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장기화에 직격탄
- 혈액 비축량 작년 70% 뿐
- 혈액 부족 소식 알려지자
- 40번째 헌혈 한 이창헌 씨
- 첫 헌혈 경험 김선재 씨 등
- 곳곳서 팔 걷으며 힘 모아
-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 따뜻한 나눔의 행위, 헌혈
- 적십자사 “많은 참여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4·19 혁명 60주년을 맞아 SNS에 ‘4·19혁명과 헌혈, 나눔의 역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1960년 4월 19일을 역사는 ‘피의 화요일’이라 부른다. 무차별 발포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부상자 치료를 위한 혈액이 부족하자 시민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이어 “5·18 민주화운동 때도 시민의 헌혈은 수많은 이웃을 구하며 연대의 상징이 됐고 오늘도 우리의 협력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혈액 비축분 부족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자 우리 주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히든히어로가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의 협력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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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이창헌(30) 씨가 헌혈용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동영상 캡쳐 |
■빈혈에도 헌혈…그래도 모자라
지난달 23일 국제신문 취재진은 헌혈의집 서면센터를 찾았다. 출입구에 들어서자 안내원이 나와 체온을 확인하고 손에 소독제를 뿌리게 했다. 얼떨결에 방역 절차를 밟던 기자에게 안내원은 방역지침을 설명했다. 그리고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 인적 사항을 적는 종이였다.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동선 파악을 위한 조치였다. 인적사항을 쓰고 있자 안내원은 헌혈의집 내부를 매일 2차례 소독한다고 알려줬다.
입국 절차를 방불케 한 방역 절차를 무사히 통과한 후에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부산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서면에 있는 헌혈의집은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하루 평균 60여 명이 꾸준히 찾는 핫플레이스였다.
하지만 헌혈의집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8개의 헌혈용 침대 중 한 곳에만 사람이 누워 있을 뿐 나머지 침대는 비어있었다. 혈액이 차 있어야 할 혈액냉장실은 듬성듬성했고 한쪽 벽에 걸린 혈액 보유 현황판은 성분별로 ‘주의’와 ‘경계’ 단계 사이를 표시하고 있었다.
홀로 헌혈용 침대에 누워있던 이창헌(30) 씨는 “며칠 전 혈액이 부족하다는 문자를 받고 헌혈의집을 찾았다”며 “빈혈로 혈액 중 일부 성분만 분리 채혈하는 성분 헌혈을 받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날 이 씨의 헌혈은 40번째였다.
이도의(21) 씨도 이창헌 씨와 마찬가지로 헌혈 독려 문자메시지를 받고 시간을 쪼개 헌혈의집을 찾았다. 이 씨는 “할머니에게 피가 필요한 적이 있었는데 혈액형이 저랑 달라 도움을 드릴 수가 없었다”며 “그때부터 혈액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헌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혈의집을 처음 찾은 사람도 있다. 김선재(20) 씨는 “코로나19로 헌혈자 수가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래도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한두 명씩이라도 힘을 모아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날 헌혈의집에는 33명의 헌혈자가 찾았다. 조숙정 헌혈의집 센터장은 “원활한 혈액 수급을 위해 50명의 헌혈자가 다녀가야 한다”며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부산의 혈액 보유량에 비상등이 켜졌다. 센터로 보면 작년과 비교해 27% 정도 줄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혈액 수급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단체 헌혈이 줄줄이 취소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조 센터장은 설명했다.
■사람만 할 수 있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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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4일 서면 일대에서 대학 RCY 회원들이 헌혈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습. 동영상 캡쳐 |
헌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 센터장은 코로나로 혈액이 부족하다는 방송을 보고 “헌혈을 하고 싶다”며 팔을 내민 70대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헌혈이 가능한 나이는 만 16세부터 69세여서 할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이 제한으로 헌혈이 안 된다는 만류에도 할아버지는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아 몸은 건강하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싶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 센터장은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아주 힘들지만 혈액은 아직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거나 대체할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코로나19를 잘 이겨내고 있는 것처럼 건강한 분들이 조금만 수고를 더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혈액 비축분이 부족해지자 지난 24일 마스크를 쓴 25명의 대학 RCY 회원이 서면 일대를 누볐다. 정다은(21) 씨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부족한 혈액 문제를 알리기 위해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간격을 벌리고 열을 맞춰 침묵 속에 거리를 걸었다. ‘생명을 나누는 기부! 헌혈’이라는 팻말을 높이 들고.
학생들은 거리 캠페인이 끝나고 곧바로 헌혈의집을 찾았다. 그리고 부족한 혈액 수급을 위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정재영(20) 씨는 “저의 피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륜(21)씨도 “봉사활동은 남들을 도와준다는 의미인데 헌혈은 피를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해 의미가 더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학RCY에 속한 6명의 학생이 서면센터에서 헌혈에 동참했다. 헌혈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서 채혈할 수 있는 혈액량이 제한적인 만큼 다른 사람의 참여가 여전히 절실하다. 이날 전국 혈액 보유량은 3.6일분, 부산은 2.2일분으로 혈액보유 ‘주의’ 단계였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적정 보유량을 5일분으로 보고 응급상황 대비 최소 3일분 이상의 혈액을 유지하려고 한다.
헌혈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행위다. 이날 위대한 실천을 한 히든히어로들에게 취재진은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김채호 신지영 기자
※ 제작지원 BNK, 한국주택금융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