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기봉 오르는 길, 눈덮인 백두대간을 업었다. 암릉구 간으로눈 이 얼어 붙어 위험 하다.

북쪽으로 차를 몰아간다. 경북 김천을 지나자 눈덮인 황악산이 당당한 자태를 드러낸다. 백두대간이 어느 때는 아름답지 않으랴. 그러나 찬연했던 가을의 오색 단풍을 뒤로 하고 고요한 겨울 밤 다소곳이 피어난 고산준령의 설경은 경외심마저 불러 일으킨다. 눈앞에 펼쳐진 기막힌 설경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은 급해진다. 주차가편(走車加鞭).

추풍령을 넘었다. 황간 IC에서 빠져나온다. 물이 너무 차 ‘물한’계곡. 충북 영동의 물한계곡으로 내달린다. 골짜기 골짜기 이런 골짜기가 있었나.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수없는 산모롱이를 돈다. 골짜기로 빨려들기를 내처 30분. 촘촘히 내리뻗은 산 자락이 추위를 못이기고 몸을 뒤척인 굽이마다 어김없이 빙판이다.

널따란 주차장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산행안내도가 있다. 산행코스는 주차장~황룡사입구~잣나무숲~미나미골~삼마골재~삼도봉(1,177m)~간이대피소~석기봉(1,200m)~쪽새골~민주지산(1,241.7m)~잣나무숲~주차장. 5시간에서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150m 앞에 황룡사와 등산로 갈림길. 오른쪽 등산로로 들어선다. 차량통행은 안된다. 왼쪽으로 물한계곡이 ‘흐른다’. 찬 계곡물은 얼음으로 변했다. 물줄기가 흘러내리던 결 그대로 얼었다. 눈을 밟으며 걷는 길도 빙판, 계곡도 빙판이다.

15분 정도 가면 미끈하게 자란 잣나무 숲. 길 양옆으로 돌탑이 두개 섰다. 계곡을 건넌다. 두껍게 언 얼음을 뚫고 흐르는 물소리는 가칠가칠한 잣나무 잎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어우러져 경쾌한 화음을 연출한다.

삼도봉 3.6㎞, 민주지산 2.8㎞. 산행 기점인 이정표와 마주한다. 왼쪽 삼도봉 방면으로. 트럭도 가뿐하게 지날만큼 길은 잘 닦였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직립의 미학이 매력인 낙엽송 숲이 나온다. 가지 끝에 매달린 눈송이는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20분 뒤 또 하나의 갈림길. 오른쪽으로 치고 오르면 석기봉이다. 여기서 삼도봉까지는 3.3㎞. 직진한다.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5분 뒤면 임도를 벗어난다. 산허리를 밟으며 10분쯤 걷는다. 삼도봉 약수터. 돌을 모아 정성스레 쌓았다. 물은 말라있다. 옆에 작은 개울이 흐른다. 빨간색 작은 바가지가 있어 한 모금 삼켰다. 얼음보다 차다. 뇌 속을 관류하던 피가 얼어붙는 듯 찡한 고통이 밀려온다. 순간 얼굴이 일그러진다.

약수터에서 능선에 닿기까지는 30분. 중간에 쉼터를 지나고 통나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삼마골재. 안부에 서면 가야산을 축으로 내로라하는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삼마골재는 백두대간 종주코스의 한 부분이다.


오른쪽에 가파른 계단이 있다. 통나무 계단은 눈속 깊숙이 파묻혔다. 흙없는 길, 능선을 따라 눈만 밟으며 걷는다. 15분 뒤 봉우리에 올라선다. 5분 거리에 삼도봉이 있지만 이번 산행에서 조망다운 조망은 처음. 눈덮인 백두대간을 향해 감탄사를 뿜어낸다.

삼도봉(三道峯·1,177m)은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의 경계지점이다. 북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는 이곳에서 용트림을 한번 하고 한 줄기는 대덕산으로, 다른 한 줄기는 덕유산으로 갈라져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금오산 가야산 황악산 덕유산 적성산…. 산 넘어 산이 있고 산 앞에 산이 있다.

삼도봉에서 석기봉 1.4㎞, 민주지산까지는 4.3㎞. 길게 뻗은 능선을 따라 걷는다. 북서쪽으로 암릉이 있는 봉우리가 석기봉이고 그 너머 볼록하게 솟은 봉우리는 민주지산이다.

고도 편차는 거의 없다. 30분 뒤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삼거리.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물한계곡으로 떨어진다. 앞에는 석기봉이 가로막는다. 팔각지붕을 인 간이대피소를 지나면 곧 석기봉이다. 평탄한 길에 만난 작은 오르막. 헉헉거릴 때마다 연신 입김이 쏟아져 나온다. 찬 바람은 더운 입김을 삼켜버린다. 삼도봉에서 석기봉까지는 45분.

