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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37> 전남 장흥 된장물회

된장 풀고 열무김치 얹어 한 냄비 가득 ‘물회’…이게 남도어부 밥상이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27 18:54:03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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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지역 고유색 띤 독특한 물회 문화
- 동해안은 고추장, 제주·남해는 된장 등
- 마을마다 양념, 재료, 먹는 방식 달라

- 장흥선 새콤한 열무김치 국물이 베이스
- 며칠씩 고기잡이하다 김치가 쉬어버려
- 잡은 생선 썰어 밥 말아 먹은 데서 유래
- 철마다 생선 바뀌어도 이름은 된장물회

우리나라 해안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상한 음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물회’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포항이나 속초 같은 동해안과 부산, 제주지역 등 남해안에서 물회는 특히 잘 발달되어 있다.
   
얼음을 동동 띄워 청량한 느낌을 주는 데다 큰 냄비에 한 가득 내주기에 ‘어부의 밥상’을 실감할 수 있는 장흥 된장물회 2인분 차림. 사진=최원준 제공
이 ‘물회’는 각 지역의 바다 생태와 환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지표 음식’으로도 인식되는데, 지역의 바다 환경에 적응한 다종다양한 해산물을 주된 음식 재료로 활용하기에 그렇다. 이 때문에 지역마다 그 지역색을 띤 독특한 ‘물회 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분포한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동해안의 ‘가자미물회’ ‘오징어물회’ ‘해산물모듬물회’ ‘꽁치물회’, 남해안의 ‘멍게해삼물회’ ‘전복물회’ ‘멸치물회’, 서해안의 ‘굴물회’, 제주도의 ‘자리물회’ ‘한치물회’, 부산의 ‘눈볼대물회’….

이렇듯 물회는 그 지역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자주 활용되는 해산물을 재료로 조리법이 형성된다. 양념도 각 지역의 선호도에 따라 달리 쓰이는데, 동해안은 고추장을 새콤달콤하게 만들어 쓰고, 제주와 남해안은 주로 된장을 물에 풀어서 쓴다. 그 외, 지역에 따라 양념을 한 물에 말아 먹는 방식, 채소에서 나오는 채즙으로 비벼 먹는 방식이 있고, 요즘은 살얼음을 얹어 여름 별식으로 먹는 방식도 선호한다.

■장흥에서만 맛볼 수 있다

원래 물회는 배 위에서 고된 노동을 감내하던 어부들이 잠시 몸을 쉬며 허기를 ‘속이던’ 음식에서부터 시작했다. 잡은 생선 몇 마리 회를 쳐 고추장이나 된장을 푼 물에 붓고, 가져간 밥과 김치, 채소 등속을 말아 훌훌 마시듯 떠넘기던 음식이 물회였던 것. 사전적 의미로는 ‘갓 잡아 올린 생선이나 해산물을 잘게 썰어, 파, 마늘,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으로 버무린 뒤, 물을 부어서 먹는 음식’이 되겠다.

전남 장흥에도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물회가 있는데, ‘된장물회’가 그것이다. 근해에서 그날그날 잡은 생선 중 작고 값싼 물고기를 회 떠, 새콤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와 된장을 푼 물에, 식은 밥 한 덩이 함께 말아 후룩후룩 마시듯 먹는 음식이다. 그 유래는 며칠씩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 준비해 간 김치가 너무 시어 버리자 잡아놓은 생선 숭덩숭덩 썰고 된장과 함께 섞어 물회를 만들어 먹은 데에서 시작한다. 주로 농어 새끼, 돔 새끼, 쑤기미 등 어리거나 경제성이 없는 생선을 가리지 않고 재료로 썼다.

‘된장물회’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된장을 주된 양념 베이스로 활용한다. 그래서 장흥군 회진 일대에서는 ‘된장물’이라 불리며, 일상의 반찬으로도 늘 해 먹는 음식이었다. 제주의 ‘자리물회’ 등도 된장물 베이스이지만, 장흥 된장물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잘 익은 열무김치를 국물로 쓴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때문에 국물이 새콤달콤하고 시원해서 여름철 음식으로도 잘 맞다.

