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강제징용노동자 배상 판결 후를 주목하며 /김현정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04 19:04:23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올해 늦봄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방문했다. 부산박물관 근처는 자주 다녀 익숙했지만 언덕 쪽에 위치한 역사관은 우연히 발견했다. 아이와 함께 각 지자체의 박물관을 방문해 왔던 터라 우리 지역에 위치한 이곳을 모르고 있었던 데 새삼 놀랐다. 평일 제법 늦은 시간 역사관으로 향했다. 역사관은 높은 곳에 위치해 꽤 멀리서도 시야에 들어오지만 진입로를 찾기는 여간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몇 번을 헛돌아 겨우 찾은 역사관의 전경은 예상했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역사관 전면과 마주하기도 전 도로부터 몇 대의 전경버스와 경찰이 건물을 엄호하고 있었다.

‘관람을 할 수 있을까. 돌아 가야 하나’. 고민하며 걸어가던 중 건물 한편에 서 있던 빨간 조끼 입은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지금 1층으론 들어갈 수 없으니, 건물을 돌아 수장고 쪽 입구를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면 관람할 수 있다고 상세히 알려줬다. 1층 유리 안쪽을 가리키며 저기를 촬영해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유리창 쪽을 보고나서야 상황이 이해됐다. 지난 5월 내내 뉴스에 오르내렸던 강제징용노동자상이 거기 있었다.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몇 차례나 봤던 조각상이지만 예기치 않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딱 마주치니 꽤 생경했다. 동상을 세운 측도, 철거를 강행한 측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힘겨운 시기를 견뎌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노동자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오랜 세월을 지나 또다시 갇혀 있는 듯해 마음이 무거웠다.

역사관 내부 전시실은 ‘기억의 터널’이란 긴 복도로 시작된다. 복도 벽면 강제징용의 길을 떠나는 그들과 관람객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 조선인 780여 명이라는 강제동원의 통계적 기록과 함께 강제 징용된 개개인의 기억과 마주한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나기 전 가족들과 함께한 최후의 사진, 강제동원 노무자의 급여봉투, 편지, 소지품 등 생활 기록 전시물이 빼곡하다. 전시품 중 한 의복은 요즈음 초등학생의 품 정도밖에 되지 않아 몇 살 아이가 징용된 것인가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역사관 4, 5층은 내부에서 한 측으로 층이 트여져 한쪽 벽면 가득 피해자들이 기증한 기념공간이 조성돼 있다. 그들 가족에게 소중한, 어쩌면 마지막 기억의 사진들을 기념공간에 걸어두어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현재의 우리와 함께 추모하는 곳이다.

