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정보통신기술) 기기 ‘아리아’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이 2023년 1월부터 3년간 실시한 ‘노인 재학대 예방을 위한 Safe-Zone 확보 사후관리 강화사업’의 일환으로 학대피해노인의 가정 내에 설치한 기기를 말한다. IT(정보기술)가 데이터의 저장·처리·관리에 초점을 둔 것이라면 ICT는 IT에 통신과 연결까지 더한 개념이다. 즉 IT가 정보를 다루는 기술이라고 하면 ICT는 정보를 주고받는 연결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영상통화·메신저·SNS, 모바일뱅킹·간편결제, 원격진료 등이 바로 ICT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아리아’가 설치된 장소는 학대피해노인의 세이프존(Safe-Zone)이 되며, 학대피해노인은 생활 중에 재학대가 발생하거나 건강상의 문제로 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발화’로 협력업체에 SOS 상황이 즉각 전달된다. 협력업체는 SOS발생 상황을 24시간 모니터링하다가 SOS 발생시 바로 유선으로 상황을 확인하고, 119 및 112와 연계해 현장 대응을 진행한다. 그리고 학대피해노인에게는 위와 같은 학대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을 실시하고, 사후관리 전문인력을 파견해 재학대 예방을 위한 전문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그럼, ‘발화’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학대피해노인이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아리아, 살려줘” “아리아, 도와줘” “아리아, 구해줘” 더욱 놀라운 것은 사투리도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살리도 살려주이소”(경상), “살려줘여 살려줘야 살려주 살려주랑게”(충청 전라), “살려줍센 살려줍써”(제주) 그외에도 “긴급” “에스오에스(SOS)”라고만 외쳐도 된다.

3년의 시범사업 기간 동안, 노인학대 전체 재학대 사례와 세이프존 가정의 재학대 사례의 수를 비교하니, 세이프존 가정의 경우 재학대 발생빈도와 비율이 현격히 줄었다. 2023년 총 노인학대 인정 건수 7025건 중 재학대 발생 건수는 759건으로 재학대 발생비율이 10.3%를 차지했던 반면, 세이프존 가정의 경우 175건 중 6건만 발생해 재학대 발생비율이 3.4%에 불과했다. 만약 전체 학대피해노인 가구가 세이프존에 있다고 가정하면, 약 485건의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노인 재학대는 이미 노인학대 발생사실을 인지하고 또 위험 경고가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를 제때 막지 못해 치명적 결과에 이른다면 그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실제로 지난달 7일께 인천에서 20대 손자가 70대 할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뒤, 자신도 자택 인근 고층 건물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그 다음 날인 11월 8일 손자 사망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자택을 방문했다가 할머니의 사망을 확인했다. 이 사망 사건 이전에 손자의 할머니에 대한 폭행 등 노인학대는 없었지만, 위협 등 그 징후는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할머니 집이 ICT기기 ‘아리아’가 설치된 세이프존이었다면, 그래서 할머니가 “아리아 살려줘”라는 한마디만 했더라면, 경찰과 119가 출동해서 할머니가 허망하게 사망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이프존 확보 시범사업 성과보고서에 따르면, ICT기기‘아리아’는 노인들에게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삶을 지탱하는 ‘절대적 생명선’으로 경험됐다. 사업에 참여한 한 노인은 “기계가 없어지면 내 목숨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기계 없으면 나는 아무도 못 부른다. 그럼 나는 그대로 끝나는 거다”고 말했다. 이렇게 기기를 생명과 동일시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즉 ‘아리아’는 노인들에게 안전과 돌봄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생명선이자,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매개체로 자리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문제는 결국 ‘돈’이다. 내년 본사업 전환을 놓고, 시범사업 수행기관(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 20개소, 쉼터 8개소)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도 이용 수요조사에 따르면 17개소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자체에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을 통해 노인의 심리적 안정감이 향상되고 불안감이 감소되며, 기술과 인간 돌봄의 결합형 안전망이 노인학대 예방에 실질적 효과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말이다. 예산은 1곳당 약 400만 원이라고 한다. 정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걸까? 물음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