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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논산시 내동에 자리한 김홍신문학관 전경. 2019년 개관한 이 문학관은 건축 관점에서 붙은 별칭이 ‘바람으로 지은 집’이다. 필자 제공 |
- ‘인간시장’ ‘대발해’ 등 대표작
- 예술적으로 소개한 1·2층 외
- 관람객 참여형 문학 아카이브
- 공연장·카페·소강당도 마련
- 지역민 문화플랫폼으로 안착
■가을바람 따라 만난 논산의 문학 |
| 작가 김홍신. |
가을이 깊어지면 길 위 풍경도 한 권의 책처럼 천천히 읽힌다. 논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계절의 빛이 낮게 내려앉고, 들녘의 채색은 여름의 푸르름에서 가을의 깊은 빛으로 바뀌어 간다. 그 길 끝에서 만나는 김홍신문학관(충남 논산시 내동)은 그냥 한 작가의 이름을 내건 기념관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문학이 어떻게 한 지역의 기억이 되고, 다시 새로운 문화의 바람이 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2019년 6월 문을 연 김홍신문학관은 ‘바람으로 지은 집’이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어떤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 김홍신의 문학세계를 건축의 언어로 담아낸 공간이기에 그렇다. 문학관과 집필관으로 이루어진 이곳에 들어서면 먼저 문학을 보존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문학이 다시 태어나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건물 곳곳에 흐르는 빛과 바람의 이미지다. 문학관은 과거의 작품을 박제해 놓는 데 머물지 않고 한 작가가 걸어온 시간과 오늘의 독자, 그리고 앞으로의 창작을 하나의 꿰미로 이어준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 작가의 삶과 문학을 따라가는 작은 순례처럼 느껴진다.
■한 작가의 오랜 시간이 머무는 곳 |
| 김홍신문학관 내부. ‘인간시장’ ‘대발해’를 비롯한 많은 작품으로 독자의 마음을 대변한 큰 작가 김홍신의 문학 세계를 느낄 수 있다. |
1층 ‘작가의 공간’에 들어서면 설치책장과 ‘인간시장’ 존, 원형극장 등이 시선을 끈다. 특히 실제 집필실을 재현한 작가의 방은 작가의 손길이 머물렀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상과 서재라는 익숙한 풍경은 오히려 문학이 얼마나 고독한 시간의 축적 위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2층 ‘작품의 공간’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바람’을 주제로 한 키네틱 아트(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임을 포함하는 예술작품)와 미디어 영상이 공간에 움직임을 더하고, 대하소설 ‘대발해’를 쓰며 남긴 육필 노트와 5000여 점에 이르는 아카이브 자료가 작가의 창작 여정을 보여준다. 책으로만 만났던 작품이 한 사람의 고민과 기록, 손으로 쓴 문장의 흔적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3층 ‘참여의 공간’에서는 논산에서 시작해 동북아로 확장되는 문학의 지도를 만난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추억, 한 바람’ 원고지 아카이브도 마련되어 있다. 여기서 문학은 더 이상 작가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독자의 기억과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문학은 살아 있는 현재가 된다.
지하의 ‘열린 문화 공간’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인간시장’ 등 2차 창작물을 상영하고, 공연과 강연을 펼치는 다목적 공간이다. 문학관 안에 카페와 소강당, 자료 공간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이곳의 특징이다. 집필관에는 서재와 레지던시 공간, 세미나실, 수장고 등이 마련되어 있어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전시를 보는 데서 끝나는 문학관이 아니라, 문학을 읽고 쓰고 나누는 곳이라는 복합적 의미가 있다.
■현실의 벽을 넘어 인간의 깊이로김홍신의 문학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는 소설가이면서 우리 사회에 자기 목소리를 내온 실천가였고, 역사와 인간의 문제를 오래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의 문학에는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함께 잠복해 있다.
그 중심에 ‘인간시장’이 있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김홍신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된 ‘인간시장’은 영화와 드라마,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져서 문학이 사회와 만나는 강한 힘을 보여주었다. 문학관 1층의 ‘인간시장’ 존은 바로 그 시대와 작품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김홍신의 문학은 현실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하소설 ‘대발해’에서는 역사 속으로 시선을 넓혀 민족과 인간, 국가와 공동체의 문제를 탐색한다. 문학관에 전시된 육필 노트는 이 거대한 작품이 얼마나 치열한 조사와 집필의 시간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 작가의 문학적 관심이 현재의 현실에서 과거의 역사로, 다시 인간의 보편적 삶으로 깊어지는 과정이 이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근에는 시집 ‘그냥 살자’와 산문집 ‘겪어 보면 안다’를 통해 삶에 대한 보다 따뜻하고 담담한 성찰을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 사회와 인간의 진면목을 관찰해 온 작가가 이제 삶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쪽으로 시선을 옮겨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한 사람의 문학에서 지역의 문화로문학관의 가치는 전시된 작품의 외관이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문학이 지역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홍신문학관은 논산의 문학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의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 2022년부터 문학 행사와 시민 특강, 문학교육, 문학과 예술의 만남 등을 꾸준히 이어왔으며 ‘지역사회 속으로’라는 기치 아래 지역민과 문학의 거리를 좁혀 왔다. 2024년에는 김홍신 작가가 직접 작시한 ‘논산 아리랑’ 발표회를 통해 5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한 작가의 문학이 고향의 노래가 되고, 다시 시민 모두의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집필관의 존재는 문학관의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좋은 문학은 과거의 명작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문장을 쓰는 순간부터 미래의 문학이 시작된다. 창작공간과 레지던시를 마련하고 후학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취지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앞으로 창작 레지던시를 확대하고 김홍신문학상 제정,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 개발을 실천하려는 계획도 문학관이 한 작가의 기념관을 넘어 새로운 문학의 산실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기억하는 집에서 미래를 쓰는 집으로문학관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건물을 되돌아보았다. ‘바람으로 지은 집’이라는 호명이 새삼 마음에 남는다. 바람은 붙잡을 수 없지만 어디에나 흔적을 남긴다. 김홍신의 문학도 그러하다. 시대의 어둠을 향해 목소리를 냈고, 역사의 먼 길을 걸었으며,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을 다독거렸다.
문학관은 그 흔적을 보존하는 집이다. 그러나 동시에 흔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집이다. 작가의 문장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독자가 문학을 만나고, 새로운 작가가 이곳에서 자신의 문장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문학을 현재의 삶과 연결하고, 지역의 문화에서 미래의 창작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문학관이 존재하는 소중한 이유일 것이다.
가을날 논산에서 만난 김홍신문학관은 그래서 한 작가의 이름으로 시작해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집처럼 느껴졌다. 책 속에 머물던 문학이 바람을 타고 사람에게로, 지역으로, 미래로 건너가는 곳. 그곳을 돌아 나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문학은 한 시대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시대의 사람에게 따뜻하고 작은 불씨를 남긴다고. 김홍신문학관은 바로 그 불씨를 오래 지키면서 새로운 바람을 기다리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