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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92> 합천 ‘다라국 황금길’

고분 사잇길 느릿느릿 거닐다 박물관 관람 … 가야국 흥망 되밟다

  • 국제신문
  •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
  •  |  입력 : 2020-04-26 19:06:38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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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라국 존재 알린 옥전고분군
- 황강변 해발 50~80m에 위치
- 고분 둘레길 300m 산책 후
- 금귀걸이·보검·말갑옷 전시된
- 합천박물관 관람 즐기는 코스

‘다라국 황금길’은 경남 합천군이 자랑하는 8개 둘레길(합천활로) 가운데 가장 짧은 길이다. 쌍책면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다라국의 옥전고분군과 합천박물관을 산책로로 연결, 가벼운 오솔길 산책과 함께 박물관 관람까지 즐길 수 있도록 한 역사탐방 둘레길이다.

둘레길이 짧은 데다 연계되는 관광코스와도 동떨어져 있어, 둘레길 마니아에게는 다소 아쉬운 길이지만,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했던 가족 단위의 산책을 겸한 역사탐방에는 안성맞춤이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옥전고분군 둘레길인 다라국황금길을 찾은 주민이 봄을 만끽하며 산책을 즐기고 있다. 이민용 기자
■‘느림의 미학’ 체험길

합천군 합천읍에서 창녕군 방면으로 국도 24호선을 따라가다 쌍책면~고령군·대구시로 이어지는 지방도 907선으로 갈아타고 4㎞쯤 가면 쌍책면 소재지다. 면 소재지에서 대구 방면으로 300m 외곽으로 나가면, 농촌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웅장한 건물이 ‘다라국 황금길’의 출발점인 합천박물관이다.

대부분 박물관부터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 데 먼저 둘레길부터 돌아볼 것을 권한다. 둘레길이 영화의 예고편이라면 박물관은 본편이기 때문이다. 옥전고분군 사이로 난 둘레길은 총 길이가 300m 정도에 불과해 아무리 게으름을 부려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박물관을 돌아 뒤쪽 나지막한 야산에 옥전고분군(사적 제326호)이 보이고 그 사이로 난 산책로가 보인다. 박물관 뒤편에서 출발해 능선의 옥전고분군을 한 바퀴 돌아 박물관으로 되돌아오는 길이 둘레길의 전부다.

황강변의 해발 50~80m에 위치한 옥전고분군은 평지가 아닌 산기슭 고분군 대부분이 그렇듯,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보폭을 최대한 늦춰 고분 사이를 거닐며, 고분마다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꼼꼼히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죽은 이와 살아있는 자의 경계를 따라 난 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짧은 산책로를 굳이 둘레길로 포장할 이유가 있을까’ 했던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느려진 발걸음만큼 숨결도 늦춰지고,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담하게 관조하는 사색의 즐거움이 넘쳐난다. 구슬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 다른 둘레길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합천지역 8개 둘레길 모두 나름의 운치가 있지만, 다라국 황금길은 칸트의 산책로처럼 ‘느림의 미학’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둘레길이다.

   
합천박물관 입구 마당에 보검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합천군 제공
■신비의 땅, 다라국

‘다라국 황금길’ 의 두 번째 코스는 합천박물관이다. 2004년 12월 문을 연 합천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고고관 1층은 다라 문화실, 어린이 체험실, 고고관 2층은 다라 역사실과 기획전시실, 역사관에는 합천 역사실, 대강당으로 구성돼 있다.

김해 가락국, 함안 안라국, 경북 고령 대가야 등은 잘 알려졌지만, 합천 다라국을 아는 이는 드물다. 다라국의 존속 기간이 짧은 데다 불과 20년 전에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비의 땅’으로 불리는 다라국은 서기 400년을 전후로 고구려·신라군의 김해 가락국 공격을 전후해 낙동강 하류 지역 주민이 옮겨오면서 건국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6세기 후반 신라의 가야세력권 정복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옥전고분군 코스에서 여유로운 산책을 즐겼다면, 합천박물관 관람코스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신비와 경이로움을 즐기는 코스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큰 칼 등 10점을 보물로 지정했다. 출토된 유물 하나하나가 걸작인 데다 종류도 다양해 당시 다라국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옥전고분군 가운데 M3 고분을 재현해 놓은 합천박물관 내 다라역사실.
먼저 박물관 2층에 M3호분에서 출토된 금·은으로 손잡이가 장식된 보검 네 자루가 전시돼 있다. 국내에서 한 무덤에 한 자루 발견하기도 힘들다는 보검이다. 게다가 손잡이에 새겨진 용과 봉황 무늬가 매우 정교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박물관 입구 마당에 설치된 조형물이 보검인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을 형상화한 것이다. 중요한 유물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해 실물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박물관 측이 실물 모형과 함께 전시실마다 상세한 안내를 제공, 다라국의 실체를 엿보는 데 부족함은 없다.

주요 유물로는 말갑옷과 말투구가 각각 4개와 6개 출토됐다. 말갑옷과 말투구는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를 통털어 출토 유물이 각각 12개와 14개에 불과한 점에 비춰 다라국 세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고대 로마 제국에서 만든 유리잔이 출토됐는데 이는 가야 세력 고분 출토 유물 가운데 유일한 것이다. 귀걸이는 가야권 전체서 출토된 100쌍 가운데 합천 옥전고분군에서만 40쌍이 나왔다.

이처럼 ‘다라국 황금길’은 마을 뒷산 둘러보듯 가볍게 출발한 둘레길이지만, 역사와 문화, 잊힌 가야국가의 흥망을 되돌아보는 이색 둘레길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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