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3대 명산 중 하나인 천태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태호의 모습. 천태호는 양수발전시설이 주목적인 산정호수다. 한가위 보름달이 이 호수에 비칠 때 가을 밤 산꾼의 마음도 살랑이는 물비늘처럼 가늘게 떨려온다.

올 추석 연휴는 최장 9일에 이른다고 한다. 명절을 맞아 집안 대소사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산꾼들로서는 가까운 산이라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릴 수밖에 없을 것. 그러나 멀리 가기에는 교통 정체가 신경 쓰여서 엄두를 내기 힘들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에서는 부산 시내 또는 부산에서 가까운 당일 산행지 가운데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가볼 만한 산행지를 추천한다. 산봉우리 위로 떠오른 둥근 대보름 달빛이 산정호수 또는 저수지에 반사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가을밤을 연출하는 곳들이다. '호수와 달빛' 산행이다.


■부산 회동동 아홉산~수변산책로 순환 코스

- 반산반수(半山半水)의 환상 달빛 산행길

부산 회동수원지 수변산책로에서 바라본 호수 너머로 아홉산 능선이 흐른다.

45년 동안이나 출입이 통제됐던 회동수원지 주변이 수변산책로로 단장, 지난해 말 완전 개방된 것을 계기로 근교산 취재팀이 개발한 순환코스다. 부산 금정구 회동동의 99번 179번 시내버스 종점을 기점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코스의 절반은 아홉산(354m) 산행이고 나머지 절반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산책 코스다. 회동수원지를 중심으로 산행과 트레킹이 절묘하게 결합된 명품 근교산행지이기도 하다. 특히 '부산의 5대(臺)' 중 유일하게 내륙에 위치한 명소인 오륜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색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부산이지만 마치 부산이 아닌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오륜대 정상에서 바라보는 회동수원지의 풍광은 일품이다.

호수, 호수에 비친 달, 그리고 오륜대 멋들어진 조화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로는 오륜대 아래 취수장 옆 전망 목재덱을 꼽을 수 있다. 살랑대며 불어오는 바람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면서 호수에 비친 달빛의 반짝거림과 깎아지른 절벽의 오륜대의 절경이 어울린 장면은 살아 있는 진경산수화라 할 만하다.

전체 구간은 18㎞가량이다. 짧은 코스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수변산책로 구간 9.5㎞와 연계 도로 구간까지 빼면 순수한 아홉산 산행 구간은 사실 8㎞ 남짓하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회동수원지의 풍광이 워낙 빼어난 데다 높이도 낮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출발 전 충분한 몸풀기는 필수다. 오후 늦게 출발한다면 능선에서는 떠오른 달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고, 수변 산책로에서는 호수에 '빠진' 달과 능선에 '걸린' 달을 동시에 보는 겹호사를 누릴 수 있다.

코스는 금정구 회동동 시내버스 종점~동대교(철마 방향 구도로)~상수원보호구역 안내판 인근 산행로 입구~주능선~아홉산 정상~365봉 앞 갈림길~장년산 200m전 갈림길~회동수원지 진입로~선동교~상현마을(수변산책로 입구)~제1전망대~신현마을~제3전망대(거북이바위)~오륜대마을(취수장 입구)~취수장 옆 데크~오륜대전망대~오륜대본동~윤산갈림길~회동댐~99번 버스 종점으로 연결된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근교산&그너머 663회 참조〉


■경남 양산 천태산

- 산정호수 천태호에 비친 달빛 잊을 수 있을까

양산 천태산 산행 중 만나게 되는 웅연폭포.

천성산 영축산과 함께 양산의 3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천태산(天台山·630.9m)은 낙동강변에 우뚝 솟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근교산이다. 다양한 산행 코스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코스가 산상호수(山上湖水)인 천태호로 연결된다. 천태호는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호수로 원래 양수발전시설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지만 천태산 산행을 하는 산꾼들에게는 편안한 휴식과 사색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해주고 있다. 게다가 한가위 저녁에 보름달이 떠올라 이 호수에 내려앉으면 주변 풍광은 환상적이다.

산행 코스 가운데 한가위 기념 산행을 천태산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은 산꾼들을 위해 낙동강변인 원동면 용당리 중리마을에서 출발하는 산행로를 추천할 만하다. 중리마을에서 천태호를 경유해 정상에 올랐다가 웅연폭포를 거쳐 천태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이어진 경부선 철로변에서 시작해 능선을 따라 가며 낙동강과 삼랑진읍 주변의 수많은 철교와 다리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밀양과 양산의 경계를 이룬다는 노적바위와 어우러진 낙동강 경치는 정말 멋있다. 크고 작은 바위가 태산처럼 포개진 것 같다고 해 '천태암산'이라고도 불렸던 천태산의 묘미를 원없이 즐길 수 있는 코스다. 호쾌한 능선에다 수려한 계곡과 암릉, 기암괴석까지 갖췄을 뿐 아니라 한가위 달빛 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산상호수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다. 다만 총길이가 12㎞에 달해 명절 산행 치고는 제법 긴 느낌이 들고 산행시간도 6시간 이상 걸린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달빛 산행을 염두에 두고 이른 오후부터 산행을 시작한다면 충분히 즐기는 산행을 할 수 있다.

