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엔 서로 의지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홀로 사는 노인과 노부부들이 인생 황혼기를 즐기며 사는 동네가 부산 도심에 있다.

금련산 기슭에 자리잡은 흰돌실버타운(수영구 망미동)은 노인전용 주거시설이다. 부산 천주교 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로사사회봉사회가 지난 2000년 10월 문을 연 지역 최초의 그리고 제대로 된 유료 노인복지주택이다. 이만한 시설은 전국적으로도 보기 힘들다. 타 지역에 사는 노인들도 이곳에 오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실정이다. 영구임대 아파트형 흰돌실버타운에는 모두 203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현재 3세대가 비어 있지만 최근 계약이 끝났다.

34평짜리를 얻어 7년째 살고 있는 조형남(80) 박순남(74) 부부는 "효자가 따로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집값 관리비 많이 안 들지, 벨만 누르면 직원들이 곧장 달려와 병원으로 데려다 주지, 전용식당이 있어 밥을 따로 해 먹을 필요 없지, 공기 맑고 바로 뒤에 풍광 좋은 산이 떡 하니 버티고 있지, 바깥 나들이하기도 편한데 이만한 곳이 어디 있느냐는 얘기였다.

조 씨는 거실 밖을 가리키며 "광안대교 불꽃놀이를 앉아서 즐긴다"고 자랑했다. 부인 박 씨도 "뒷산이 우리집 정원이야"라고 거든다. 그래도 노인들만 모여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씨는 "모르는 소리"라며 손사래쳤다.

처음에는 자식한테 갈 수 없으니 실버타운, 그것도 임대아파트로 갔다고 손가락질하더란다.

"친구와 함께 들어오려고 했는데 나이 먹은 사람들만 모이면 빨리 늙는다며 한사코 거절하데. 근데 지금 그 친구 우울증 걸려서 고생 많이 하고 있어." 나이가 들수록 주위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외로워진다는 것이다.

"누가 늙은이들 상대해 주겠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

여기 오기 전에 광안리 2층 단독주택에 살았던 조 씨 부부는 실버타운 입주를 그래서 '탁월한 선택'으로 꼽는다. 단독주택 시절에는 안전 문제와 건강 관리 때문에 매일 불안속에 살았다고. "2층을 전세 줬는데 자주 들락거려 마음을 놓을 수 없었어. 또 자식들이 타지에서 살고 있는데 갑자기 아프면 어떡해."

조 씨 부부는 오전 7시 체조(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입주민들이 모여 함께 운동하니 친교도 되고 건강에도 그저 그만이야."

조 씨는 집 인근에 아담한 표구상을 차려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평소 취미를 살린 데다 돈도 벌고 손님들과 이야기하며 소일하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실버타운내 창녕 조 씨 모임도 갖고 있다. 부인 박 씨는 일 주일에 두 번 주례에 있는 부산사회체육센터에 나가 스포츠댄스를 즐기는 '멋쟁이 할머니'다. "8년째 다니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 고스톱치고 함께 이야기하며 밥먹는 게 좋아. 고스톱이 치매를 예방한다데."

조 씨는 아내와 산책하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인근 수미초등학교 운동장을 찾는다. 인조잔디가 깔려 있어 운동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 땀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젊은이들을 지켜보는 게 큰 즐거움이야. '나도 저들처럼 힘내서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거든."

박 씨에게도 한가지 불만은 있다. 그전까지 실버타운에서 운영하던 노래교실이 없어진 것이다. "노래부르는 게 뭐가 나빠서 없앴는지 모르겠다"고 마뜩찮아 한다. '앗 뜨거라' 싶었던지 옆에 있던 실버타운 김시도(42) 사회복지차장이 "상의해서 다시 만들어 드릴 게요"라고 달랜다. 직원과 입주자 간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같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젊은 할머니' 문영생(73·사진1) 씨도 실버타운 예찬론자다. 문 씨의 남편은 과거 수산대학교 총장을 지낸 박영호(78) 박사. "남편이 조용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고 해 왔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어. 그런데 살아보니 정말 편리해. 우선 식사준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루 세 끼 준비하는 게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너무 힘들거든." 문 씨는 영양사가 짠 건강식단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좋아하는 화초기르기와 책읽기, 이웃 만나기,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하루가 뚝딱 지나가버려.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어."

실버타운내 문화센터 3층에는 각종 취미여가 시설들이 있어 입주자들이 각종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여가생활을 즐긴다.

박재권(74·사진2)씨는 하루 3시간 한글서예 연습에 열중한다. 서예실 한 켠에 걸린 그의 작품을 보니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평소 실버타운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미래를 생각했지. 생업에 바쁜 자식들이 부모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없잖아. 수년을 이곳에서 살아보니 삶에 여유가 생겼어. 정말 사는게 고맙게 느껴져." 박씨에게 서예실은 정말 소중한 공간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난 뒤 이곳에서 신문을 보는 그는 "여기가 나의 서재"라며 만족해 했다.

17평짜리에서 혼자 사는 유정열(81·사진3 오른쪽) 할머니는 여든을 넘은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열적이다. 그는 요즘 종이접기에 재미를 붙였다. "10분이 아까워. 분갈이 하랴 화단 가꾸랴, 거기에다 애완동물 밥도 줘야지. 바쁘다 바뻐"하며 강사의 설명에 따라 부지런히 색종이를 접는다.

조형남씨 부부가 정답게 팔짱을 낀 채 흰돌실버타운내에서 산책하고 있다. 서순룡기자 seosy@kookje.co.kr

실버타운 김 차장은 "이밖에도 분기별로 한번씩 당구대회를 열고 일주일에 두번 비디오감상실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고 설명했다. 분기별로는 시내 쇼핑도 나간다.

