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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때 찾아와 날 안아준 기억이 유일…전쟁고아 아픔 컸죠"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3> 영국 故 조지 얩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2-09-26 19:46:40
  •  |   본지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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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父, 홍콩 파견 후 한국전쟁 참전
- 1951년 5월 포격 맞고 숨 거둬

- 어머니마저 날 외면하고 떠나
- 외할머니와 살며 왕따 경험도
- 항공사 엔지니어로 30년간 일해
- 가족 이야기 담은 홈페이지 운영

- 아버지 묘 보살펴준 한국에 감사
- 찾아 뵙고 싶지만 여행경비 부담

“4살 때인가. 집으로 찾아온 ‘저 사람이 누굴까’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지 몰라 멈칫거리고 있는데, 아버지라고 해서 갔더니 그 사람이 꽉 안아줬다. 내가 평생 소중하게 여겨온 아버지에 관한 유일한 기억이다.”
클라이브 얩 씨가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의 아버지 묘지에서 참배하는 군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클라이브 얩(76) 씨는 홍콩으로 파견을 앞둔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온 그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의 아버지는 홍콩을 거쳐 1951년 5월 한국전쟁에 참전해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했다. 지난달 중순 영국 맨체스터 외곽 화이트필드에서 만난 얩 씨는 자신의 아버지 조지 얩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나를 먼저 생각한 아버지

1951년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전 홍콩에서 찍은 사진.
1928년 그의 아버지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은 영국군으로 각각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이런 집안 내력 탓에 10대 때 세탁소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나이를 속여 입대했다.

“아버지는 세탁소에서 일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결국 자원해 군대로 갔고 그곳에서 여군이었던 어머니와 만나 결혼했다.”

행복할 것 같았던 아버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혼한 후에는 같은 곳에서 근무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영국 북쪽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옮겼다. 어머니는 제대 후 영국 가운데 있는 요크셔에 정착했다. 몸이 떨어지니 마음도 자연스레 멀어졌고 결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했다. 아버지가 홍콩으로 떠나기 전에는 런던에 근무했는데, 이때 어머니와 살던 나를 찾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일본에 빼앗겼던 홍콩을 재점령했다. 이곳으로 간 아버지는 잠시 싱가포르로 이동해 사무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따는 군대 내 코스를 밟기도 했다.

“아버지가 영국으로 돌아오면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어머니와 잘 지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나와 다른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그런 것 같다. 당시 아버지가 제대를 11개월 앞둔 상황이라 영국으로 돌아오면 가장 쉽고 빠르게 안정적인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속한 부대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됐고, 결국 1951년 5월 20일 전사했다.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편지가 두 차례 영국으로 발송됐다.

“첫 번째 편지는 아버지의 상관이 집으로 보낸 전사 소식이었고, 두 번째는 아버지의 제일 친한 친구가 나의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였다. 두 번째 편지에는 아버지의 마지막 과정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의 어떤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 한 발의 포탄이 아버지로부터 1야드 정도 자리에 떨어졌고 결국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숨을 거뒀고, 당시 고통을 느끼면서 죽지는 않았다더라.”

■온라인으로 가족 이야기 알려

얩 씨가 가족의 이야기, 족보 등을 담은 홈페이지를 소개하는 모습.
아버지는 전사했고, 어머니의 외도가 계속되면서 그는 한순간에 전쟁고아가 됐다.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땐 전쟁고아라는 게 별로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릴 적 하루는 친구와 놀고 있는데 그 친구의 부모님이 오시더니 아버지가 전사한 이야기를 물었고 친구에게 ‘나랑 더 놀지 말라’고 하더라. 이런 일이 나를 좀 성숙하게 만들었다.” 이어 “이후에는 친구와 놀 때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키지 않게 잘 놀기도 했다”며 애써 웃었다.

외할머니는 가난했지만 얩 씨가 성장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어려운 형편에도 매년 여름이면 얩 씨를 친할아버지가 있는 런던으로 보냈다.

“외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 관계가 소원하더라도 나에게 가족이란 걸 잊어버리지 않게끔 해주셨다.”

얩 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며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과 주변 지인에게서 아버지 얘기를 듣고 아버지를 알아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동료와 사람을 존중해 품행이 바른 사람이었고, 아버지의 기질은 타당한 것에 있어 신중한 성격이었다. 아버지의 감정이나 정신은 민감하면서도 동정심이 많았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나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이렇게 자란 그는 학위를 따면서 일도 할 수 있는 공군에 지원해 일했고, 결혼 후 정착해 생활하기 위해 항공사로 이직해 엔지니어로 30여 년간 일했다.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살아갔을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왔으면 나와 함께 있었을 것이고 나의 멋진 외할머니 대신 아버지가 나를 키웠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어 “아버지의 죽음이 속상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던 지인도 아버지를 사랑했다. 이런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자료를 하나둘 수집하고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부터 온라인상에서 가족의 이야기, 족보 등을 담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항공사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현대 항공 기술이 컴퓨터 중심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딩 등을 배워 나만의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이 홈페이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마음은 없다. 다만 우리 가족의 가계도 정보를 수년에 걸쳐 축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어 “아버지의 짧은 생애 이야기를 모아보는 것도 나에게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 아버지 묘비 가고파

얩 씨는 한국전쟁에 관해, 끔찍했지만, 지금의 한국을 만들고 한국의 자유를 구한 것이라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한국전쟁을 잘 안다. 한국전쟁을 차츰 알게 되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참전한 사람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알게 됐다. 아버지도 가야만 해서 갔지만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미래의 한국에 관한 자신의 소신도 밝혔다. “이곳에는 한국이란 선진국이 하나 있고, 공포로 이어지고 있는 북한이 있다. 북한은 이 상태가 오래돼 과연 북한 사람이 ‘자유’라는 콘셉트를 이해할 수 있을지, 한국처럼 자유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통일도 비용 측면에서 따져보면 과연 이게 될까 싶기도 하다.”

아직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그는 유엔기념공원에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실은 방문 비용이 좀 부담스럽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국에 가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의 묘비에 손을 얹어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다만 한국 사람이 아버지의 안식처를 사랑스럽게 보살펴주고 있다. 나는 이에 영원히 감사를 표할 것이다.”

끝으로 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메시지도 함께 남겼다. “나는 매일매일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그립다. 또 사랑한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과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협조를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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