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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타계 30주기…새로 읽는 나림 명작] <1> 프롤로그- 부울경과 이병주 문학

주옥같은 이병주 80여 작품, 잘 꿰면 메가시티 문화적 촉매제

  • 남송우 문학평론가·부경대 명예교수
  •  |   입력 : 2022-09-01 18:56:10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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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알렉산드리아’로 등단
- 본지 등 일간지에 소설들 연재
- 대표작 ‘관부연락선’ ‘지리산’
- 지역성을 세계성으로 끌어올려

- 문학으로 부울경 공감대 형성
- 정치·경제 통합까지 견인 기대
- 김정한·오영수·박경리 콘텐츠
- 부산문화재단 소통·공유 앞장

지역소멸의 조짐이 현실화되고 있다. 위기감이 고조된 만큼 부울경특별연합 논의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1 지방선거 이후, 내년으로 예정된 부울경특별연합 출범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경부울(경남·부산·울산)이라는 문화적 연대감보다는 당장의 정치, 경제적 셈법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왕봉에 올라 굽어본 지리산의 장쾌한 정경이다. 때마침 운무가 몰려와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계곡이 갈마드는 지리산은 이병주의 문학세계와 닮았다. ‘지리산’은 나림의 대하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김성효 기자
부울경이 하나의 연합체로서 메가시티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를 통합하고 선도할 수 있는 문화적 차원의 연대가 선결되어야 한다. 문화는 다양한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를 견인하는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부울경특별연합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서는 부울경을 하나의 메가시티로 묶어낼 문화적 촉매제들을 새롭게 창안해 나가야 한다. 문화적 촉매제는 부울경으로 나뉜 현재의 문화적 경계를 허물고, 소통을 통한 연대를 실현할 필요조건이다. 이름뿐인 연합체가 되지 않으려면 삶의 총체적 형식이랄 수 있는 문화에 대한 부울경 지역민의 공감대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하나의 문화콘텐츠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뿌리이다. 인간의 근원적 정서와 다채로운 삶의 방식을 담는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문화적인 것’의 대표적 양식이자 강력한 문화적 촉매제이다. 부울경 통합의 문화적 촉매제 역할을 해낼 작가와 작품 선정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 그간 그가 누락된 이유

나림 이병주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부울경이 공유할 수 있는 작가 중 누구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우선 이병주(1921~1992)를 지목한다. 이병주 작가는 1965년 잡지 ‘세대’에 중편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특유의 필력과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1921년 3월 16일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나 1992년 4월 3일 별세했으니, 약 27년간 원고지 10만 매를 쓴 셈이다. 한창 글을 많이 쓸 때는 5개 신문에 동시 연재소설을 쓸 정도로 필력을 과시했다.

이병주는 박경리 이문열 황석영 박완서 조정래 등 한국 소설문학사에서 큰 맥을 이룬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어 온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다. 특히 부울경의 문학장에서도 그에 대한 논의는 의외로 미미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고향 하동에 이병주문학관이 마련돼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있지만, 그가 언론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곳이 부산이라는 점에서 부산 문학판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그동안 부산 지역문학 연구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국제신보’(국제신문의 전신) 상임논설위원으로 임용된 것이 1958년이고, 이듬해 주필과 편집국장을 겸임하게 된다. 그런데 1961년 필화 사건으로 혁명재판부로부터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 1963년 특별사면으로 출감하지만, 곧 상경해 서울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그리고 1968년 ‘국제신문’ 서울 주재 논설위원으로 취임하지만, 곧 사임하고 창작에 전념했다. 이런 연유로 작가 이병주는 부산 문학판과는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활동 전모를 따져보면, 부산에서의 작품 활동이 그의 창작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문단에 공식적으로 등단하기 전인 1957년 8월 11일부터 1958년 2월 25일까지 ‘부산일보’에 ‘내일이 없는 그날’을 연재하고, 이를 1959년 ‘국제신문’에서 작품집으로 발간했다. 같은 해에 부산에서 발간된 ‘문학’에 희곡 ‘유맹’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1968년 7월 7일부터 1969년 1월 22일까지 ‘경남매일신문’에 ‘돌아보지 말라’를 인기리에 연재했고, ‘부산일보’에는 1970년 ‘배신의 강’(307회), 1972년 ‘여인의 백야’(309회)를, ‘국제신문’에는 1971년 ‘화원의 사상’(182회)을 연재해 부산 경남의 대중 독자와 인연을 이어갔다.

■ 공유·활용할 문학 콘텐츠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 서가에 꽂힌 책들. 국제신문 DB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부울경의 새로운 동남문화권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병주 작가의 작품을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원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가 하동에서 출생해 부산이 경남에서 분리되기 전 부울경의 뿌리인 경남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활동 무대는 전국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대표적 소설인 ‘관부연락선’ ‘지리산’ ‘별이 차가운 밤이면’ ‘ 예낭풍물지’ 등이 경남·부산을 시공간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도 부울경의 시도민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감력은 깊고 넓다.

이병주가 펼쳐놓은 작품세계는 단순히 부울경의 시공간에 묶여 있지 않다는 점도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그는 한국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갇혀 있기보다는, 지구촌 이곳저곳의 시공간을 작품 속에 펼쳐 보임으로써 독자의 세계인식의 폭과 깊이를 새롭게 열고 있다.

이병주 작가가 내보이는, 이러한 지역을 넘어 세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지향은 부울경 문화권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점을 예시해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부울경의 문화 공유와 소통의 목적은 일차적으로는 부울경 지역의 문화권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경부울 문화연대의 형성을 통해 하나의 문화권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에 그친다면 경부울 문화연대를 통한 부울경특별연합 실현이란 원대한 이상은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부울경특별연합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세계와 소통하고 기능하는 메가시티의 실현이다. 이런 차원에서 부울경이 공유하고 활용할 문학 콘텐츠는 편협한 지역성에 갇혀서는 곤란하다. 이병주 작가가 남긴 다양한 작품은 이런 지역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지역성을 세계성으로 한 차원 끌어올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문학작품이 지닌 문화적 가치 지향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부울경 메가시티가 단순히 양이나 규모 확대가 아니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고양하는 토대를 형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심대하다. 문학은 인간 삶의 다양한 실체를 단순히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지향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삶의 가치를 형상화하는 데 있다.

■ 부산문화재단의 노력

부울경에는 이병주 작가뿐 아니라, 부산의 이주홍과 김정한, 울산의 오영수, 통영(충무)에 박경리가 있다. 이제 이들의 문학 작품을 좁은 지역에만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이 작가들이 지닌 풍성한 문학 콘텐츠를 부울경 모든 시·도민이 향유하고 공유하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또한 유치환 김춘수 김달진 김상옥 이영도 이형기 등의 시인과 부울경 작가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았던 김윤식 평론가까지 그 범위를 넓혀간다면 부울경 지역 문학의 화원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국제신문’이 이병주 작가를 내세워 부울경 메가시티의 문화적 소통과 공유를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일에 ‘부산문화재단’이 경부울 문화 소통과 공유를 위한 계기 마련에 공동으로 나선 점은 매우 뜻깊다. 이는 앞으로 부울경 지역문화 진흥이란 측면에서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그 동안 이병주 작가를 하동 이병주 문학관 속에만 가둬 두었다면, 이제는 이병주 작가를 부울경 시도민의 머리와 가슴에 제대로 스며들게 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공동기획:국제신문·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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