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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42> 친절한 만다린씨, 연해주를 내주다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러시아에 길 열어줘

1860년 북경조약이 맺어진 하북성 승덕사 피서산장의 화려함에서

국가적 위기상황 속의 심한 사치 엿볼 수 있어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1-22 20:30:52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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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북경조약이 체결됐던 중국 하북성 승덕 피서산장의 불망비 앞에 선 필자.
중국의 고위관리를 뜻하는 만다린(Mandarin)이라는 말은 참 많은 뜻을 포함한다. 영어로 Mandarin語라고 하면 중국의 보통화(putonghua), 대만의 국어(guoyu), 싱가폴의 화어(huayu)등 다양한 중화권 나라의 표준어를 통칭한다. 원래는 중국 남부의 광동어(Cantonese)와 대칭되는 중국 북부의 방언을 의미한다. 또 만다린은 엉뚱하게도 귤을 의미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귤을 통 털어서 만다린(Мандарин)이라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의 대표적인 여자 드레스인 치파오(長衫, cheongsam)도 만다린 드레스라고 하고 원앙새도 만다린 오리(mandarine duck), 매운탕하면 떠오르는 쏘가리도 만다린어(mandarine fish)라고 한다.

만다린의 어원을 청국의 관리인 '滿大人'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그냥 고급관리라는 뜻을 중국과 교류하던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썼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만대인은 보통화로 쓰면 만따런(mandaren)이고 광동어로 쓰면 만대얀(mandaiyan)이 되니 그럴듯 하다. 뜻이야 어쨌든 특권을 누리던 고위 관리계급으로 현대어로 바꾸면 '국민의 公僕'이다. 하긴, 요즘 '국민의 公僕'은 [국민을 공식적으로(公)을 부리는(僕) 사람]이라는 반어적인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어쨌든 만다린은 중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던 사람들이었다. 청나라 말기 만다린들은 순간의 판단으로 연해주를 통째로 러시아에 내 주고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을 잃었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한반도 동북한에는 마치 맹장처럼 길죽하게 러시아의 영토가 남쪽으로 이어져서 북한과 이어진다. 두만강을 따라서 고작 20㎞를 한국과 이어진 러시아와 한국의 국경이다. 선거구 조작하는 게리맨더링(garrymandering)을 연상시키는 이 국경은 1860년 북경조약으로 생겨났다. 한국의 나선정벌 이후 러시아는 감히 극동의 남쪽 자락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속히 망하는 청나라의 운명에 러시아는 다시 남하했고, 결국 국경을 우수리강으로 하면서 지금의 국경이 되었다. 당시 황제는 지금도 중국을 말아먹었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혹평받는 함풍제였다.

2007년 9월에 필자는 하북성 승덕시를 답사하면서 당시 북경조약의 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북경조약은 북경시에서 5~6시간 동북쪽으로 가야 나오는 하북성 승덕의 피서산장에 있었다. 북경조약을 한참 설명해주니 한 학생이 물어보았다. "교수님, 왜 하북 승덕인데 북경조약인가요?" "글쎄, 부산의 공항이 김해에 있는 것과 같은 의미겠지"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필자도 이렇게 먼 데 있는 줄은 몰랐다. 이화원과 인공호수 등 엄청난 규모의 피서산장을 보고 필자는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미 자금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건물들을 보았던 터라 규모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필자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국가가 풍전등화에 서 있을 때에 이런 사치를 부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은 신작로 닦는 취로사업 정도라는 농담이 나올 법도 했다. 으리으리한 피서산장의 한 귀퉁이에 북경조약이 맺어진 그 건물에 다다른 필자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뱉었다. "청나라, 이러니 망하지!!" 친절한 만다린 덕택에 연해주도 러시아의 땅으로 영원히 넘어갔다. 또 그 덕택에 필자는 연해주에서 발굴도 하고 조사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게 청나라 말기 함풍제와 만다린들의 음덕이란 말인가?

북경조약 이전에 조선은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워 청나라와 국경 획정을 했고,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는 조선도 당시에 국운이 기울던 터라 북경조약으로 러시아가 두만강 유역으로 밀려오는 것에 대해 어떠한 외교적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로써도 간도를 통째로 내주는 결과가 된 것이다.

연약한 함풍제는 나이 서른 남짓에 죽었고 그 다음에 1861년도에 동치제(同治帝)가 즉위했다. 이후 청나라는 급격하게 무너졌다. 같은 시기 일본은 메이지개혁이라는 중요한 변화를 이루어냈다. 반면에 한국과 중국은 주변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후손들이 두고두고 그 대가를 치루고 있다.

최근 중국이 다시 경제적으로 부흥하자 19세기 말 만다린들의 과오를 만주족 정권에 돌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다민족 국가라 좋은 점도 있다. 잘못을 전가할 다른 민족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수의 만족에 일방적으로 400여 년간 지배당한 한족들이라고 뭐 달랐을까 싶다. 지금 국내외 경제위기가 심각하다. 중국처럼 나중에 책임을 전가할 소수민족도 없는 우리나라의 '만다린'들은 작금의 위기를 부디 지혜와 통찰로 이겨주길 바란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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