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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석 작가가 지난 22일 국제신문 근처 카페에서 장편소설 ’전설의 아파트’와 발코니 출판사의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동혁 기자 jdh4320@kookje.co.kr |
- 부산 30대 독립 출판인 첫 장편
- 20대 세월호 겪으며 의식 싹 터
- 대단지의 다채로운 인물들 생동
- 권력 속성·공동체 가치 등 짚어
‘전설의 아파트’(표지)는 부산의 대단지 아파트를 무대로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오지게 실감 나게 그린, 희석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사회 현실을 향한 풍자와 비판 시각을 바탕에 깔고, 현실감·긴장미·재미를 골고루 배합한 젊은 작가의 야무진 손끝은 궁금증이 일게 했다. 이 작가, 누구지? 지난 22일 국제신문 근처 카페에서 희석(36) 작가를 만났다. 만나고 보니, 나눌 이야기가 간단치 않았다.
그는 2019년 부산에서 독립출판사 발코니를 만들어 차츰 성과를 내는 출판인이자, 흥미롭고 독특한 길을 밟아온 작가다. ‘전설의 아파트’에 집중하려 했던 인터뷰 방향을 조금 틀어 ‘희석 작가, 그는 누구인가’로 시작하기로 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는 2009년 동아대에 들어가 유전공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동아대학보’ 편집국장을 지냈고, 사회에 나가 신문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준비했다.
“세월호 참사를 20대 초에 겪은 세대”로서 특유의 사회의식, 참여의식이 싹 텄다는 취지로 그는 말했다. “하지만 필기시험에서 자꾸 떨어졌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곧장 써야 하는 글에 특히 약해서 논술 시험을 도무지 통과할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신문기자 꿈을 단념한 그는 한 진보 정당에 가입했다가 때마침 그 정당이 당 대표 공보 비서를 최초로 공채로 뽑는다는 공고를 발견한다. 공보 비서는 글 쓰는 자리다. 그는 응모했고 합격했다.
정치 최전선인 정당에서 1년 남짓 치열하게 생활한 뒤 그는 나왔다. 이번에도 ‘현장에서 즉석으로 빨리 글을 써야 하는’ 공보 업무 특유의 글쓰기가 힘겨웠고 맞지 않았다. 정당을 그만두면서, 당시 활성화 조짐을 보이던 독립출판·독립서점 세계를 발견했다. “여기야말로 내가 찾던 세계였어요. 정말 잘 맞았습니다.” 스물아홉 살 되던 2019년 그는 부산으로 돌아와 발코니 출판사를 홀로 차렸다.
“연정 작가의 에세이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밤은 어떡하나요’는 많은 분의 관심 속에 2만5000여 부나 나갔고 인도네시아·일본에 번역 출간됐습니다. 진서하 작가의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는 문학나눔도서로 선정됐고, 제가 쓴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은 7쇄, 연정 작가의 시집 ‘보조개 살인사건’은 2쇄를 찍었습니다.” 이렇게 돌고 돌아 이야기는 희석 작가의 첫 장편소설 ‘전설의 아파트’에 와 닿는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약 54%가 아파트에 산다. 한국 전체 주택 1987만 호 가운데 65.3%(1297만 호)가 아파트다. 아파트는 한국인의 삶터이며 사회 축소판이다. “초등학교 때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아파트에 산 적이 없는데, 지난해부터 저도 아파트에 살게 됐습니다.” ‘전설의 아파트’는 ‘자가동’ 사이에 ‘임대동’이 끼어 있는, 평판 좋은 대단지 아파트의 남향집에 마침내 살게 된 젊은 연인이 겪고 보는 일상이 이야기를 이끈다.
다채로운 인물이 생동하고, 때로 웃기고 때로 당황스러운 사건이 이어지면서 소설은 펼쳐지는데, 큰 틀에서 우리 사회 축소판 같은 삶터에서 펼쳐지는 허위의식·차별 욕구·이기심·부조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파트 촌에서 펼쳐지는 지자체 선거 장면 등을 통해 정치와 권력의 속성도 들여다본다. 작가는 이를 너무 무겁게만 그리지는 않으면서 생동감을 부여해 이야기의 실감을 끌어올린다.
희석 작가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동체의 가치와 필요에 관해 잘 배우더라도 정작 집에 와서는 아무 소용없게 되지 않을까 염려됐다”고 작품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