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밥과 따뜻한 물 한 통, 사과나 귤 한두 개를 곱게 싸서 넣은 괴나리봇짐 둘러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에 나서기 좋은 계절. 봄이다. 겨울 배낭에 늘 필수 품목으로 자리잡고 있던 아이젠과 여벌의 방한복도 이제는 자리를 비켜 주니 짐은 한결 가벼워지고 덩달아 옷차림도 가볍다. 하지만 아직은 파릇한 새싹과 봄의 들꽃이 산천에 흐드러지기에는 이른 계절. 괴나리봇짐 하나 메고 찾아 나설 수 있는 딱 좋은 봄날의 근교 산행지가 없을까 고민하다 이번 주 취재팀이 찾은 산이 경남 고성군 동해면의 구절산(559m)이다. 꽃 마중은 조금 더 미루는 대신 남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이라도 한껏 마셔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고성 구절산은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마치 섬 봉우리 같은 산이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 대한바위 암릉과 멀리 서쪽의 부산 가덕도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동해면은 고성군에서도 동쪽 끝 바다에 면해 있다고 해서 '동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닭의 목처럼 쑥 들어간 당항만, 남으로는 당동만, 동쪽으로는 마산 진동 앞바다가 이 동해면을 둘러싸고 있으니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인 셈이다. 국립지리정보원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반도의 명칭을 얻지는 못했지만 자그마한 반도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해면 최고봉인 구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 당항만과 남쪽 다도해의 시원한 풍광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인근에 있는 고성의 진산 거류산과 그 남서쪽 벽방산 정상의 풍광과는 같은듯 하지만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주변에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주요 승전지인 당항포해전 유적지와 선사시대 유적인 공룡발자국들이 흩어져 있어 역사 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가족 봄 산행지로도 적극 추천할 만하다.

구절산 정상을 돌아 철마산~응암산 능선을 타는 전체 산행 코스는 총 13.5㎞에 걷는 시간만 5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대체로 육산이지만 정상부 주변에는 탈 만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암릉길이 묘미를 더해주는 코스다.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동해면 내곡리 북촌마을 에쓰오일(S-oil) 주유소를 들머리 삼아 집단 묘지~갈림길~숙부인 이씨 묘~임도~곡산봉화(수)대~전망대~갈림길~정상~갈림길(복귀)~대한바위~철마령~철마산~임도삼거리~응암산~시루봉 밑 삼거리~임도~폐가~원각사~용정리 가룡마을회관으로 연결된다.

당항만 남서쪽 해안에 해당하는 동해면 내곡리 북촌마을 에쓰오일 주유소에서 1010번 도로를 건너면 무덤 있는 방향으로 길이 나 있다. 여기가 들머리. 무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5분가량 가면 갈림길이다. 글씨 없는 이정표가 덩그러니 서 있다. 무덤이 5, 6개 더 있는 왼쪽으로 향한다. 숙부인 고성 이씨 묘를 지나면 비로소 완만한 오르막의 산길로 들어선다. 싱그런 솔향 가득한 솔밭길을 한적하게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5분 뒤 만나는 임도에서는 왼쪽으로 임도를 타고 오른다. 5분쯤 가다 '자연보호' 입간판 앞에서 능선 합류. 능선을 따라 가면 왼쪽에 마치 호수같이 잔잔한 당항만 푸른 바다가 성큼 다가서고 그 건너편에는 당항포국민관광지와 고성공룡엑스포 행사장 등이 눈에 들어온다. 완만한 능선길을 5분가량 더 걸으면 갑자기 오른쪽이 확 트이면서 멀리 2시 방향에 구절산 정상과 그 오른쪽 아래로 당동만, 좀 더 오른쪽에는 거류산과 멀리 통영 벽방산 자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GPS 트랙 / 트랙 jpg파일

조금씩 가팔라지는 능선길을 재촉해 20분가량 걸으면 조그만 봉우리에 오르는데 이곳이 해발 316m인 곡산봉수대다. 조선시대부터 통영 벽방산봉수대~고성군 하일면 좌이산봉수대~고성군 대가면 천왕점봉수대 등과 연결된 전략적 거점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나와 있다. '구절산 정상 2.1㎞'라 적힌 이정표 상에 표기된 이곳의 '해발 432m'는 잘못된 표기다. 봉수대 북쪽 아래로는 당항만과 공룡엑스포장, SPP조선소 등이 보이고 수면 위 고기잡이배의 꼬리를 이루는 하얀 포말이 평화롭다.

