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체가 한라산 자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주도. 이 아름다운 섬에는 무려 368개의 오름들이 있어 더욱 더 신비함과 풍성함을 자랑한다.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오름이라는 것은 동사 '오르다'에서 파생된 제주도의 작은 산들을 일컫는다. 거의 대부분이 독립화산체 또는 기생화산체다. 흔히 제주도의 오름이라고 하면 한라산을 제외한, 제주도의 내 크고 작은 산이라고 보면 틀림 없다. 정상에 오르면 제주도 방언으로 '굼부리'라고 불리는 분화구가 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해 한라산도 일종의 오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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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 & 그 너머' 취재팀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자 '용암동굴의 어머니오름'으로 일컬어지는 제주도 거문오름 제1전망대에서 주변 풍광을 살피고 있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오름은 부대오름, 그 왼쪽은 부소오름이며 그 너머에 유명한 산굼부리가 있으나 안개에 가려졌다. |
오름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숨쉬는 삶의 터전이다. 어릴 때는 오름을 놀이터 삼고, 죽어서는 오름에 묻힌다. 오름 밑에 있는 크고 작은 밭들은 섬 사방에 펼쳐진 바다와 함께 제주인들의 2대 생명줄 중 하나다.
그랬던 오름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걷기 열풍을 타고 트레킹 또는 산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이제 제주를 여행함에 있어 오름 한 두곳을 오르지 않았다면 제주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가 됐다. 또한 한라산을 각 코스별로 여러 차례 올라본 산꾼들은 서서히 오름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도 하다. 별로 높지도 않고 많은 힘을 필요로 하지도 않지만 마치 어머니의 가슴을 연상케하는 부드러우면서도 봉곳한 오름을 오르며 산꾼들은 이국적인 정취 속에 아련한 모정(母情)을 되살린다. 그런 아련한 그리움이 많은 산꾼들의 발길을 이끈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많다. 혹자는 바람, 억새, 안개, 비 등 오름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들이 신비해서 찾는다고도 한다.
■백록담 3배 크기 분화구에 깊고 긴 용암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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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오름 앞 전망대에서 본 거문오름 분화구 내 풍경. |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2회에 걸쳐 제주 오름 답사 특집을 마련했다. 가을을 맞아 오름에서 만나는 억새와 바람의 '협연'을 기대하는 의미도 있다. 이번 주는 그 첫 번째 순서로 거문오름(456m) 편을 소개한다. 거문오름은 '검은오름'이라고도 불리는데, 당초에 분화구의 숲이 너무 짙어 검게 보인다고 검은오름이라고 부르다가 거문오름으로 명칭이 변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다른 설로는 신(神) 또는 '성스러움'을 뜻하는 '검'이라는 말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명칭 유래야 어떻든, 거문오름은 제주도 368개 오름 가운데 유일하게 2007년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됐다는 점에서 그 생태환경적 가치 측면의 중요성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007년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될 당시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응회구,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등 3곳이 인정받았다. 거문오름은 아홉 개의 봉우리가 분화구 내의 알오름(372m)을 품고 있는 형상인데, 분화구 크기가 둘레 4551m에 이르러 한라산 백록담의 3배에 달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용암이 터져 흘러간 흔적인 북동쪽이 개방돼 있는 말굽형 오름으로써 분화구 내의 용암협곡으로는 제주에서 가장 긴 협곡을 지녔다. 또한 만장굴 김녕굴 벵뒤굴 용천굴 당처물동굴 등 제주 북동쪽 용암동굴들의 시원으로써 일명 '용암동굴의 어머니'라는 애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세계자연유산센터서 원점회귀 5.5㎞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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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화구 형상의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는 2012년 9월 개관했다. 뚫린 중앙홀 천장을 통해 거문오름이 보인다. |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를 들머리 겸 날머리 삼은 거문오름 답사 코스는 짧게는 1.8㎞(정상 코스)부터 길게는 10㎞(태극길 종주 코스)까지 다양한 길이로 나눌 수 있는데 취재팀은 길이로는 중간급인 5.5㎞(분화구코스)짜리 코스를 답사했다. 세계자연유산센터~초소앞 갈림길~제1전망대~거문오름 정상~제2전망대~초소 사거리~용암협곡~분화구 전망대~일본군갱도진지~숯가마터~풍혈~수직동굴~갈림길~초소 사거리~세계자연유산센터 순이다. 약 3시간이면 넉넉하다.
