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울산이다. 하얗게 쌓인 순백의 눈 위를 걷는 즐거움이 산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겨울산’ 하고 가만히 되뇌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텐트 안에 주렁주렁 매달렸던 고드름, 그리고 무채색의 세상이다. 10여년전 연말. 지리산 장터목 야영장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밤을 새웠다. 밤새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텐트안으로 스며든 물기는 그대로 고드름이 됐다.

어렵사리 맞은 아침. 지퍼를 열자 세상은 온통 흰색의 바다였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다. 나무도 없었고 길도 없었다. 그후 겨울이면 눈 덮인 산으로 달려가려는 마음은 몸살을 앓는다.

간간이 날린 잔설이 남녘의 야트막한 산 기슭에도 쌓이기 시작했다. 응달에 녹지 않은 눈속으로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겨울산행이 시작됐다.

의령 응봉산~자굴산 종주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출발점인 양성마을을 중심으로 능선에 올라서 정확히 반원을 그린다.

산행코스는 양성마을~보광사~부자재~응봉산(593곒)~정삼재~찰비만당~활공장~농디미~한우산(764곒)~쇠목재~둠배기만당~자굴산(897곒)~중봉삼거리~갑을마을. 약 5시간30분 걸린다.

의령터미널에서 갑을행 버스를 타고 양성마을에 내린다. 갑을상회가 있는 삼거리다. 보건진료소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회관과 새마을창고 앞을 지난다. 작은 다리를 건너 직진. 2시 방향으로 보이는 안부가 부자재이다. 이번 산행의 첫번째 목표이다. 큰길을 계속 따라가면 오른쪽에 보건소가 있다. 좀 더 나가면 보광사. 보광사 위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150곒 정도 앞에 오른쪽으로 빠지는 뚜렷한 농로가 있다. 부자재가 정면에 나타난다.


안부를 보고 직진하다 밤나무밭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어선다. 벌목지대를 지나자 농로는 왼쪽으로 튼다. 여기서 농로를 버리고 산길로. 100곒 앞에서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따라 지그재그로 오른다. 어느새 다시 산길. 능선에 붙기까지는 마을에서 45분이면 충분하다. 그다지 힘들지 않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제법 경사가 있는 오르막 10분이면 전망대가 하나 나온다. 주변으로 낮게 이어진 능선이 경주의 신라 고분군처럼 아담하다. 전망대를 지나면 우거진 억새와 잡목때문에 길 찾기가 힘들다. 잠시뒤 나오는 헬기장이 응봉산(593곒) 정상. 헬기장은 지름 25곒의 원형으로 사방이 열렸다.

정상 다음 봉우리에 삼각점이 있다. 584.7곒. 내리막 10분 뒤에 임도다. 양성삼거리로 해발 540곒이다. 갑을마을에서 시작된 임도와 만나는 지점이다. 정삼재라고 부른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따라가면서 임도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비슷비슷한 봉우리라 오르막 내리막이 부담스럽지 않다. 임도가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는 게 보이면 앞에 가파른 경사가 막아선다.

정상에 서면 응봉산 이정표가 있다. 이곳이 찰비만당. 양쪽 비탈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거세다. 순간적으로 강한 바람이 불 때는 서 있기조차 힘들다. 15분 뒤면 한우산 활공장에 도착한다. 자굴산 한우산 산성산 이정표가 있다.

각 산의 이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것과 국립지리원 지도상의 지명표기가 차이를 보인다.

활공장에서 철쭉과 억새를 뚫고 15분 정도 오른다. 한우산 봉우리에 닿으면 길을 잘 찾아야 한다. 조금씩 녹은 잔설에 억눌린 억새가 허리를 굽히고 누워있다. 이런 곳에서 길을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심코 직진하면 산성산쪽으로 빠진다.

왼쪽에 자굴산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산불 감시초소가 보이는 봉우리가 자굴산. 여기서 자굴산까지는 예전에 ‘다시찾는 근교산’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능선을 따라가다 다음 만나는 봉우리를 마을 주민들은 ‘농디미’라고 부른다. 장롱처럼 생긴 전망대 바위가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농디미에서 안부까지는 급한 내리막. 임도가 갈라지는 곳은 쇠목재다.

