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전 대통령 장녀로 출생3
- 부친 사망 후 18년간 '암흑시기'
- 1998년 보선서 당선, 정계 활동
- 독재자의 딸·불통 이미지 약점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영광과 오욕을 함께 해왔다. 이는 대권 등정에 나선 그의 정치적 자산인 동시에 넘어야 할 벽이다.
박 전 위원장은 1952년 2월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9세이던 1961년 육군 소장인 부친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고 1963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인생의 첫 굴곡을 22세 때 맞았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육 여사가 간첩 문세광의 총탄에 절명했다. '퍼스트레이디 대행'이라는 공인의 삶이 대학(서강대)을 갓 졸업한 그에게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졌다.
1979년 10·26사태로 아버지마저 잃었고 이후 18년간 암흑의 시기를 보냈다. 박 전 위원장은 46세인 1998년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후보로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2000년 당 총재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부총재로 당선됐지만, 이듬해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하며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2002년 재입당해 당 대표를 맡아 4·15총선을 치렀다. 그는 불법 대선자금 수수에 대한 국민적 비난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반성의 의미로 '천막당사'를 감행했다. 그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 예상을 깨고 121석으로 개헌 저지선을 확보했다. 이후 그는 2년 3개월간 당 대표로 재임하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5차례의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완승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른 그는 2007년 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사상 유례없는 대혈전이었던 8월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 석패했다.
박 전 위원장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선 패배 후 한나라당 지도부가 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당의 전면에 나섰다. 애국심, 철저한 안보관, 원칙 등은 그가 가진 덕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면서 수반되는 불통 이미지와 유신독재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는 대선 가도에서 넘어야 할 장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