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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8> 낙동강 유채

어디 기름뿐이랴, 나물부터 국까지…식탁에 ‘강인한 생명력’ 피었습니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5-07 19:15:29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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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남부 들녘 물들이는 월동채소
- 우리말 ‘평지’‘가랏’으로도 불려
- 요산 김정한 선생 소설에도 등장

- 씨앗은 짜서 식용유로 활용하고
- 잎·줄기는 된장국·김치 등 변주
- 쌉싸래하면서도 들찌근한 풋내
- 봄의 미각이 인간의 몸을 깨운다

요산 김정한 작가의 작품 중에 ‘평지’란 소설이 있다. ‘평지’는 1960년대 농업근대화란 명분으로 저질러지는 권력자들의 이권 다툼에 휘말린 농민의 애환을 다룬 소설이다. ‘낙동강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작가의 낙동강 관련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유채샐러드
주인공 허생원은 낙동강 변에서 식용유 재료로 쓰이는 평지를 재배해 호구지책을 한다. 그러나 지역 유력자에 의해 가족이 힘을 합쳐 개간하던 평지밭을 빼앗기게 된다. 허생원은 목숨 같은 평지밭을 빼앗기자, 월남에서 전사한 큰아들이 심어놓았던 고급 목재 ‘이탤리 포플러 숲’의 포플러를 도끼로 찍어내고 불을 지르며 불합리한 현실에 분노를 표출한다.

작가의 작품 ‘평지’는 요즘 흔히 쓰는 ‘유채’를 이르는 우리말이다. 봄이면 남부 지역의 벌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이 그것이다. 주로 남부 지역의 천변이나 해안가 들녘에 피어오르며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식물이다. 제주도나 낙동강 유역의 부산 대저, 창녕 남지 등지에선 유채꽃 축제를 열기도 한다.

■겨울 견뎌내 봄에 피는 월동채소

유채된장국
유채는 노란색 꽃잎 네 개가 십자 모양으로 피는 배춧과에 속하는 두해살이식물이다. 늦가을에 씨를 뿌리면 혹독한 겨울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봄에 이르는 월동채소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흔히들 ‘겨울초’나 ‘동초’로 부른다. 우리말로는 ‘평지’ ‘가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다채롭게 이용하고, 씨앗은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 이용한다.

원래 유채는 이름이 이르는 그대로 기름(油)을 생산하는 나물(菜)이다. 유채의 노란 꽃이 지면 그곳에 씨방이 맺히는데, 그 씨방 안의 씨앗으로 기름을 짠다. 식용유 중에 흔히 채종유, 카놀라유라고 불리는 기름이 바로 그것.

유채씨에서 추출한 유채 기름은 전 세계적으로 대두유 팜유 해바라기유 등과 아울러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식용유 중 하나이다. 식용 외에 공업용 윤활유, 디젤엔진 연료로 활용되기도 하고,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은 가축 사료로도 이용된다.

요즈음은 시설원예가 잘 발달해 계절과 관계없이 원하는 채소로 여러 음식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겨울을 나고 봄이 찾아올 즈음에는 딱히 먹을 만한 채소가 많지 않았다. 이즈음에 봄날 입맛 돋우는 채소가 월동채소인 ‘유채’나 ‘봄동’ 등이었다. 쌉싸래하면서도 들찌근한 맛이 봄의 입맛을 제대로 찾아줬다.

이처럼 봄에 풋내나는 채소는 봄의 미각을 일깨운다. 그중 유채가 바로 안성맞춤의 소채. 살짝 풋내가 나고 쌉싸름함이 거슬릴 수도 있지만, 이런 풋내와 약간의 쓴맛이 인간의 몸을 깨우고 기지개를 켜게 하는 좋은 약재이기도 하다.

■겉절이 된장국 김치 등 다양한 변주

소고기에 곁들인 유채꽃
유채는 원래 기름을 짜는 채소이지만 다양한 음식으로도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유채 여린 잎으로는 밥과 함께 막장으로 쌈을 싸서 봄의 풍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유채를 살짝 데쳐 참기름과 소금 간, 또는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유채 나물’도 좋고, 새콤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양념으로 슬슬 절여낸 ‘유채 겉절이’도 봄을 맞이하기에 좋은 찬거리가 되겠다.

