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 마련·머리 염색까지

- 혈육 만남 준비하던 가족들

- "빨리 재개 돼야" 허탈감 토로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연기통보에 상봉 대상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두고 온 혈육'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올 추석을 맞았다가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중 한 명인 장귀순(94) 할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장 할머니는 "북에 있는 남동생을 볼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부산 동래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장 할머니는 1·4 후퇴 당시 헤어진 남동생 장명석(72) 씨와 만날 예정이었다. 장 할머니는 22살이나 어려 아들처럼 예뻐한 남동생이지만 함께 찍은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 연기소식이 알려지기 전 장 할머니는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남동생을 만나러 가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큰아들 김만철(64) 씨는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드릴 종합영양제와 겨울 점퍼를 선물로 준비했는데, 만남이 연기돼 무척 아쉽다"며 "평소 어머니가 과묵한 성품이신데도 섭섭한 마음을 자식들에게 털어놓으셨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가운데 또 한 명의 부산 거주자인 한정화(87) 할머니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들뜬 마음으로 큰아들을 만나는 순간만을 기다리던 한 할머니는 TV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 날짜가 연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할머니는 "60년 만에 겨우 만나는 건데, 상봉이 연기돼 또 기다려야 한다니,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교"라고 말했다. 한 할머니는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을 믿고 큰아들 김희열(66) 씨를 함경도 고향집에 놔둔 채 남편과 흥남 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로 내려왔다. 장 할머니는 그 뒤로 60년이 넘게 큰아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한 할머니는 어렵게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들뜬 마음으로 북측에 남아있는 아들에게 줄 옷과 생필품 등을 준비했다. 피난길에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해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큰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한복도 새로 샀다. 하지만 큰아들을 만날 시간이 다시 미뤄졌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막내딸 김희경(47) 씨는 "어머니께 너무 실망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며 "몸도 많이 안 좋으신데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