전체 산행은 중리마을 새마을회관에서 마을 입구 쪽으로 200m가량 되돌아 나간 곳에서 왼쪽에 보이는 능선 들머리에서 시작한다. 천태산 남서릉이다. 이 능선을 타고 오른 후 333봉~로프 구간~388봉~신불암고개~천태호 공원~577봉~천태산 정상~천태호 댐 동쪽 끝~웅연폭포~천태사로 이어진다. 천태호에서 호수에 잠긴 보름달을 감상하려면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적어도 오후 7시까지 도착하도록 계획을 짜자. 들머리에서 4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야간 산행으로 하산할 때는 웅연폭포 주변의 슬랩지대에서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근교산&그너머 641회 참고>


■경남 창원 백월산

- 백월산정 올라서 주남지에 떠다니는 달님 뵈올까

경남 창원 백월산 산행 막바지에 광활한 주남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다.

이름부터 '하얀 달'을 뜻하는 경남 창원시 북면의 백월산(白月山·428m)은 낮지만 옹골찬 근교산이다. 정상부에 우뚝 솟은 3개 암봉으로 인해 '삼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 산의 이름은 다른 산들과는 달리 1000년이 넘도록 '백월산'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3시간 안팎만 걸으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백월산을 추석 산행지로 소개하는 이유는 주남저수지에 비친 보름달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이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쯤 산행을 시작해서 막바지 봉우리인 범골봉에 세워진 조망용 정자인 백월산정에 도착할 때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바로 이곳 백월산정에서 바라보면 주남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수지 너머 동남쪽에는 정병산(또는 봉림산 전단산)과 낙동강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낙남정맥 줄기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러니 보름달이 동쪽 하늘에 떠올라 저수지에 달빛이 내려앉을 시간쯤이면 바로 이 백월산정에 도착해 한가위 저녁의 정취를 한껏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야간 산행이 여의치 않다면 밝을 때 산행을 마무리한 후 달이 떠오를 무렵 주남저수지 주변으로 이동해 호수에 비친 달빛을 감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당나라 시인 이백보다 훌륭한 시 한 편을 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월산 정상부 3개의 암봉에서는 북쪽의 낙동강 줄기를 감상할 수도 있다.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강물을 보면서 걷는 한가위 달밤 산행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전체 산행은 창원시 북면 월백리 월산마을 입구 등산로 안내판에서 출발, 화양고개에서 마무리한다. 안내판~마을 안 갈림길~이정표~능선 사거리~산불초소~하봉~중봉(정상석과 감시카메라 위치)~백월산 정상(상봉)~갈림길~헬기장~남지갓등~안부~범골봉(백월산정)~안부 사거리(나무다리)~화양고개 순. 총거리 6.2㎞에 걷는 시간만 2시간40분, 휴식과 식사를 감안해도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산행 후에는 인근의 마금산온천으로 이동, 연휴에 쌓인 피로를 풀고 동행한 산 친구들과 북면막걸리를 한잔쯤 마셔도 좋다. 자가용을 들머리에 세워놓고 야간산행을 했다면 화양고개에서 산행을 마친 후 들머리인 월산마을까지 30분쯤 걸어야 한다. 〈근교산&그너머 674〉


■경남 김해 무척산 원점회귀

- 정상 아래 천지, 달빛 머금을 때 가을밤 정취 물씬

김해 무척산 정상 부근에 있는 연못인 '천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대표하는 풍광은 정상부의 산정호인 천지(天池)와 그 주변의 산군들이다. 한가위 보름달이 이 호수에 잠긴 모습을 보고 싶긴 하지만 언감생심. 규모 면에서나 유명세에서 백두산 천지와 비교하긴 힘들지만 근교에도 분명히 천지라는 이름을 가진 산상호수가 있다. 웬만한 산꾼들이라면 "아하, 그 산"이라며 즉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남 김해 무척산(無隻山·703m)이다.

낙동강을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도 유명한 무척산은 사실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의 모은암 코스가 일반적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오름길이나 하산길, 정상에서까지 줄곧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상동면 용산나루터 기점의 원점회귀 코스는 색다른 무척산 산행의 재미를 전해준다. 낙동강 건너의 원동역과 그 주변의 천태산 토곡산 등을 마주 보며 선 무척산은 암릉과 절벽, 흔들바위, 수로왕비인 허황후의 전설 등으로도 유명하지만 역시 천지라는 연못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가락국 수로왕을 장사지낼 때 자꾸 능에 물이 고이자 한 신하가 주변 고을 높은 산에 못을 파면 물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 예언, 그의 말대로 못을 파니 더 이상 능에서 물이 나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바로 그 못이 천지라는 것. 신비감이 도는 전설과 함께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 연못은 보면 볼수록 평화스럽다. 작지만 평온한 연못에 한가위 달빛이 곱게 스며든 모습에 홀렸다가 어두워진 후 능선을 타고 내려설 때는 다시 한 번 낙동강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감상할 수도 있다. 강 건너 토곡산과 오봉산 줄기를 덮은 하늘에 걸려 있는 달과 강물에 비친 달을 번갈아 보면서 내려서는 산행길은 환상의 극치를 이룰 것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코스이고 천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넉넉잡아 3시간(휴식 포함)쯤 걸리기 때문에 시간 조절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천지에 달빛이 비치려면 어둠이 제법 짙어진 시간이어야 하므로 아예 오후 늦게 출발해도 되겠다. 전체 산행은 용산나루터와 인접한 상동면 여차리 용산후포마을~173봉~잇단 전망대~292봉(삼각점)~삼거리봉~주능선(무척지맥)~전망대~안부갈림길~정상·천지 갈림길~천지~무척산 정상~천지 갈림길~백운암~부도~용산후포마을 순으로 진행된다. 〈근교산&그너머 568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