이번 산행에서 조심해야 할 구간이 바로 석기봉 주변이다. 두껍게 쌓인 눈은 산사람들의 발길에 다져지면서 암릉에 단단히 얼어붙었다. 상당히 미끄럽다. 곳곳에 밧줄을 매어놓긴 했지만 너무 팽팽해 없느니만 못한 것도 있다.

석기봉에서 암릉구간을 지나 40분 정도 치고 나간다. 능선 끝자락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꺾는다. 15분이면 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래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민주지산 0.8㎞. 햇볕에 따라 바람에 따라 발바닥에 느껴지는 눈의 질감은 다르다. 밀가루처럼 팍팍한 눈이 있는가 하면 아스팔트처럼 딱딱한 것도 있다. 바람이 세찬 능선에는 사막의 모래밭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눈밭도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밭에는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이내 쪽새골에 닿는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거리는 정상까지 0.4㎞. 그러나 왕복 10분도 안걸린다. 정상에서 되돌아와 이곳에서 물한계곡으로 하산한다.

한겨울의 민주지산(1,241m) 정상은 거칠게 몰아치는 광풍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백두대간을 하얗게 물들인 장관은 발걸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서리를 맞은 생명체는 싱싱함을 잃게 마련이지만 하얗게 뒤덮인 백두대간은 오히려 주체하지 못할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눈이 녹아 황토색 황량함이 드러난 골짜기와 아직 잔설이 남은 응달은 해와 바람이 그려낸 한 폭 그림이었다.

쪽새골 갈림길에서 하산은 조심스레 시작됐다. 급한 내리막길에 몸의 중심은 자꾸 앞으로 쏠렸다. 그러나 아직 지지않은 눈꽃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무에 닿지 않으려고 무릎과 발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10분 뒤 갈림길에서 왼쪽. 작은 계곡을 건너면 임도와 만난다. 민주지산과 삼도봉 갈림길까지 50분. 쪽새골에서 황룡사까지는 1시간 10분이면 된다.

/ 글·사진 = 김용호기자

/ 산행문의 = 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 전에]
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을 흔히 내륙의 알프스라 칭한다. 산골 오지를 떠올리면 빠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민주지산 능선은 자연 식물의 보고이자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청정지역으로 유명하다. 여름에는 물한리의 시원한 계곡이, 겨울에는 엄청난 적설량이 산사람들을 유혹하는 당찬 산이다.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꼭지점 삼도봉. 정상에는 기념비가 서 있고 이곳에서 해마다 화합의 만남 행사가 치러진다.]


백두대간상에 삼도(三道) 화합비가 있는 삼도봉, 쌀겨처럼 생겼다 하여 쌀개봉이라고도 부르는 석기봉 등 1천m급의 고봉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민주지산 능선길은 지금 많은 눈을 이고 있다.

석화성 가야산이 불꽃처럼 보인다. 지리산의 웅장하면서도 희미한 줄기와 덕유산의 후덕함을 조망할 수 있는 그런 산이다.

민주지산은 또 일출로도 유명하다. 정상에서 각호산 능선 300m지점에 있는 무인대피소를 이용하여 타오르는 일출도 감상해보자.

산행 후에는 황간의 올뱅이(다슬기) 국밥집(043-742-4327, 1인분 4천원)에서 추위를 녹여보자. 된장을 풀어 독특한 맛을 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동 버스터미널 043-742-3971.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삼도봉~민주지산은 원점회귀 산행이다. 자가운전을 하는 게 편리하지만 문제는 거리가 멀다는 것. 부산에서 왕복 6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대중교통은 열차가 있지만 당일 산행을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참고로 열차와 버스 시간을 살펴보면 부산을 출발해 황간역에서 정차하는 무궁화호는 오전 7시15분에 떠난다. 도착은 오전 9시51분. 2시간35분 정도 걸린다. 그외에 부산역에서 오전 10시45분, 낮 12시45에도 있다. 부산에서 영동역에 정차하는 무궁화호는 오전 5시30분 6시15분 6시45분 7시15분 8시15분 등 30분~1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2시간50분 정도 걸린다.

산행 시작점인 물한계곡까지는 영동에서 시내버스가 하루 5회 운행한다. 중간에 황간을 거친다. 영동 출발 시간은 오전 6시20분 7시30분 낮 12시10분이다. 황간 출발은 오전 6시40분 7시50분 등. 물한계곡에서 영동으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4시와 7시께 있다. 다소 여유를 둬야 한다.

자가운전이나 버스를 대절한 단체산행이 아니면 1박을 하거나 밤 기차를 타고 무박산행을 계획하는 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