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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21> 합천 가야산 별빛농장 이현주 씨

“파프리카 생산 6000평 유리온실, 농업협업단지 선도 공간 만들 것”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19-09-01 19:03:1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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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자재 생산 회사 운영하다
- 9년전 남편·지인 2명 ‘의기투합’
- 영농조합 설립·100억 투자 불구
- 행정절차 문제로 4년여간 허비

- 정부 보조사업인 유리온실 농업
- 융자사업 전환되자 동업인 발 빼
- 영농교육 등 ‘만약’ 대비한 이 씨
- 파프리카 농사 5년째 직접 맡아

- 관리 체계화된 ‘스마트 팜’ 덕분
- 첫해 320t·다음 해 400t생산
- 최근 40~50t 가량 줄었지만
- 가공 상품·체험농업에 수입 늘어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자기 생각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어진 시련이라면 슬기롭게 극복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도 있다. 정면돌파형이다.
   
경남 합천군 ‘가야산 별빛농장’을 운영하는 이현주 씨가 파종을 앞두고 파프리카 모종을 살펴보고 있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에서 2015년부터 5년째 아들과 함께 ‘가야산 별빛농장’이라는 파프리카 농장을 운영하는 이현주(여· 56) 씨가 이러한 경우다. 이 씨는 경북 경산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용 자재를 생산·판매하는 회사를 운영하며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다. 결혼과 함께 남편과 농자재 사업을 시작하면서 경영일선을 누빈 그녀는 일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움 없이 살았다. 한 해 몇 번씩이나 해외여행을 떠날 정도로 경제적 여유와 시간을 가졌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돈에 기죽지 않을 그녀였다.

그러던 이 씨의 사정은 남편이 파프리카 농장에 발을 디디면서 달라졌다. 남편은 2010년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농사를 짓겠다며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한 사람은 땅을 현물로 출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농장이 완공되면 파프리카 농사를 짓기로 했다. 농자재를 생산하는 이 씨의 남편은 유리온실을 지어 농업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파프리카 유리온실 전경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땅을 대기로 했던 사람이 임야를 매입해 영농법인에 출자했지만 훼손 허가가 나지 않았다. 산지개발을 하려면 관리 당국의 훼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후 산림환경 영향평가까지 받아 제출했는데도 허가는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 2013년 7월에야 겨우 허가가 났다. 거의 4년 만이다.

그동안 심신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어렵게 허가가 난 만큼 사업 순항의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측량 불부합으로 발이 묶였다. 현재 도로 모양대로 공사했는데 지적도상으로는 남의 땅에 공사한 것이었다. 또 농장 진입로가 좁아서 확장했더니 설계변경을 하지 않은 불법 공사라며 공사 중지 명령을 받았다. 공사는 1년여 실랑이 끝에 원상복구공사를 한 뒤에야 설계변경을 거쳐 재개됐다. 행정절차를 모르고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하다가 1년 넘게 허비한 셈이다. 값비싼 교훈이었다.

   
시련은 또 찾아왔다. 의기투합했던 다른 두 사람이 영농법인을 탈퇴하겠다고 나섰다. 유리온실 농업이 ‘정부 보조사업’에서 ‘정부 융자사업’으로 전환되면서 본인부담금이 생기자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산은 파헤쳐서 엉망이 됐고, 행정처분까지 받아 공사 진척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동료가 등을 돌리니 난감했다. 여기에다 이 씨의 남편은 공사를 한다며 4년간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이부었으니 말을 잃을 정도다.

며칠을 고민하던 부부는 ‘산을 이렇게 파헤쳐 놨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농장을 떠맡았다. 대구에 살던 이 씨도 처음엔 이사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이곳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 씨는 “이 사업에 발을 디디면서 가족 모두가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생을 하게 됐다”며 웃었다.

   
이 씨가 농장 한쪽에 마련된 가축농장에서 닭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합천군 대양면에서 자란 이 씨는 중학교 때까지 고향에 살면서도 몰랐던 농사일을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의 사업을 거들면서 곁눈으로 농사를 익혔고, 파프리카 농장에 관여하자 ‘혹시’하는 마음에 영농교육을 받으며 ‘만약’을 대비했다. 그러다가 일이 이쯤 되자 농자재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그녀가 직접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2015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늘어나는 금융비용을 덜기 위해 경산시에 있던 주택과 제주도의 집, 대구의 아파트를 모두 팔아넘겼다.

농사일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이 씨는 부산에서 원예학과를 전공한 직원을 채용했다. 다행히 남편이 지은 유리온실은 ‘스마트 팜’으로 관리가 매뉴얼화돼 있어 상품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6000평의 유리온실에서 첫해 320t을 생산했고, 다음 해에는 400t을 생산했다. 그런데 이번엔 농장 일을 봐주던 직원이 그만두겠다고 전했다. 할 수 없이 이 씨는 아들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본의 아니게’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셈이다.

   
체험객을 위한 다육농장
농장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런대로 운영되고 있다. 이 씨가 직접 농사 지은 지난해부터 파프리카 생산량은 다소 줄었다. 2018년에는 전년도보다 50여 t 감소했고, 올해도 지난해보다 40t가량 적게 생산했다. 하지만 가공상품 생산과 체험농업 수입이 늘었다.

농장을 조성하고 유리온실을 설치할 때는 농사만 지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도시에서는 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들어 팔면 그래도 돈이 모이는데 농촌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았다. ‘농촌에서는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농장을 짓기 위해 토목공사를 하고 유리온실을 짓고 시설물을 설치할 때는 돈만 있으면 됐다. 자재를 사고 인부를 붙여 공사를 하면 완공이 됐다. 그러나 농사는 돈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걸 깨닫는 데 3년이 걸렸다.

   
별빛농장 체험교육장에서 대구 농업마이스터고 학생이 현장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씨는 이제 여기서 살고 있는 이 자체가 너무 좋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얽매이지 않고, 눈치 보는 일이 없다. 대구에 살 때는 주위 시선을 의식해 외적인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그런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는 이렇게 하는 사람이야’라고 했다면 지금은 ‘나는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로 기준을 바꿨다. 사는 방식이,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이 만족스럽다.

이 씨는 “이제 기존의 관행 농업은 경쟁력이 없다. 자가소비 위주의 관행 농업보다는 경쟁력을 갖춘 첨단시설농업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만든 기반시설을 활용한 농업협업단지를 만들어 멋진 선도농업 공간으로 꾸려 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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