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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77> 우드워킹 아카데미 제갈재호 목공예 명장

후학 키우려 연고도 없는 부산행… 여든 목공예 거장의 열정

  •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  |   입력 : 2025-12-14 19:10:2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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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시절 목공예 매력에 푹 빠져
- 부모님 반대로 낮엔 생계 위해 일
- 밤엔 예술 혼 쏟아 ‘명장’ 타이틀

- 여주서 활동하다 올해 부산으로
- 직업훈련원 인연 박태홍 작가와
- 공예 생태계 만들 교육의장 준비

◇ 제갈재호의 인생이모작 귀띔

- 도전과 탐구로 찾은 성취감, 쌓이면 미래가 된다

부산 사하구의 한 작업장에 들어서자, 마침 풍물패의 지신밟기가 힘차게 울리고 있었다. 디자인가구 제작기업 한디자인그룹(대표 윤경혜)이 이곳으로 터를 옮겨 다시 출범하는 날임이 새삼 느껴졌다. 작업장은 겉에서 볼 때 단순한 창고형 건물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전혀 다른 세계였다. 3층으로 확장된 작업장에는 원목의 향기가 공기처럼 스며 있는 가운데 목공기계와 목재, 그리고 공예품들이 저마다 의미를 품고 자리해 있었다.
제갈재호 목공예 명장이 부산 사하구의 한디자인그룹 작업장에서 대팻날을 정교하게 조정하고 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이 공간을 새로운 삶의 무대로 삼고 출범하는 목공예 작가, 바로 한국 목공예계의 거장 제갈재호(80) 명장이다. 그는 한국 목공예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겠다며 경기 여주의 작업장을 과감히 정리하고 부산으로 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인생 2막을 담대하게 시작하는 그의 나이가 올해 80세라는 점.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 없는 자세, 세월의 강을 건너온 사람답지 않게 젊게 보이는 손이 ‘누구보다도 더 젊은 창작자’로 보여 깊은 울림의 대화를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작품 활동을 하면서 특히 시민 대상의 목공예 특별반 개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산에 온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는데 요즘 대중의 욕구를 고려한 목공예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는군요. 내년 봄부터는 아카데미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든 살에 연고도 없는 곳으로 오셔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신다니 놀랍습니다. 어떤 계기에 부산으로 오셨나요.

▶저는 이제까지 여주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곳 부산으로 옮긴다고 하니 가까운 지인들이 제가 ‘이민’을 가는 것처럼 말하더군요. 이 나이에 놀랍게 보이나 봐요. 그러나 사실 계기는 간단합니다. 아시듯이 박태홍 작가가 청송에 작업장이 있잖아요. 작년에 제가 박 작가에게 전화해 “이젠 청송에 가서 맑은 공기 쐬면서 좀 여유롭게 작품 활동하련다”고 하니, 박 작가가 “그 많은 시행착오의 체험을 통해서 터득한 기술을 그대로 삭혀서 되겠습니까. 대도시 부산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아내도 나이가 드는데 큰 병원도 가까이 있어야겠기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박 작가는 이곳에 재오픈한 한디자인그룹의 설립자인데, 그의 권유로 부산에 오셨고 이 공간을 함께 하는 것이군요. 박 작가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저는 젊은 시절 그러니까 1973년부터 12년간 정수직업훈련원에서 목공예 교사로 재직했었어요. 훈련원은 1973년 정부에서 서울 용산에 설립한 실기 위주의 직업훈련 기관이었어요. 지금의 한국폴리텍대학의 전신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아요. 교사들 대우도 좋았고 전액 무료 교육이었기에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었어요. 그때부터 제자인 박 작가는 가능성이 커 보여서 졸업을 한 이후에도 관심을 가져왔죠.



듣고 보니 그의 부산행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었다. 팔십의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제자와의 새로운 동행이며, 더 깊은 교육의 장을 열어 더 넓은 공예 생태계를 만들려는 인생 후반기의 결단이었다.



-대중에게 목공예 명장으로 알려졌는데, 언제 명장이 되셨나요.

▶1989년에 목공예의 명장이 되었어요. 대한민국 명장은 해당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능을 가진 기술자를 정부에서 인증한 일종의 증표입니다. 그러나 저는 명장이 최고라기보다는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이제까지 쉼 없이 일하고 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을 뿐입니다.



-목공예는 예전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인생의 업으로 삼게 되셨나요.

▶중학생 때인데 미술 선생님께서 저의 목공예 재능을 아셨어요.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가 매우 심한 게 문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나이엔 부모 도움이 절실한 시기였지만 저는 생각했죠. 누구나 한 번밖에 못 산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자고요. 그래서 결국 부모님에게 기대지 않고 낮엔 일하여 돈 벌고 밤엔 이 분야를 탐구했어요. 그렇게 혼을 쏟아붓다 보니 전국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고, 국전 상공미전 관광민예품전에 나가서도 여러 상을 받게 되더군요. 말하자면 기술과 예술 양쪽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던 거죠.



