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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81> 정영민 작가의 산문집 ‘애틋한 사물들’

“어딘가 꿰어지기를 갈망하는 단추, 우리네 삶과 닮지 않았나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5-10 19:43:1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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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자마자 황달로 뇌병변
- 일상생활 필요한 사물 익히려
- 남들보다 부단한 연습과 훈련

- 서툰만큼 오래 반복할수록
- 사물과 사람 섬세하게 관찰
- 익숙한 물건에 새로운 시각

-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열정
- 작가 가져야 할 최고 덕목을
- 불편한 손이 가져다 줬을지도

처음 연필을 잡고 글자를 쓸 때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연필을 잡는 모양새부터 많은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첫 획은 삐뚤빼뚤 엉망이었을 것이다. 손가락의 힘을 조절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럴듯하게 글자를 쓰기까지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필을 잡아보았다. 뭉툭하게 심이 닳은 연필을 깎을 때, 종이 위에 사각사각 글자를 쓸 때, 연필이 서서히 짧아질 때. 연필은 필자에게 특별한 사물이었다. 당연했던 이 느낌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책을 만났다. 정영민 작가의 첫 산문집 ‘애틋한 사물들’이다. 뇌병변 장애인인 저자는 사물을 만날 때, 그것과 익숙해지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반복과 연습을 했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사물들이 사람들과 어떤 기억을 공유하고 살아가는지 섬세하게 볼 수 있었다. 익숙하게 사용하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사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애틋한 사물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책 표지에서 제목 앞에 적힌 작은 글자까지 한꺼번에 읽으면 ‘고작이란 말을 붙이기엔 너무나 애틋한 사물들’이다. 정영민 작가를 수영구 망미동의 한 서점에서 만났다.
정영민 작가가 부산 수영구 망미동 독립서점 한탸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세상

지하철 3호선 망미역에 막 도착해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근처에 앉아있다 일어설 준비를 하는 작가를 보았다.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그와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향한 계단을 함께 올라가는 동안 책 속 ‘계단’ 편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늘 계단을 빨리 오르지 못해 울고, 계단을 내려갈 수 없어 울었던 날들이 더 많았다. 여전히 후다닥 계단을 오르내리진 못한다. 그래도 계단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몸이 불편한 그가 계단에 익숙해져 혼자 오르내릴 수 있게 된 시간은 길었을 것이다. ‘평평한 길만 걸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잘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너머의 세상이 나로 하여금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게 이끌었다’는 문장은 계단 앞에서 늘 투덜거리는 필자의 등을 두드리며 손을 내미는 것 같다. 우리는 함께 망미역 2번 출구의 계단을 천천히 걸어 땅 위로 올라왔다. 한 걸음 너머의 세상, 독립서점 한탸로 가는 길이다.

정영민은 198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한 살 때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태어나자마자 황달로 뇌병변 장애인이 됐다. 왼손이 부자유스럽지만, 수십 번의 실패를 통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물을 익혀왔다. 말이 어눌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의대학교 문창과를 졸업하고, 시와 산문을 꾸준히 써왔다. 서점 한탸는 그가 자주 찾는 곳이다. “1년 전 즈음에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서점이에요. 지하철에서 가까워 오기가 편하고, 조용하고, 넓은 책상에 앉아 책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어 좋아하는 곳이에요.” 한탸는 체코 작가 브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주인공 이름이다. 한탸는 폐지압축공으로 금서로 지정된 책을 압축하는 일을 한다. 금지된 책은 딱딱한 종이뭉치로 압축되지만, 그 속의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점이라는 공간의 이름으로 절묘하게 어울린다. 정영민 작가는 한탸에서 책을 읽고, 글도 쓰고, 길 밖의 사람을 바라보기도 한다.

■익숙해져야 보이는 사물의 의미

애틋한 사물들- 정영민·남해의봄날·2020
정영민 작가는 ‘애틋한 사물들’의 원고를 출판사 ‘남해의봄날’에 투고했다. “그동안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며 쓴 글들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백년어서원의 계간지에 5년 여 연재했던 글이 바탕이고, 더 쓴 글들도 있죠. 출판하자는 연락이 왔을 때 ‘이게 뭐지, 정말 책을 내도 되나’ 하면서도 너무 기뻤어요. 책을 내면서 익숙해지기 위해 연습하고 생각하던 그 사물들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녕!’하고 말하면서 인사를 보내는 마음이에요.”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물은 단추이다. “단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잘 끼워지지 않으니까 답답해서요. 온종일 방에서 단추와 씨름하며 연습했어요. 지금은 큰 단추는 혼자서도 끼우지만, 작은 단추는 여전히 힘들어요.” 그 말끝에 필자도 작은 단추는 힘들다고 말했더니, 정영민 작가는 답답함을 이해한다며 활짝 웃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가 교복 단추를 채워줬어요. 등교시간에 맞추느라 서둘러야 했으니까요. 단추가 없는 옷을 입는 게 편하지만 교복은 꼭 입어야 하는 옷이니까요.”

책에서 그 대목을 보자. “양손 모두 불편한 어린 내겐 단추가 제일 어려웠다. 연신 구멍으로 쏙 들어갈 것 같던 단추는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단추와 구멍 그 팽팽한 대립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 단추와 구멍 사이에 항상 내가 있었다. 유년의 기억 중 단추만큼 강렬히 남아 있는 사물이 없다. (중략) 단추와 사람은 유사점이 많다. 어딘가 꿰어지기를 열망한다. 꿰어지지 않으면 꿰어지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 사물에 익숙해질 동안 그는 사물의 본질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을까. 섬세한 그의 마음이 책에 가득하다.

대학 시절 그에게는 시험 시간이 힘들었다. 글씨를 쓰는 속도가 친구들보다 훨씬 느렸기에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이 만족하는 답을 모두 적어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한 교수가 무심한 듯 시험시간을 두 시간으로 해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과 친구들도 눈치를 챘겠지만 저를 배려해준 건데, 모두에게 공평하게 두 시간이었으니 저도 마음 편하게 쓰고 싶은 답을 다 쓰고 나왔죠.” 정영민 작가에게 연필은 아픈 사물이다. ‘때때로 연필을 쥐고 오래 글을 쓰면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아닌 몸 전체로 글을 쓰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름엔 몸이 흠뻑 젖을 정도다’는 문장에서 그가 쓴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지 느껴진다. 작가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을 부자유스러운 손이 오히려 가져다준 것은 아닐까.

정영민 작가는 디지털기기 앞에서 늘 버벅거리는 필자에게 한탸서점의 지도를 검색해 보내주었다. 약속을 정하느라 주고받는 문자를 보내는 속도도 더 빨랐다. 그는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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