갈림길에선 직진. 포장길이 끝나면 농로가 이어진다. 왼쪽에 유자과원조성 시범단지 간판이 있다. 5분이면 임도와 만나고 용소공동묘지가 나온다. 정면에 암릉 봉우리가 고개를 내민다.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간다. 10분쯤 지나면 고개에서 왼쪽 능선에 붙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산길에 올라서 왼쪽으로. 떨어진 침엽수 잎이 수북하다. 태풍 루사가 할퀸 생채기들이다. 남해에서 불어온 광풍이 오죽했을까. 뽑히고 넘어진 나무가 길을 막는다. 누군가 산을 한 번 번쩍 들었다 놓은 것처럼 상처투성이다. 환자를 어루만지듯 걷는다.

10분이면 헬기장. 가시덤불이 사납다. 거미줄도 거든다. 호구(虎口)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앞 사람에게 바짝 붙어서 걸어서는 안 된다. 수풀에 뒤덮인 길이 가끔씩 꼬리를 감춘다.

40분 정도면 전망대에 올라선다. 용소마을 사람들이 ‘산산골’이라고 부르는 암릉 봉우리의 시작부분이다. 바위에 앉으면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 가운데 노도가 돛단배처럼 떠 간다. 조선의 정치가이자 대문장가였던 서포 김만중이 당쟁에 휩쓸려 귀양살이를 하다 생을 마감한 곳이다. 왼쪽으로 창선도와 멀리는 진주만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10분 정도 오르면 암릉의 정상에 선다. 연무가 옅게 끼긴 했지만 신이 빚어낸 조화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왼쪽에 줄지은 바위 봉우리가 있다. 비탈을 따라 내려서는 형상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기암 5형제 같다. 비단같은 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푸른 들판이 시작되고 길을 건너면 갯벌이다. 갯벌을 삼킬 듯 넘보는 파도가 한폭의 동양화를 이룬다.

봉우리를 넘으면 산성이 있다. 산성을 따라 눈을 들면 호구산 정상이 보인다. 뾰죽 솟아있다. 묵은 헬기장이 나온다. 지나면 평탄한 능선길이다. 10분이면 진양 하씨묘.

살짝 내려서다 한 달음 오르면 정상이 가로막는다. 15분 정도 가면 작은 전망대. 왼쪽으로 눈을 돌린다. 호구산과 송등산에서 뻗은 능선 줄기가 한 점으로 모이는 곳에 절 지붕이 옹기종기 모였다. 정상과 공동묘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용문사로 빠진다.

정상까지는 암릉 구간. 가파르기 때문에 밧줄이 매여 있을 법도 하지만 길이 생각만큼 거칠지 않다. 5분이면 호구산 정상에 다다른다. 50명은 충분히 둘러 앉을 만큼 평평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다에 눈을 씻는다. 멀리 노도를 기준으로 왼쪽이 금산, 오른쪽은 설흘산이다.

산이 변하고 있다. 바다보다 짙푸르던 색은 간데 없다. 누런 빛깔이 돈다. 9월 초라 단풍은 아직 이르고, 아마 태풍에 찢기고 할퀴어 든 멍 때문일 것이다.

하산은 길을 되짚어 돌아가 시작한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산허리를 타고 가다 바로 나오는 갈림길에서 왼쪽 아래로 떨어진다. 직진하면 송등산까지 이어진다.

키 큰 산죽 군락을 지나면 작은 물줄기가 흐른다. 폭우가 만든 물길이 등산로와 헷갈린다. 터벅터벅 걷다 너덜겅을 건너면 물소리가 거세진다. 정상에서 30분이면 염불암.

고즈넉한 염불암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백련암이 나온다. 입구에서 임도를 벗어나 왼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계곡을 건너 200곒 정도 가면 용문사.

배낭을 벗고 예쁜 담을 따라 걸어보자. 진흙을 이기고 기와를 중간중간에 쌓아 올린 정겨운 담이다. 암자 앞으로는 명경지수가 흐른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사찰을 감싼다.

용문사를 나와 5분이면 용소매점. 앵강만 푸른 바다를 향해 20분쯤 달려가면 용소마을에 닿는다.

/ 글·사진 = 김용호기자

/ 산행문의 = 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교통편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행 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6시20분에 첫차가 있고 20~40분 간격으로 다닌다. 9천8백원. 남해읍에서는 이동~남면행 버스를 탄다. 오전 9시35분, 10시40분, 10시50분 등. 950원. 이동을 지나 용소마을에 내린다. 용소마을이 어디인지를 미리 확인할 것. 30분 정도 걸린다.

용소마을에서 남해읍까지는 오후 4시10분과 5시30분, 6시30분에 군내버스가 있다. 남해에서 부산행 버스는 오후 5시5분, 5시30분, 5시45분, 6시25분, 그리고 막차는 오후 7시에 있다. 막차를 놓치면 진주까지 나와 부산행 버스를 타야 한다.



떠나기전에
남해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푸른 바다와 비단을 두른 듯하다는 뜻의 금산이다. 금산은 너무 알려져 있어 호젓한 산행의 기분을 반감시킨다.

그러나 남해군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호구산은 다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호구산에는 대찰 용문사가 있다. 또 맑은 계곡수가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로 흘러든다.

용문사는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절로 많은 고승을 배출한 남해 최대의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활동의 근거지로서 조선 숙종 때 수국사로 지정, 보호받기도 했다. 현재의 절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재건한 것이다.

경내 문화유적으로는 대웅전(경남 유형문화재 제 85호)과 석불좌상(경남 유형문화재 제 138호), 명부전(경남 문화재자료 제 151호) 등이 있다.

호구산 산행은 반드시 긴 팔 긴 바지를 착용하여야 하며 식수도 미리 챙겨야 한다. 산산골의 암릉에서 바라보는 앵강만의 노도, 금산과 어울리는 반짝이는 바다는 영원히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날머리의 용소마을은 지금 참다래가 온마을을 감싸고 있어 10월이면 새콤한 맛을 볼 수가 있다.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