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한 영화 ‘남극의 셰프’는 여느 일본의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특별한 사건 없이 잔잔한 흐름을 보여준다.

앞서 ‘카모메식당’, ‘심야식당’ 등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했던 바, 이 영화 ‘남극의 셰프’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다만 남극이라는 공간적 한계가 ‘한정된 식재료’라는 조건을 만들어내 흥미를 더했다.

영화는 일상적인 모습을 담고있지만 그들은 사실 남극이라는 오지에 고립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여있다. 이 영화는 실제로 남극 기지에 두 차례 파견돼 조리사 생활을 한 니시무라 준의 실제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의 셰프’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한편 영화 ‘남극의 셰프’는 24일 0시 25분 EBS ‘금요극장’을 통해 방영된다.

△영화 ‘남극의 셰프’ 줄거리:

해상보안청에서 근무하는 니시무라 준은 뜻하지 않게 남극으로 발령받는다. 니시무라의 새로운 근무지는 해발 3,810m, 평균기온 ?54℃를 자랑하는 남극 돔 후지 기지.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눈뿐인 이곳에 파견된 대원은 모두 8명이다. 그들은 바로 기상학자 대장(대장님, 타이쵸), 설빙학자 모토(모토 씨)와 대학원생 형씨(니양, 형님), 대기학자 히라(히라 씨), 의료담당 닥터, 차량담당 주임(슈닌), 통신담당 봉, 그리고 조리담당인 니시무라다. 이들은 열악한 기지에서 서로의 민낯을 내보이며 1년 반 동안 생활해야 한다. 매일 8명분의 식사를 조리해야 하는 니시무라는 남극 기지라는 특성상 제한된 식재료를 가지고 대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고군분투한다. 가족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사는 스트레스에 지쳐가는 대원들에게 니시무라의 음식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씻어주는 특효약이다. 펭귄도, 바이러스도, 사생활도 없는 남극에서 대원들은 연인의 이별 통보에 아파하기도 하고, 눈밭에서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고, 닭새우의 조리법을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라면을 제조하기도 하면서 남은 파견 기간을 함께 버텨낸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영화 ‘남극의 셰프’ 주제: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관통한 키워드 ‘먹방’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남극의 쉐프>는 일본의 가정식부터 프랑스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다. 다만 다른 먹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극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한정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계의 설정은 많은 영화팬에게 사랑받고 있는 <카모메 식당>이나 <리틀 포레스트> 같은 음식을 소재로 한 다른 일본 영화들과 다른 묘미를 만들어낸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남극 기지에 모인 8명의 대원들. 기지 밖은 오직 설원뿐이며 펭귄이나 바다표범도 없다. 극한의 환경으로 인해 몸이 고단한 것은 기본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연락마저도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대원들을 괴롭게 한다. 대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눈밭에서 소프트볼을 하거나 거창한 생일 파티, 짓궂은 장난 등을 벌이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낙은 바로 니시무라의 요리를 먹는 것이다. 본인도 가족과 떨어진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난다’는 마음을 갖고 한정된 재료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니시무라의 자세는 장인정신마저 느껴진다.

무엇보다 남극에 고립되었다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은 일상성이다. 남극의 얼음을 연구한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모였지만, 얼음을 채취하는 과정은 마냥 심각하거나 엄숙하지도 않고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가는 중에 이루어질 뿐이다. 만 여 킬로미터 떨어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식탁은 대원들이 안심하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일상과 동떨어진 남극이라는 공간에서 일본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 일과를 보내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생의 큰 이벤트라는 것도 결국 작은 일상이 포개어져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식사’가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영화 ‘남극의 셰프’ 감상 포인트:

남극 기지에 두 차례 파견되어 조리사 생활을 한 니시무라 준의 실제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의 쉐프(面白南極料理人)>가 원작이다. 아침마다 하는 우스꽝스러운 실내체조처럼 당사자들은 진지하지만 보는 이는 실소가 나오는 상황이 내내 이어지면서 시종일관 웃음 짓게 만든다. 제목에 걸맞게 다양한 요리가 등장하는데, <카모메 식당>, <심야식당> 시리즈,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으로 유명한 이이지마 나미가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맡았다. 거대한 닭새우 튀김, 엄청나게 두툼한 직화 스테이크, 푸아그라를 위시한 프랑스 코스 요리, 명란젓과 연어알을 넣은 큼지막한 주먹밥,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견수(?水)를 직접 제조하여 만든 수타 라면 등 다채로운 요리는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촬영은 원작자 니시무라 준의 고향 홋카이도의 아바시리에서 이루어졌는데 그림 같은 하얀 눈과 파란 하늘의 대비는 흡사 진짜 남극을 보는 듯하다. <골든 슬럼버>, <한자와 나오키> 등의 영화와 드라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얼굴인 사카이 마사토가 무던하면서도 섬세한 니시무라를 잘 소화했으며, 나마세 가츠히사, 도요하라 고스케, 고라 겐고 등 감초 배우들의 실감나는 일상 연기 또한 빛을 발한다.

△영화 ‘남극의 셰프’ 감독:

오키타 슈이치는 1977년 아이치 현 출생으로 영화감독 겸 각본가다. 니혼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2002년 단편영화 <냄비와 친구>로 미토단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2006년 첫 장편영화 <이 멋진 세상>을 만들었으며, 2009년 <남극의 쉐프>로 상업영화에 진출하였다. 이 영화로 신인감독에게 주는 신도 가네토 상을 수상하였으며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감독과 각본가를 겸하고 있으며, 상업 영화에 진출한 후에도 단편 영화와 드라마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남극의 쉐프>, <요노스케 이야기> 등의 작품을 통해 조용하고 잔잔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작은 유머를 짚어내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대표작으로는 <남극의 쉐프(2009)>, <요노스케 이야기(2013)>, <더 모히칸 컴즈 홈(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