-재능과 열정의 결실입니까.(웃음)

▶그러다가 앞서 말씀드린 정수직업훈련원 교사가 되어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었는데,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센터에서 저의 작품을 진열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는 등 소문이 계속 일어나더군요. 그런저런 세월 속에서 12년 동안 재직했던 훈련원을 그만두고 1985년에는 목공예품 전문 생산업체인 ‘나무모아’를 설립했죠.



그의 예술혼과 열정은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경지였던 것 같다. 뚜렷한 스승이 없는 상태였던지라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정교한 기술을 익히고, 예술을 입혀서 목공예의 신경지를 개척해 낸 것. 그는 국내의 많은 전시는 물론이고 한일 목칠공예가 초대전(1985), 이태리 가구 비엔날레 초대작가전(2013)과 같은 해외 전시에도 초대받았다. 그런 중에도 홍익대와 연세대에 계속 출강했다.



-우드워킹 아카데미도 그런 활동의 일환이었군요.

▶저에게는 기술 전수에 대한 내적 욕구가 있나 봐요. 저는 독일과 인연이 되어 수년 동안 그들의 아트페어에 참관하며 기술을 엿볼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정체성을 살린 교안을 만들었어요. 이제까지 3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이란 것이 겉보기보다 굉장히 힘듭니다. 공교육도 아니고 일반인이 자발적으로 오는 거기 때문에 내용이 부실하면 사람들이 안 와요. 트렌드에 맞는 교안을 계속 개발해야 합니다.



-창작에, 기술 전수도 하시는데… 선생님 작품 세계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저는 목공 작품에 ‘예(藝)’를 붙여서 ‘목공예’ 작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생활 실용성 또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충족되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모든 창작물은 역사를 뛰어넘는 통시성과 함께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공시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적 정체성에 기반하면서도 서양적 모던함을 가미합니다.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붉은 색을 활용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한편 저는 기존 틀과 양식을 넘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대중들의 생활과 사고가 이미 탈 장르화되었는데 작품이 과거의 장르에 구속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철학과 방향을 가르치시겠군요.

▶교육 현장에서는 더 많은 것을 다루죠. 취미 수준을 넘어 창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작업 공정에 기계화가 많이 도입되었기에 사람은 더욱더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들되 시간을 절약하도록 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길어지면 비싸게 받고 싶어져 결국 대중과 멀어진다는 현실 전략과 더불어 목공예 철학을 들을 때는 세월을 잊은 예술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80세라고 느낄 수 없을 만치의 건강한 아우라까지 느껴졌다.



-하루 일과는 어찌 되나요.

▶매일 오전 9시께 출근하여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다시 수정하여 구상하고 제작하고를 반복합니다. 평소에는 오후 6시까지 하는 것 같아요. 건강관리요? 그건 안 합니다. 작품 하느라 계속 움직이니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더군요.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죠. 앞으로 제게 주어진 날을 한 5년 정도로 잡고 늘 몰입합니다.



-지금 선생님이 60대 나이라면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목공예 미래는 어떨까요.

▶요즘 K-컬처 바람이 강하죠. 한국 목공예도 조만간 놀랄 정도로 부흥할 것입니다. 국민소득이 4만 불이 되면 목공예가 대중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국가에서 목공예를 중점 문화산업으로 키워야 합니다. 제가 60대라면 아무래도 더 글로벌 차원으로 활동하고 있겠죠.



-박 작가와의 인연으로 부산까지 ‘이민’ 오셨는데 앞으로 작품 활동도 함께 하시는 건가요.

▶박 작가와는 1년에 한 번은 공동 전시회를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박 작가는 주로 공간을 점하는 조형 위주입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오는 모티브를 많이 활용하죠. 이러한 경향은 설치 예술 쪽으로도 강점을 내포하는 것이죠. 한편 저는 평면을 점하는 식입니다. 이 차이는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그만큼 키우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경계를 넘어 도전하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사용하는 장비와 도구 모두를 박 작가가 잘 활용하겠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가 노년기의 정체성을 다시 짜 올리는 실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해체되는 시대에 그는 은퇴 대신 존재의 갱신을 선언하고 있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근대의 개인은 끊임없이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제갈재호 명장의 탁월함은 그의 예술적 성취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 존재를 새로 정의하며, 축소가 아닌 확장을 선택하고 있었다. 많은 이가 뒷방으로 물러나는 시점에 그는 자신의 기예를 사회적 자산으로 재배치하고, 제자 공동체를 다시 세우며 새로운 생태를 설계한다. 인생이모작은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가 노년기를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 제갈재호 명장은 가장 앞선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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