안부로 살짝 내려섰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을 걸으면 20분 후 402m봉에 닿는데 이곳에서는 정면에 압도하듯 우뚝 솟아 있는 구절산 정상이 성큼 다가선다. 다시 살짝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팔라지면서 본격적인 정상 도전이 시작된다. 15분 후 가파른 암릉에 매달아 놓은 밧줄을 잡고 어렵사리 전망대에 선다. 뒤돌아보면 북쪽으로 탁 트인 당항만과 만의 가장 깊숙한 곳인 서쪽 끝인 쏙싯개까지 훤히 드러난다. 고성군 향토사연구소 하기호 소장은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는 당항만 가장 깊숙한 곳인 일명 쏙싯개에 정박 중이던 왜군 전함 26척을 당항포 앞 바다까지 유인해 내서 1척만 남기고 모두 섬멸시켰다"며 "쏙싯개를 일명 머릿개라고도 부르는데 당항포해전 당시 잘려나간 왜군들 머리가 둥둥 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고 조언을 해 줬다.

한바탕 암릉을 타고 올라 다시 흙길을 걷는데 응달 이곳저곳에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겨울의 끝자락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5분 후 정상 밑 갈림길이다. 왼쪽의 대한바위~철마산~응암산 능선길과 합류하는 지점.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3분가량 오르면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해발 559m 구절산 정상이다.

'일망무제(一望無際)'. 사방으로 펼쳐진 풍광이 거칠 것 없이 넓고 아득하다. 남쪽 멀지 않는 곳에 다도해 섬군과 거제도 고현조선소와 대금산 계룡산이, 남서쪽으로는 거류산 벽방산 통영 욕지도가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연화산과 멀리 지리산 천왕봉, 그 오른쪽으로 합천 황매산까지 아득하다. 또 동쪽으로는 진해만과 가덕도, 부산신항까지 눈에 들어온다. 구절산이 자리잡은 동해면을 남북으로 껴안은 당동만과 당항만 푸른 물결 위에 부서지는 수십 줄기 하얀 포말이 삶의 에너지를 한껏 내뿜으며 수채화를 그린다.

대전에서 왔다는 30여 명의 산악회원들이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왔냐는 물음에 그들 중 한 40대 주부가 "남해바다를 원껏 보려고 왔잖수. 요새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뚫려서 2시간밖에 안걸리는데 뭘"이라며 생뚱스럽다는 듯 답한다. 이들은 남쪽의 외곡리 폭포암 쪽에서 출발, 올라왔다고 한다. 외곡리 오름길 코스는 지난 2004년3월 '근교산&그 너머' 378회 기사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코스는 같은 구절산이라도 당시와 출발지점부터 다른 코스다.

하산길은 다시 조금전 갈림길로 돌아와 거대한 암릉길인 대한바위 능선을 타고 동쪽으로 간다. 깎아지른 듯한 암릉길인 대한바위는 산 타는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암릉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을 20분가량 미끄러지듯 내려오면 널따란 도로가 있는 고개를 만난다. 동해면 소재지인 북쪽의 장기리와 남쪽 장좌리를 잇는 14번 고성군도다. 철마산성 입간판이 보이는 쪽에서 다시 오르막을 20분가량 치고 오르면 해발 394m 철마산 정상이다. 철마산에는 자연 암벽과 인공 석벽을 조화시킨 철마산성이 있는데 최초의 축조 시기는 가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략으로 긴장이 고조될 무렵 산성 위에 군사가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무쇠로 만든 말을 만들어 배치했기 때문에 철마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기호 소장이 전해 준다.

철마산을 지나면 편안한 능선길이다. 7분 뒤 오른쪽이 탁 트인 전망대를 만나고 계속 직진하면 15분 후 왼쪽에 수양산(420m)이 바라보이는 공터를 만난다. 취재팀은 이번 산행에서 수양산을 들를 계획이었지만 길이 보이지 않고 수풀이 너무 무성해서 다음을 기약하며 지나쳤다. 공터에서부터는 임도를 만나 합류한다. 3분후 파고라와 쉼터가 있는 임도 갈림길. 왼쪽은 용정리 가룡마을쪽으로, 오른쪽은 철마산 오르기 전 만났던 철마령쪽으로 가는 길이다. 임도를 타지 않고 정면 산길로 접어들어 15분가량 가면 석문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5분쯤 더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응암산(432m) 정상이다. 매 응(鷹)자를 쓰기 때문인지 이 지역 사람들은 매암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동쪽 가까운 곳에 있는 다음 봉우리인 시루봉(408m)이 성큼 다가서고 동쪽 멀리 진해만과 부산 가덕도 연대봉이 더 가깝게 보인다. 응암산 정상부 주위에는 매가 아니라 까마귀떼가 수십 마리 군락을 이루고 있다.