쇠목재에서 다시 산길에 붙어 10분정도 오르면 임도다. 완만한 임도를 따라 5분이면 이정표가 섰다. 자굴산 0.8㎞, 쇠목재 1.2㎞. 둠배기만당이라고 불리는 지점이다.

자굴산 정상까지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린다. 눈에 얼어붙어 꼬챙이처럼 딱딱해진 밧줄을 두 번 붙잡고 올라야 한다. 0.8㎞가 왜 이렇게 먼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산불 감시초소 꼭대기가 나타난다.

자굴산의 전망은 잘 알려져 있다. 합천의 삼산이라 불리는 허굴산 악견산 금성산은 물론 황매산이 가깝다. 산불감시원들의 말로는 눈이 많이 내린 뒤에는 덕유산은 물론 진주 진양호의 반짝이는 물빛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는 맛이 새롭다. 자굴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응달에 잔설이 남아있다(사진 위). 백련사로 내려오는 하산길에 만난 너덜지대 . 바위 위에 정갈하게 쌓인 눈이 네덜란드 화가 몬드리안의 추상화같다.]

하산은 백련사 이정표를 따라 시작한다. 물론 시간이 넉넉하다면 자굴산 정상석 뒤로 나 있는 등산로로 내려가도 좋다. 외조마을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백련사로 내려서는 중봉삼거리까지는 300곒. 5분도 안 걸린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면서 산허리를 탄다. 급한 내리막으로 들어선다. 응달이 많은 구간이라 눈이 거의 녹지 않았다. 안전사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0분 정도 가면 너덜을 두 번 지난다. 두번째 너덜을 지나서 수련원과 약수터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

능선을 타고 나가다 양쪽으로 길이 갈라지면 왼쪽으로. 바로 임도와 만나고 임도를 따라 20분이면 갑을마을이다.

/ 글·사진=김용호기자

/ 산행문의 = 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 전에]

의령하면 자굴산, 자굴산 하면 남명 조식 선생이 떠오른다. 남명 선생은 자굴산 명경대(明鏡臺)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뜻을 세웠다. 강선암과 금지샘, 찬비가 내린다는 찰비계곡, 할미너덜 등 수많은 전설이 자굴산에 깃들어 있다.

자굴산에서 이어지는 한우산 산성산의 정상이 어느 봉우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취재팀은 갑을마을 주민들과 자굴산 산불감시원에게 물어 보았다. 이들은 한우산 정상은 764곒봉인 국립지리원 지형도상의 정상이고 산성산은 현재 한우산 정상으로 알려진 835곒봉을 일컫는다고 했다. 현재 발간된 일부 등산 안내 책자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취재팀은 지난번 자굴산 산행안내에서 835곒봉을 한우산으로 표기했으나 이를 수정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현지인들의 주장과 국립지리원 발행 지도상의 한우산 정상을 그대로 표기를 하였다. 그러나 835곒봉이 산성산이란 현지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옆 산성터가 남아있는 봉우리를 산성산으로 했다.

양성리의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과 그 뒤로 자굴산이 흰 눈과 어울려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자굴산 정상에서 갑을리로 버스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때는 정상석 뒤 내조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면 된다. 외조마을에서는 오후 7시20분께 부산행 막차가 지나간다. 식수는 미리 준비를 하자. 갑을상회에서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구할 수 있으며 겨울산행 준비를 해서 떠나자.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이번 산행은 원점회귀이므로 자가운전을 해서 가도 좋다. 갑을마을과 양성마을로 갈라지는 지점에 마을회관 주차장이 있다.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는 의령행 첫차를 타야 한다. 5천3백원. 1시간10분쯤 잡으면 된다. 의령터미널에서 갑을마을행 군내버스는 오전 8시30분에 떠난다. 900원. 부산에서 의령행 다음 버스는 오전 7시40분이다. 따라서 만약 오전 7시 첫차를 놓쳤다면 의령에서 택시를 이용한다. 8천원선.

외조마을로 내려왔다면 합천에서 오는 직행버스를 타면 된다. 갑을마을은 하루에 군내버스가 4차례 밖에 다니지 않는다. 의령읍으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4시가 막차다. 의령에서 부산까지는 40분 간격으로 직행버스가 있으며 오후 7시50분에 막차가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