지난달 30일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피해자 4분 중 이제 한 분만이 생존해 판결을 직접 받아낸 상황이다. 온갖 이유로 긴 세월을 돌아온 배상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씁쓸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해당 결과에 대해 생각을 나눌 새도 없이 일본정부는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아베 총리는 이전부터 사용해온 ‘징용공’이란 표현 대신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 칭하겠다는 발언을 시작했다. 한일 간 강제징용에 관한 배상은 이미 1960년대에 해결된 문제라는 기존의 주장에 더해 이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예고했다. 일본정부는 국제사회에 대한 막강한 외교력을 통해 이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 시사한 것이다.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문제는 해묵은 한일 간 갈등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과거 기억보다 현재의 국제정세를 우선한 탓에 이견을 가진 자들에 의해 힘든 과정을 거쳐왔다. 이제 대법원 배상판결이 확정됐으니 차후 실제 배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여전히 힘든 과정이 남았다. 2차 대전 피해의 상징인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을 찾아 무릎을 꿇고 기억을 상기하며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던 독일총리의 모습과 대비된다. 피해자들을 위로하며 ‘영원한 책임’을 되새기는 독일총리의 모습을 상기하면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정치, 외교는 어떤 방식으로 상호 작용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닿게 된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전시관의 마지막은 ‘시대의 거울’이란 공간이다. 짧은 철길이 놓인 한쪽 유리벽에 강제노무동원자들의 윤곽선이 피해자의 성함으로 빼곡 채워져 있다. 정면으로 이들을 바라보면 나의 모습과 그들의 형상이 겹쳐져 시대의 거울이 된다. 이는 현재의 나와 오늘의 한국이 이전의 역사와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자각게 한다. 강제징용노동자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길 없으나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조우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낮 최고 10∼13도
  2. 2"악성 미분양 17개월째 증가"…與 '취득세 중과 폐지' 추진
  3. 3‘마지막 주말 될 수도’…탄핵 찬반 집회 오늘 ‘총력전’
  4. 4[날씨칼럼] AI가 만들어 내는 날씨 예측 시나리오
  5. 5트럼프 관세 우려에 금 선물 종가 처음으로 3000달러 돌파
  6. 6기름값 우하향…휘발유 평균가 두 달 만에 1600원대로↓
  7. 7尹선고 임박에 탄핵 찬반 ‘팩스폭탄’…헌재에 탄원서 빗발쳐
  8. 8거제시장 재선거에 여야 무소속 등 4명 등록 본격 레이스 돌입
  9. 9"우크라인 10명 중 7명, 美 지원 없어도 전쟁 지지한다"
  10. 10통상본부장, 미 USTR 대표와 첫 면담…'상호관세 韓 면제' 요청
  1. 1감사원장·檢 3인 탄핵 줄기각…尹심판 영향 촉각(종합)
  2. 2하나둘 밀린 숙제 끝낸 헌재, 尹·韓 탄핵 선고도 속도낸다
  3. 3대법관 ‘檢 즉시항고’(尹 구속취소) 권고 후폭풍…與 “번복 개입 사법체계 훼손”
  4. 4여야, 소득대체율 합의...국민연금 개혁 급물살
  5. 5부산시의회 올해 첫 추경안 심사
  6. 6정권교체론 47% 주춤…전주比 1%P↓
  7. 7최 대행, 명태균특검법 재의 요구…“헌법상 명확성·비례원칙 훼손 우려”
  8. 8[속보] 尹탄핵 찬성 58%·반대 37%…중도층에선 찬성 69%·반대 26%
  9. 9[속보] 尹탄핵 찬성 58%·반대 37%…중도층에선 찬성 69%·반대 26%
  10. 10[속보] 정권교체 51%·정권유지 41%…이재명 34%·김문수 10%
  1. 1"악성 미분양 17개월째 증가"…與 '취득세 중과 폐지' 추진
  2. 2트럼프 관세 우려에 금 선물 종가 처음으로 3000달러 돌파
  3. 3기름값 우하향…휘발유 평균가 두 달 만에 1600원대로↓
  4. 4통상본부장, 미 USTR 대표와 첫 면담…'상호관세 韓 면제' 요청
  5. 5'AI 대장주' 엔비디아 5.2% 상승…120달러선 회복
  6. 6‘오픈카지노 필수’ 부산형 복합리조트 유치 재시동
  7. 7“부산 맞춤 R&D 체계화에 매진, 연구자 격려 과학기술상 운영도”
  8. 8롯데百 광복점, 부산 신진 디자이너 지원 팝업 연다
  9. 9카카오 김범수 창업자, 건강 이유 ‘CA의장’ 사임(종합)
  10. 10부산상의 양재생號 1년…지역 경제 새 비전 수립할 때
  1. 1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낮 최고 10∼13도
  2. 2‘마지막 주말 될 수도’…탄핵 찬반 집회 오늘 ‘총력전’
  3. 3[날씨칼럼] AI가 만들어 내는 날씨 예측 시나리오
  4. 4尹선고 임박에 탄핵 찬반 ‘팩스폭탄’…헌재에 탄원서 빗발쳐
  5. 5거제시장 재선거에 여야 무소속 등 4명 등록 본격 레이스 돌입
  6. 6경남서 투견 훈련 의심 사육장 잇단 적발… 지자체 긴급 구조
  7. 7부산 8년간 17곳 폐교…용도제한 풀어 활용을
  8. 8부산시, 1조2000억 들여 AI 허브도시 만든다
  9. 9부산희망택시조합 성과금…위축된 업계 새 바람
  10. 10첫 ‘15분도시’ 당감·개금권, 공원·쉼터 본격 운영
  1. 1롯데 데이비슨·박세웅 흔들…필승조 정철원 깔끔
  2. 2퓨처스리그 14일 개막…체크 스윙 비디오판독 시범도입
  3. 3BNK-우리은행 챔프전은 ‘박혜진 시리즈’
  4. 4[인사이드 아웃사이드] 박정은 감독 ‘언니 리더십’
  5. 5셔틀콕 퀸 안세영, 전영오픈 16강행
  6. 6롯데 키즈클럽 선착순 모집
  7. 7KBO,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 혐의' 서준원 무기실격
  8. 8마이너리그 거부권 없는 김혜성, 도쿄행 불발 트리플A서 시즌 시작
  9. 9뮌헨 철기둥 김민재·PSG 조커 이강인, UCL 8강행 기여
  10. 10첫 챔프 노리는 BNK, 판박이 우리은행과 리벤지 매치

Error loading images. One or more images were not found.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