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용두산공원에서 열린 초량왜관 복원 2차 전문가 포럼 모습. 전문가들은 초량왜관을 역사·문화 콘텐츠로 되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do.kr

"초량왜관 영화를 만들자." "약조제찰비를 용두산으로 옮기자."

국제신문은 지난 20일 오후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초량왜관 복원 2차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왜관 스토리텔링의 집중 발굴과 함께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문화재 복원이 개인의 재산권과 맞물리면 마찰을 빚게 되는 만큼 민·관·산·학의 연계와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 일시 장소: 20일 오후 3시 용두산공원 관리사무소

◇ 발제 : 초량왜관 복원의 의미와 방향(정예정·인제대 건축학과 강사)

◇ 토론자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강석환 부산타워 대표

▷김경일 대마도 부산사무소 부소장▷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교수

▷김한근 부산불교역사연구소 소장 ▷류경희 문화유산해설사

▷박래희 부산시 문화예술과장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 관장

▷최차호 전 한국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가나다 순)

◇ 사회 : 박창희 국제신문 부국장


◆ 발제: 정예정

- 추정의 '왜곡' 차단…전통·역사성 살려야

초량왜관 복원은 보편 타당한 역사적 가치를 후세에 전하는데 목적이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이 적은 만큼 추정과 상상이 난무하는 '왜곡'을 차단해야 한다.

초량왜관은 조선이 사대교린이라는 대외질서를 따르면서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왜인 거주 통제책이었다. 조선시대 외교관계를 표상하는 산물이자 일본 외무성이 무단으로 점령한 이원적 공간인 것이다. 일제의 전관거류지로 바뀌었지만 왜관과 전관거류지는 성격이 구분돼야 한다.

초량왜관 복원은 ▷용두산의 장소성에 대한 이해 ▷건축물 복원의 범위 ▷전·근대와 현재의 관계를 포괄하는 비평적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광복·남포동에 산재한 근대문화유산과 부산국제영화제·자갈치라는 현대적 이미지와의 연계도 빼놓을 수 없다.

초량왜관 복원의 1단계는 용두산의 변천과정(조선 전기에서 초량왜관시절~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현재의 위치)을 통해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공존하던 장소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2단계는 문화콘텐츠와 연관된 복원이다. 초량왜관 역사관이 건립되면 40계단 문화관·부산근대역사관·백산기념관의 정보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3단계는 역사문화 콘텐츠와 기존 문화시설을 연결하는 신개념 복합문화의 창출이다. 프랑스의 렌느는 문화시설과 사이언스 파크를 접목해 전통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한편 미래도시 개념을 잡았다. 경제발전이라는 한줄기 빛만 보고 달려온 우리와 오랜 세월 문화유산을 존중하는 사회적 기반이 구축된 선진국의 인식은 다르다. 특히 문화재 복원이 개인의 재산권과 맞물리게 되면 마찰을 빚게 된다.

지역민 스스로 문화유산 복원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공청회나 학술행사를 열었으면 한다. 초량왜관 복원은 민·관·산·학의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강동진, 강석환

▶사회=초량왜관 복원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부산 근·현대사의 복원과도 연관돼 있다. 당장 해야 할 일부터 토론해보자.

▶이용득(존칭 생략)= 초량왜관의 정확한 면적을 얼마로 봐야 하나. 연구자에 따라 10만 평 또는 11만 평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맞는가. 정확한 기초자료 분석이 문화재 복원의 전제조건이다. 학계에서 정리를 해줘야 한다.

▶강동진= 초량왜관을 그린 옛 그림과 항공측량 사진을 맞춰보면 근사치를 알 수 있다. 초량왜관 복원은 이제 시작이다. 원도심 재생 차원에서 접근하자. 옛 부산유치원 터나 관수가(대마도에서 파견한 우두머리의 거처)가 있었던 아로마호텔·부촌식당은 부산시가 전략적으로 사들여야 한다. 사유지 매입은 기회를 놓치면 영영 불가능하다. 서울시는 인사동이나 북촌을 근대역사지구로 살리기 위해 조례까지 만들었다. 부산도 100년 이상을 내다보는 초량왜관 복원 마스터플랜과 원도심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부산 중구는 초량왜관을 관광의 중심으로 키울 수 있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 시가 1950년부터 데지마(出島)를 복원한 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김경일, 김동철

▶김동철= 현재 용두산 입구에 있는 초량왜관 표석도 제자리가 아니다. 원래는 관수가(현재 아로마호텔 일대) 앞에 세우려 했지만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초량왜관 보다 앞선 두모포왜관 표석도 엉뚱한 곳에 있다. 사유지를 매입하지 않으면 이정표 세우는 것도 간단치 않은 작업이다. 부산시와 중구청의 의지가 중요하다.

▶최차호= 10만 평이 넘는 초량왜관 전체 복원은 불가능하다. 일본에 건축양식이나 평면도가 남아있는 관수가를 우선 복원하면 어떨까. 스토리텔링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득= 역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부산박물관에 있는 왜관 관련 약조제찰비(조선과 대마도가 맺은 5개 조약을 새긴 비석)부터 용두산 자락으로 옮겼으면 한다.