15분 후 시루봉 밑 안부 갈림길. 시루봉 왕복 대신 원각사 방향인 왼쪽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5분 뒤 다시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를 가로지르면 구절산 산행안내도가 있다. 그런데 이 안내도만으로는 도저히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길이 없다. 그야말로 있으나마나한 안내도다. 임도를 버리고 안내도 뒤쪽으로 난 내리막 산길로 접어든다. 대나무숲을 지나면 다 쓰러질 것만 같아 보이는 암자인 석운암. 인적은 거의 없지만 뜰에 핀 동백꽃은 붉고 곱다. 5분만 더 내려오면 원각사 입구 도로를 만난다. 들머리부터 이곳까지 총 12㎞를 걸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 소박한 크기의 원각사 마당에는 홍매화와 백매화가 어우러진 채 피어있어 봄의 정취를 더한다. 이곳에서 15분가량 내려오면 용정리 가룡마을회관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한다. 중간 식수 보충할 곳은 없다. 참고로 하자.


◆ 떠나기 전에

- 구절산 주변 공룡발자국 화석 산재

경남 고성군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내 최초로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1982년 1월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 주변 해안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여러 곳에서 잇따라 확인됐는데 현재까지 공식 인정된 것만 4300여개. 아직 인정이 되지 않은 것들을 포함하면 5004개에 달할 정도로 국내 최대의 공룡발자국 유적지다. 이렇게 많은 발자국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고성의 공룡발자국 화석들은 중생대 백악기 전기의 후반부인 약 1억년 전 퇴적암층에 형성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백악기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다음 시기로서 중생대 마지막 '기(period)'에 해당하며 약 1억4500만년 전~6500만년 전의 시기다. 구절산이 자리한 동해면에도 남쪽의 장좌리 구학포 해안, 봉암리 장항마을 해안 일대에서 조각류와 수각류, 용각류 등 다양한 종류의 공룡발자국이 지난 1987년 1월 발견됐다. 동해면과 당항만을 사이에 둔 북쪽의 회화면 당항리 당항포관광지 부근에도 공룡발자국이 발견된 것을 감안하면 구절산은 공룡발자국 유적지로 둘러싸인 셈이다. "아주 옛날에는 구절산에 공룡이 뛰어 놀았을까". 2009고성공룡엑스포는 오는 27일부터 6월7일까지 당항포국민관광지 내 엑스포전시장에서 열린다. 한편 동해면의 남해안을 감아 도는 77번 국도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될 만큼 드라이브코스로 명성이 자자하다. 산행 후 공룡발자국 유적 탐사와 함께 드라이브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 교통편

- 마산 진전면서 동해·광도 방면 77번 국도 이용

부산 서부버스터미널(051-322-8306)에서 고성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 첫차 이후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8300원.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산행 들머리인 동해면 내곡리 북촌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고성시외버스터미널(055-674-0082)에서 동해행 군내버스(고성버스, 055-674-0080)를 타면 된다. 오전 7시35분부터 매시 35분마다 있고 오후에는 매시 25분에 있다. 30분 정도 걸린다. 1500원. 날머리인 동해면 용정리 가룡마을 가룡마을회관에서 고성시외버스터미널행 군내버스는 오후 3시20분, 4시15분, 5시30분, 6시20분 등 약 1시간 간격으로 있다. 2900원. 승용차를 내곡리 북촌마을 주유소 옆에 주차했을 때는 북쪽 동해면 소재지인 장기리를 거쳐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1800원. 가룡마을에서 고성읍까지 택시(고성택시, 055-674-3938)를 이용해도 되지만 요금이 2만1000원 내외로 조금 비싼 편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들머리까지 가려면 고성읍을 거치지 말고 마산 진전면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왼쪽으로 가는 편이 빠르고 해안도로 풍광도 아름답다.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마산TG~내서TG~고성 통영 방향 14번 국도~진전면 임하삼거리~광도 동해방향 77번국도~동진교~동해면 내산리~덕곡삼거리~우회전 1010번 지방도~장기리~SPP조선~내곡리 북촌 에쓰오일 주유소 순이다. 주유소 옆에 주차 공간이 있다.

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 김운만 산행대장 010-2606-8985

GPS 도움=GPS영남 (http://cafe.daum.net/gpsyn)

	구절산 하산길에 거쳐가는 철마산 주변 철마산성.

	날머리인 원각사 뜰에 홍매화와 백매화가 함께 피어있다.

	하산 중에 만난 동백숲. 한적한 산길에 반가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