유채를 된장국에 넣고 두부 무 파 등속과 청양초 송송 썰어 넣고 끓이면 구수하고 맵싸한 ‘유채 된장국’이 된다. 된장을 연하게 푼 멸치 장국에 유채를 넣고 팔팔 끓여내면 ‘유채 시락국’을 먹을 수도 있다. ‘유채 시락국’에 산초가루를 넣어 먹으면 향긋한 산초 향에 구수하면서도 싱그러운 봄 시락국이 되는 것이다.

유채꽃대로는 ‘유채 샐러드’를 해 먹을 수 있다. 새콤달콤한 샐러드 소스에 카놀라유나 올리브유를 섞어 유채꽃 위에 살짝 뿌려주면 된다. 은은한 유채꽃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입맛을 자극한다.

한입 입에 넣으면 유채꽃과 함께 꽃망울이 톡톡 터지며 아삭한 식감에 아주 상쾌해진다. 풋풋한 유채 향에 새콤달콤한 소스 맛이 어우러지고 곧 고소함이 뒤따르면서 봄의 향취가 온몸으로 퍼져 나는 느낌이 든다.

유채김치
그러나저러나 유채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유채 김치’에 버금가는 것은 크게 없다. 흔히 ‘겨울초 김치’로 불리는 잘 삭은 유채 김치는 두고두고 봄의 밥상 중앙을 차지하고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 입맛을 돋운다.

밥 한술에 겨울초 김치 한 점 척 올려 한입 크게 먹기도 하고, 쫑쫑 썬 겨울초 김치를 식은 밥과 함께 식용유에 다글다글 볶아 볶음밥으로 먹을 수도 있다. 그뿐이랴? 밤잠 설치던 밤이면 라면 한 그릇 바락바락 맛있게 끓여 면에 함께 둘둘 감아 먹기도 한다.

특히 꽃대에 달린 노란 겨울초 꽃과 봉오리의 달곰한 감칠맛은 봄을 맞은 입맛을 더욱 부추기기도 하고, 잘 익은 겨울초 김칫국물은 과음한 다음 날 어김없이 시원한 ‘겨울초 김칫국’의 주요한 식재료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 사랑으로 발효한 유채 김치

유채나물
청년 시절, 한때 직장 일로 집을 떠나 있었을 때, 어머니는 봄이면 어김없이 겨울초 김치를 큰 김치통에 꾹꾹 눌러 담아 보내주셨다. 겨울을 지난 월동 겨울초이기에 이파리는 굵고 다소 억센 식감이었지만 그만큼 구수하고 아작아작한 맛이 그렇게 흔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월동 겨울초 김치는 늘 어머니를 떠올리는 음식으로 평생 기억에 남아있다. 비록 꽃대가 올라와 억세어진 싸고 허튼 식재료였지만, 어머니는 봄날 입맛 없을 자식을 생각하며 애틋한 사랑으로 발효시킨 겨울초 김치를 늘 챙기셨던 것이다.

며칠 전 부산 대저생태공원에 들렀다. 전국적으로 유채꽃이 유명한 곳이다. 공원이 있는 낙동강 변은 한창 유채꽃으로 노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봄이 오면 사람 마음을 노란 봄바람 들게 하는 유채꽃. 그 꽃 한 입 입에 물면 온통 풋풋한 봄물이 노랗게 들기도 하겠다. 한들한들 바람에 명랑하고 쾌활하게 흔들리는 유채꽃. 그 꽃말 또한 ‘쾌활’이다. 봄꽃과 참 잘 어울리는 꽃말이다.

한때 어렵던 시절, 서민의 식재료로 다양한 음식으로 변주되던 유채. 매년 봄은 오지만 문득 그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유채 음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 봄날 가슴 한쪽이 애틋해지는 추억의 ‘소울푸드’ 같은 음식…. 봄볕이 다사롭다. 그런데도 뭔가가 헛헛한 봄날. 괜스레 어머니의 월동 ‘겨울초 김치’가 시금하게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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