▶김동철= 원래 약조제찰비가 섰던 위치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우선 복원해야 할 건물을 선정하는 것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관점에 따라 엇갈린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사신이 조선국왕에게 숙배를 올렸던 초량객사가 중요하다고 본다. 조일 외교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초량왜관 200년사에서 어느 시기를 복원할 것인가도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설문(왜관과 조선 민가의 경계)은 1709년에 설치됐다. 1600년대에 초점을 맞춘다면 복원에서 제외된다.

류경희

김한근

▶김한근= 폐교된 동광초등학교 자리에 용두산공원 공영주차장이 들어섰다. 부산시는 영화체험박물관까지 짓겠다고 한다. 그곳엔 차라리 동래부사가 일본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던 연대청을 복원하는 게 옳지 않을까.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다고 해서 원도심이 사는게 아니다. 문화유산과 도시의 역사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회= 초량왜관 옛 그림을 보면 현재의 도시구획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역사'라고 하는 것 같다. 초량왜관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자료관(역사관) 건립부터 하자는 목소리가 많은데.

▶김경일= 대마도 관광객들이 초량왜관을 보고 싶다고 자주 연락한다. 학계에서 발표한 연구성과를 재구성해 안내하고 있지만 흔적이 너무 없어 안타깝다. 일본인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작은 유산이라도 되살려 스토리텔링을 입히자. 관광객을 위한 안내판 설치도 중요하다.

▶강석환= 부산타워 관광객의 70%가 외지인이다. 그 중 30%는 일본 관광객이다. 초량왜관은 일본인이 가장 좋아할 만한 관광상품이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용두산에 모형이나 전시관이 들어선다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후손들에게도 부산이 국제교역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김한근= 40계단 문화관의 한 귀퉁이에 초량왜관 자료관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조선시대 유일한 대일무역기지가 이렇게 푸대접 받아야 하나. 역사자료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초량왜관이 있었던 곳에 지금은 어떤 건물이 들어섰는지 시대별로 역추적해보자. 그 자체로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용득

박래희

▶최차호= 용두산에 초량왜관 모형이라도 만들자. 문화해설사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래희= 재원 조달이 관건이다. 초량왜관 표석도 제자리에 설치하려 했지만 도로나 사유지에 막혀 실패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관광안내소에 초량왜관을 3D로 재현해 상영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올해 '디지털부산 역사문화대전' 편찬을 시작했다. 2014년까지 사업비 40억6000만 원이 투입된다. 부산의 모든 문화유산을 정리해 포털이나 모바일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조선 태종 7년(1407년) 문을 연 부산포왜관부터 초량왜관의 역사도 포함시킬 것이다. 안내판 설치는 전문가들과 협의해서 추진하겠다. 우선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염원한다면 부산시도 마스터플랜 수립과 재정 지원에 나설 것이다.

▶사회= 국내·외 문화유산 복원 과정을 보면 민간에서 물꼬를 트고 관이 지원하는 형태가 많다. 민간의 움직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강동진= 문화재 복원은 언론의 어젠다 제기→시민운동→공공의 결단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성공한다. 우선 미디어에서 서울·대구·인천의 중구청의 근대문화유산 재생 노력을 취재해 부산 중구청을 자극해 달라. 대구 중구청은 조선 순종이 딱 한번 찾은 달성공원 행차길을 상품으로 만들려고 애써더라. 인천 중구청도 일제 강점기 청관거리를 복원했다. 내셔널 트러스트를 통해 부지 매입 비용을 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한근= 부산타워에서 초량왜관 상설사료관을 운영하려다 공간과 운영비 때문에 중단했다. 민간에서는 '초량왜관 연구회'와 같은 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여론을 결집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최차호

▶류경희= 초량왜관을 다룬 소설이나 대중역사서가 하루 빨리 나왔으면 한다. 드라마 '주몽'이나 '선덕여왕'을 통해 고구려나 신라의 역사가 재조명되지 않았나. 부산 출신의 문화예술가를 불러서 초량왜관을 보여주자. 그들이 상상력을 가미해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면 고급 문화상품이 될 것이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 마쯔리(축제)를 연다. 부산도 초량왜관 축제를 하면 일본 관광객이 많이 올 것이다.

▶이용득= 재일동포 학자가 초량왜관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했다. 이를 청소년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김동철= 조선통신사가 일시적 교류라면 초량왜관은 상시적인 문화충돌의 공간이었다. 특히 초량객사는 한양을 제외한 지방 유일의 외교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선통신사 예산을 초량왜관에 일정 안배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조선통신사와 초량왜관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정예정= 조선의 무역기지에서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의 아픔이 담긴 용두산의 장소성에 주목하면 방향이 잡힐 것 같다. 스토리텔링은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건축물 복원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민간 차원의 한일교류활동이 보다 활발해졌으면 한다.

-1차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