분화구 모양을 본딴 특이한 구조의 건축물인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중앙홀에서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천혜의 신비를 간직한 듯 우뚝 속은 거문오름을 향해 출발하면 완만한 오르막이다. 10분 후 초소앞 갈림길에서 왼쪽 전망대 방향으로 계단을 오르면 제1전망대를 만나는데, 한라산 자락 동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처다. 곧이어 바닥에 정상의 높이가 표시된 정상을 지나 약간 내리막을 타면 백록담 보다 3배나 크다는 거문오름 분화구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에 닿는다. 온갖 희귀한 식물들과 용암협곡 등이 존재하는 분화구가 발 아래에서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는 듯하다. 좀 더 내리막을 타면 어느새 편평한 평지에 있는 초소 갈림길. 최단 코스만 답사하려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나가면 되지만, 취재팀은 태극길코스가 표시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간다. 분화구 속으로 진입하는 셈이다. 잠시 동안 억새길이 이어지더니 곧바로 짙은 밀림 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끼 낀 곶자왈·풍혈·밀림 등 이국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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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오름 분화구에 지천으로 펼쳐진 곶자왈. |
얼마 가지 않아 좁지만 깊게 패인 계곡을 지나는데, '용암협곡' 안내판이 이 지점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원래는 협곡이 아니라 땅 밑으로 용암이 흘러간 작은 동굴인 셈인데, 천장이 무너지면서 협곡 모양이 됐다는 것이다. 거문오름 용암협곡은 폭이 80~150㎝, 깊이 15~30m가량인데 그 길이가 무려 2㎞에 이른다. 신기한 느낌 속에서 빼곡한 삼나무 숲을 지나고 왕쥐똥나무, 가마귀베개, 말오줌때 등 희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나무들도 만나면서 분화구 속 밀림을 걷는다. 곳곳에 '곶자왈'이라고 불리는 돌무지숲이 펼쳐져 있다. '곶'은 숲을, '자왈'은 작은 바위 등 돌덩이를 가리키므로 곶자왈은 돌숲을 가리킨다. 너덜지대에 나무가 자란 것을 상상하면 된다. 거문오름 곶자왈의 화산암들은 초록의 이끼가 곱게 옷을 차려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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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오름 분화구 안에는 울창한 삼나무숲도 있다. |
알오름 직전 볼록 솟은 곳에 분화구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사방 360도로 펼쳐진 분화구 숲 전체를 눈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일본군이 이제강점기 말에 팠다는 일본군갱도진지를 지난다. 거문오름에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6000여 명으로 구성된 108여단 사령부가 주둔했으며 갱도진지를 비롯해 병차도로, 주둔지 등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거문오름에서 발견된 갱도진지만 10여곳이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에 일본군 갱도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특급 조망처인 서귀포 서쪽 군산오름에서도 9개나 발견됐다. 아픈 역사의 현장들이다.
이어서 만나는 숯가마터는 아래쪽 둘레가 25m, 높이는 2m 안팎인데 현무암을 둥글게 쌓아 올려 아치형으로 만든 가마가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분화구 내에 분포하는 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서어나무 보리수나무 등이 숯의 재료로 사용됐다고 한다. 조금 더 가면 갑자기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바람을 뿜어내는 풍혈이 있다. 거문오름 풍혈은 곶자왈의 상부에서 더운 바람이 들어가 돌들의 틈새를 통과하면서 차가운 바람으로 바뀌어 다시 아래쪽으로 나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겨울에는 반대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가 훈풍으로 바뀐다고 한다.
■희귀식물 다양… 깊이 35m 수직동굴도 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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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을 지난 후 만나는 거문오름전망대(제2전망대)에 서면 백록담 3배 크기라는 분화구 전체가 조망된다. |
이어지는 길은 밀림의 연속이다. 뱀과 노루 등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 있고, 누리장나무꽃과 개다래의 조화가 아름다운 숲길이다. 20여분 걸어가다가 만나는 수직동굴은 거문오름의 또다른 자랑이다. 깊이가 35m 정도 되는데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수직동굴이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일반 답사객은 입구만 볼 수 있다. 수직동굴을 지나면 곧바로 갈림길. 오른쪽을 택하면 능선을 통해 가장 긴 코스를 탈 수 있지만 취재팀은 왼쪽을 택해 세계자연유산센터로 복귀하기로 했다. 화장실을 지나 초소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구간에서 가을철에 걸맞는 억새길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20분이면 출발지에 닿을 수 있다. 오른쪽 태극길 능선 종주 코스를 택할 경우에는 추가로 1시간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떠나기 전에
- 사전 예약제 운영…하루 400명만 답사 가능
- 오름 아름다움 담은 '김영갑갤러리' 가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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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거문오름 분화구 안에 있는 수직동굴 입구. |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은 제주도 내 오름 가운데 유일하게 사전 예약을 통한 답사만 허용된다. 온라인(http://wnhcenter.jeju.go.kr) 예약의 경우 답사 예정일 하루 전까지, 전화(064-710-8981)로는 이틀 전까지 예약해야 한다. 또한 하루 최대 400명 만 답사가 가능한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위원회가 5년에 한 번씩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재심사하기 때문에 거문오름의 생태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다. 문화해설사의 인솔에 따라야 하는 점도 필수다. 분화구 형태의 건축물인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중앙홀의 매표소에서 입장권도 구매해야 하는데 개인은 성인 2000원, 총소년 군인 어린이 1000원. 단체일 경우 20% 할인된다.
한편 제주의 오름이 일반인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확산시킨 계기 중 하나는 2005년 불과 48세의 한창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타계한 사진가 고(故) 김영갑 선생의 아름다운 사진들이다. 그는 생전 자신의 저서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통해 오름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했다. 이왕 오름 산행을 할 예정이라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http://www.dumoak.co.kr/)'도 둘러보길 권한다.
◆교통편
- 서경카훼리 일요일 빼고 매일 제주로 운항
- 단체 답사 땐 그랑투어 등 전문여행사 이용
(주)서경카훼리가 운항하는 부산~제주간 카훼리 여객선을 이용하면 좋다. 금요일 저녁 배편으로 가서 토요일 낮 답사후 저녁에 다시 배를 타면 일요일 오전 일찍 부산항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경파라다이스호(6626t급)와 서경아일랜드호(5223t급) 등 두 척의 카훼리가 운항하는데, 서경파라다이스호는 부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월·수·금요일 오후 7시에 출항해 다음 날 오전 7시에 닿는다. 제주항에서는 화·목일 오후 7시,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출항해 다음 날 오전 7시 부산항에 입항한다. 서경아일랜드호는 화·목·토요일 오후 7시 부산항에서 출항하고 다음 날 오후 7시 제주항을 출발한다. 상세한 운임 및 예약은 서경카훼리 홈페이지(http://skferry.haewoon.c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전화 예약(1688-7577)도 가능하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번영로 노선 시외버스(매시간 10분, 50분 출발)를 타고 거문오름 입구에 내리면 된다. 산악회 단체 답사일 경우는 그랑투어(051-554-6262) 등 전문 여행사를 통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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