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눈길은 따뜻했으나 눈빛은 선연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말씀은 결기가 넘쳤다. 얼마 전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적정기술연구소 개소식. 홍경완 총장님이 적정기술을 종교적 의미와 철학적 가치로 풀어헤치는 즉석 강연 풍경이다. 부산에서 풀어나갈 적정기술의 혜안을 가진 든든한 원군을 만난 느낌이다.

최근 대한상의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MZ세대는 비싸더라도 착한 제품을 쓴다고 한다. 전 세계 투자금의 35%가량이 ESG와 관련된 기업에 투입됐다고도 한다. ESG가 10년 전에는 새로운 토픽이었다. 5년 전에는 트렌드가 되더니, 이제는 전통이 되어버렸다.

부산테크노파크(부산TP)는 지역 산업과 기술혁신의 거점으로서 어떻게 ESG 경영을 실현해야 할까. 연간 1800억 원 규모의 예산으로 기업기술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과연 지역기업이 온전히 그 성과를 느끼고 있는지? 부산의 산업과 기술이 가진 역동성과 주체성, 위기 극복과 혁신, 성공의 과정을 부산 시민과 함께 체감하고 있는지? 지역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부산의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꼬리를 무는 고민 끝에 우리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적정기술이란 넓은 의미로는 인간의 공통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고, 좁은 의미로는 소외계층, 빈곤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술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 매우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한편 상당한 계층적 가치를 내포한다. 여유로운 자가 더 많은 기술적 혜택을 누리도록 암묵적으로 설계되어있고, 경제적 혜택도 누리게 되어있다.

부산TP는 ‘의식하고’, ‘애써’ 소외계층과 취약기업, 지역사회가 가진 문제를 찾고 적정기술로 해결해 보고자 한다. 지역기업의 문제가 해결되고 이웃의 삶이 나아지고 그럼으로써 지역사회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기술적 경험을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에서 적용 가능한 적정기술은 무엇이 있을까.

그 첫걸음은 보편적 수요분석과 함께 부산만이 가진 독특한 조건과 라이프 스타일에 기반한 수요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지대라는 부산의 특수한 지형적 여건, 아파트보다 더 많은 난방비가 드는 산복도로 같은 것 말이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는 않지만 고지대 사람들이 난방비를 적게 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 적합한 수소산업, 취약계층이 활용할 수 있는 모델 발굴이 필요하다. 모든 도시들이 다 하는 것 말고.

부산TP는 부산경실련과 함께 작년 10월부터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정기술 수요조사와 워킹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바이맘이라는 소셜벤처기업과 적정기술로 개발된 난방텐트를 지역 난방 취약계층 220가구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산가톨릭대학교와 함께 대학의 미션과 적합한 가치를 발견하고 적정기술연구소라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부산TP 사업과 연계한 기술형 사회공헌모델로 ‘장애인 이동권 향상 프로젝트’를 추진해 우리 조직의 사업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적정기술 도출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제 부산형 적정기술 개발을 위한 출발선에 섰다. 조만간 자랑스레 그 결과를 알릴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