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과 함께 많은 시민이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었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바뀌면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단순히 일상이 아닌 삶의 터전을 바꾼 노동자에게는 ‘위드 코로나’가 또 다른 의미다. 코로나19로 하루아침에 일감을 잃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노동 환경에 위협을 받는 사례도 발생했다. 지난 11일 부산진구에 있는 부산이동플랫폼노동자지원센터 도담도담에서 대리기사, 방과후교사, 배달라이더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여 애환과 바람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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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오후 부산진구 부산이동플랫폼 노동자지원센터 도담도담에서 진행된 ‘위드 코로나 시대의 플랫폼 노동의 미래’ 좌담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배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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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만든 ‘극과 극’
코로나19로 집합금지와 영업시간 제한 등이 시행되면서 당장 일터가 사라진 노동자가 많아졌다. 도담도담에서 지난 9월 부산·경남 대리운전기사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이 95.3%(195명 중 186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하루 평균 호출이 5건 이하인 경우는 83%로 일감 자체가 줄어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리기사노조 부산지부 김종일 비대위원장은 “대리기사 일은 음주 문화와 밀접한데 코로나19로 술자리가 줄면서 침체를 겪었다. 특히 나이 많은 대리기사는 코로나19 감염 가능성 탓에 건강이 염려돼 일을 접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교육 현장의 정책 변화로 방과후강사도 갈 곳을 잃었다. 전국방과후강사노동조합 부산지부 손재광 지부장은 “지난해 한 언론에서 발표한 설문 결과 전국 방과후교사 평균 수입이 코로나19 이전 216만 원에서 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방과후수업 외 다른 일이나 학교 방역 등에 투입돼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오히려 호황을 맞은 배달업계도 고충이 있다. 소득은 늘었지만, 그만큼 새로 일을 시작하는 라이더가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플랫폼 업체에서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일감을 나누다 보니 더 많이 배차받기 위해 무리하게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라이더유니온 부산지부 윤영원 조직국장은 “솔직히 코로나19 확산세 초에는 돈벌이가 괜찮았다. 하지만 다른 직종에 있던 사람까지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목숨 걸고 질주해야 어느 정도 벌이가 보장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코로나19가 바꾼 이들의 일터는 안전과 건강 등 여러 문제로도 이어진다. “방과후강사 대부분이 아이를 가르치는 보람으로 일해왔는데 하루아침에 수업을 못 하게 된 겁니다. 노조에서 심리 치료를 지원하는데 대부분 울며 치료를 끝낼 정도로 우울증을 겪는 교사가 많아졌습니다.”(손 지부장)” “지금도 공황장애를 치료하려고 약을 먹고 있고 밤에도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정돕니다. 배차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위험하게 운전하다가 사고 난 현장을 보기라도 하면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집니다.”(윤 조직국장)
수입이 줄었다는 이유로 플랫폼 업체도 노동자에게 제공하던 지원책을 거둬들이면서 일하기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대리기사노조 부산지부 김철곤 비대위원은 “예전에는 일하고 나면 다음 배차지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업체가 있었는데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이마저 사라졌다. 건당 수수료도 올려 받으면서 압박이 더해지는데 부디 대리기사를 상생해야 하는 동반자로 인식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이라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코로나19 시대에 큰 타격으로 돌아온 셈이다. 손 지부장은 “방과후강사는 교육청 소속이 아니라 외부 위·수탁 계약으로 맺어진 교내 비정규직”이라며 “교과 보충뿐 아니라 아이 돌봄 역할도 하는데 법이 없다는 이유로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 현장 모두 우리를 내버려두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대형 플랫폼 의존 현실
특히 온라인 비대면 방식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노동자를 옥죄어 온다. 배달 라이더와 대리기사가 조금 더 좋은 조건의 배차를 받기 위해 몇 차례 배치를 거부하면 아예 일감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수 기사에게 일괄적으로 일감을 나누기 때문에 쉴 틈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김 비대위원은 “고객과 가까이 있는 기사를 우선 배차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에게 동시에 배차한다. 이를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 다른 플랫폼에서도 일감을 받을 수 있는데 해당 회사 건만 보고 있으라는 ‘갑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늘어나는 배달 플랫폼도 배차 수락 여부 및 평가 지표 등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윤 조직국장은 “너무 먼 거리의 배달이 지정돼 이를 거절하면 거절 횟수에 따라 계정이 막혀 일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배달 성공 횟수 등을 점수화해 특정 시간대 주문을 먼저 주기도 하는데 굉장히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한데 뭉쳐 목소리 모아야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플랫폼 노동자 자신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방과후강사노조는 코로나19 이전 40명에 불과하던 노조원이 현재 160명까지 늘어났다. 라이더유니온은 안전운임제 도입 등을 포함한 ‘라이더 보호법’을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했고 통과를 위해 단체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윤영삼(부경대) 경영학부 교수는 “업체와 정부의 변화를 끌어내려면 전국적으로 노동자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과거처럼 모여 일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스스로 노동자라고 인식하기 어렵지만, 화물기사처럼 결국 노조가 중심이 돼 존재 가치를 내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화물자동차 최저 운임을 국토교통부 고시로 지정한 ‘화물연대 표준운임제’ 등이 화물연대 등 노동자의 주장을 반영해 시행되고 있다.
감염병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과 근로기준법의 중요성을 환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세를 극복하고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해당 기간 생계를 위협받은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정길 센터장은 “생전 처음 겪은 코로나19로 소득이 ‘0’이 된 노동자가 많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을 플랫폼 노동자가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