이곳 입주민들은 의료보험 적용범위 내에서 1차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받는다. 물론 입주비에 얼마간 계산이 된 것이기는 하지만. 타운내 흰돌복지의원에서 감기 등 가벼운 질환은 돈들이지 않고 진료받을 수 있다.

영구임대형 실버타운이기는 하지만 빈 집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노환이나 질병으로 숨지기도 하고 사정때문에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금 청약하면 2~4년 후 입주가 가능하다.

몇년전 이런 일이 있었단다. 70대 할머니가 혼자 입주했는데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급전이 필요했다. 이 할머니는 입주보증금을 빼내 울면서 나갔다. "자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나는 할머니를 보고 입주민 전체가 우울해 하더군요.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김 차장은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 흰돌 실버타운은…

- 총203세대 유료 영구임대아파트형

- 청약+입주금 7900만~1억1400만 원

- 응급벨 곳곳 설치… 여가시설 다양

일반인을 위한 시니어타운은 흰돌실버타운이 부산에서 유일하다 해도 무방하다. 한 곳은 지난해 부도처리됐고 또 다른 한 곳은 병력자들을 위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흰돌실버타운 현황과 입주자격, 입주금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실버타운 건물은 모두 4개동으로 주거동 3개와 문화센터로 구성돼 있다. 총 세대수는 209세대이고 이중 임대 세대는 203세대다. 나머지는 봉사자 및 방문객 숙소로 사용된다.

평형별로는 △17평형(전용면적 11.5평) 157세대 △25평형(19평) 23세대 △34평형(22.5평) 22세대 그리고 12평형이 1세대다. 현재 청약 대기자는 총 153세대로 17평형이 86세대, 25평형이 49세대, 34평형이 18세대다.

# 입주자격

60세 이상으로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된다. 부부가 입주할 경우 한 사람이 60세 이상이면 된다. 세대당 2인에 한하되 자식이 부모를 모시며 살 수는 없다. 사회복지법인 로사사회봉사회가 천주교 유지재단 산하이긴 하지만 입주할 때 종교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 청약 및 입주비용

입주 계약은 청약 접수 순번대로 이뤄진다. 그러므로 입주 의사가 있는 사람은 일찍 청약을 해야 한다. 청약서를 작성하고 청약금을 내면 된다. 17평형은 300만 원, 25평형은 500만 원, 34평형은 600만 원이다.

계약때는 부대시설 장기운영 보수 등을 위해 쓰이는 입소비용(시설운영 선납금)을 내야 한다. 입주금은 입주보증금과 입소비용을 합한 개념으로 △17평형 7900만 원 △25평형 1억1600만원 △34평형 1억3800만 원이다(표물1). 이는 1인 기준으로 부부가 입주할 경우에는 50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흰돌실버타운은 영구임대형으로 입주금을 한 번만 내면 평생 더 내지 않아도 된다. 입주 후 8년간에 걸쳐 입소비용이 소멸되는데 만일 8년 전에 나올 경우 거주일자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한 후 돌려받을 수 있다. 입주보증금은 전액 반환된다.

# 입주후의 월 예상 생활비

흰돌실버타운의 관리비나 식비는 월 일정액이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이용한 금액을 낸다. 따라서 전기료 수도료 가스료는 세대별 사용량에 따라 매겨진다. 세대수가 가장 많은 17평 형 2인 기준으로 월 관리비는 대체로 17만~18만 원이 든다(표물2).

식비는 전용식당에서 하루 두 끼를 먹을 경우 30만 원 선이다. 식비와 관리비를 합한 생활비는 한 달에 50만 원선으로 보면 된다.

# 특징

위급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 응급벨이 설치돼 있다. 벨을 누르면 수분내로 직원들이 달려와 병원에 데려다 준다. 또한 복도 벽면에는 걷기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지지대(지팡이 대용)가 부착돼 있다. 실버타운 전체를 대상으로 외부인 침입 을 감시하는 무인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여가생활을 위한 서예실 비디오감상실 다도실 사랑방 등이 배치돼 있고 배드민턴과 게이트볼, 골프연습도 할 수 있다. 목욕장과 헬스센터 이용은 입주민의 경우 1회에 1500원만 내면 된다. 하루 한두 차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각 세대를 돌며 건강체크를 하고 있으며 혈압 체크와 감기약 처방, 물리치료 등 1차 의료서비스는 무료다. 이와 함께 환자들을 위한 유료요양시설(42병상)을 별도로 운영 중인데 비용은 한 달 기준 5인실은 140만 원, 2인실은 180만 원이다. 이 시설에서는 간병인이 24시간 돌봐준다.

◇ 표1-흰돌실버타운 입주금 (단위:원) 평 형 세대수 입　주　금 납 입 방 법 보증금 입소비용 계 계약금 잔금 17 157 5900만 2000만 7900만 1300만 6600만 25 23 9600만 〃 1억1600만 2000만 9600만 34 22 1억1800만 〃 1억3800만 2400만 1억1400만  〈1인 기준이며 부부입주시 500만원 추가〉

◇ 표2-입주후 월 예상 생활비 　　　　　(17평형 2인기준) (단위:원) 구　　분 예상금액 비　　고 일반관리비 8만7000   전기료, TV시청료, 수선유지비 3만5000 공동시설 전기료 및 케이블TV 시청료 상·하수도료,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 6500 공동수도료 포함 승강기 전기료 및 유지비 8500   물탱크 청화조  청소 적립금 2000   가스사용료 4만 연평균금액 합계 17만9000   식비(1일2인기준) 3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