■함께 나누는 ‘어부의 밥상’

   
다양한 물회 가운데 한 종류인 해삼물회.
‘근대 장흥의 된장물 문화와 된장물회’란 책의 저자 허북구 박사는 ‘된장물회’를 “전남 장흥군 회진면 해안마을 일대에서 조상 대대로 식용되어 온 전통적인 남도 음식”으로 소개하면서 “가정이나 뱃일을 할 때 초에 무친 생선 살, 열무물김치 및 양념을 혼합한 뒤에 된장물을 풀어 식용한 국물의 한 종류로, 물회+된장+열무김치가 사용된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열무김치가 가미되어 매우 발전된 물회의 한 종류”로 허 박사는 두드러지게 규정한다.

장흥지역의 물회가 특별한 또 한 가지 특징은 어떤 생선을 활용하더라도 물회 이름은 오로지 ‘된장물회’라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물회에 들어가는 주 해산물에 따라 ‘자리물회’ ‘오징어물회’ 등등으로 이름 지어지는데, 장흥은 양념 베이스인 ‘된장’을 음식의 이름 앞에 당당히 내세운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생선이 물회 재료로 쓰이지만, 그 이름은 오롯이 ‘된장물회’로 불리는 것이다.

또 다른 지역과 달리 물회를 큰 냄비에 담아 여럿이 함께 먹도록 상을 내는 것도 ‘어부의 밥상’이라는 유래를 되새기게 해준다. ‘어부의 음식’은 좁은 배 안에서 여럿이 둘러앉아 끼니를 해결하는 데 맞춰져 있기에 주요 음식은 큰 냄비 또는 큰 양푼에 가득 담아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방식이라 그렇다. ‘된장물회’는 여러 계절 중 특히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더더욱 빛나는 음식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낮 ‘극한의 그물질’로 지쳐 있을 때, 새콤한 열무물김치에 계절 잡어 쓱쓱 썰고 들큰한 된장물 부어 밥 말아 먹으면, 더위도 물리치고 영양도 보충할 수 있기에 그렇다.

여름이 제철인 새콤달콤한 열무물김치에다 얼음 동동 띄워 놓고, 아삭아삭한 오이채, 양파 등과 맵싸한 땡초를 넉넉히 넣어 훌훌 들이마시니, 더 이상의 시원함이 없을 정도로 여름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 바로 ‘된장물회’이다.

■큰 냄비 가득 담아주는 물회

회진포에서 가장 토속적인 식당에서 ‘된장물회’를 맛본다. 된장물회 2인분을 시켰는데 큰 냄비 가득 물회를 담아왔다. 식탁 위로 바다가 넘실넘실 펼쳐진다. 그 냄비 속이 넓고도 깊다. 본격적으로 물회를 먹기 전, 무더위에 지쳤을 테니 벌컥벌컥 시원하게 목 먼저 축이라는 뜻일 게다.

국자로 된장물회 국물을 한 입 크게 떠먹어본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국물이 우격다짐하듯 입안으로 들어오고, 이어서 새콤하면서도 감미로운 뒷맛이 침샘을 간질인다. 냄비를 들고 다시 한 입 쭉 들이켠다. 찬 샘물을 마시듯 시원하게 여름 갈증이 단번에 풀린다. 물회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는다. 쫄깃쫄깃 씹히는 생선회의 존재가 단연 돋보인다. 장흥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렸기에 새콤달콤 매콤한 갖은양념 속에서도 물회의 중심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음이다.

곧이어 열무의 식감이 아삭아삭 전해진다. 그 새콤함이 입안을 아주 상쾌하게 쓰다듬는다. 이 두 조합이 경쾌하게 어우러진다. 가끔 땡초가 씹히면서 매운맛이 포인트처럼 절묘하게 입안을 자극하는 것도 즐겁다.

   
밥을 한 덩이 말아서 물회와 함께 먹는다. 밥알과 생선회, 열무김치와 된장국물이 서로 ‘따로, 또 같이’ 독립되고 일체화되면서 사람 입맛을 제대로 희롱한다. 한여름의 한낮, 남도를 따라 떠도는 나그네의 객고를 모름지기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이다. 어부들의 고단한 밥상에 늘 오르던 ‘어부의 밥이자 반찬’이던 물회. 이제는 특별한 제철 별미로 주목받으며 더욱 다양해지고 고급화되는 추세이다.

그러나저러나, 물회 한 그릇 먹어야만 여름이 물러나는 곳도 있으니, 늦기 전 물회로 ‘여름의 마침표’를 찍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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