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선군정치'의 역사를 강조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이미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시작됐다고 주장해 눈길은 끈다.
지금까지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1960년 8월 25일 김일성 주석을 따라 105탱크사단을 방문한 것을 '선군혁명 영도의 출발점'으로, 김 위원장이 김 주석 사망 이듬해인 1995년 1월 1일 한 군부대의 '다박솔 초소'를 시찰한 것을 '선군정치의 시작점'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노동신문은 이날 '위대한 혁명실천으로 빛나는 영광의 행로'란 제목의 기사에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은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선군정치가 시작된 역사적 시기로서 우리 당의 선군혁명영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밝혔다.
선군정치의 역사가 기존의 18년에서 40여 년으로 훨씬 늘어난 셈이다.
노동신문은 김일성 주석이 이 시기부터 이미 김정일 위원장에게 당과 군대 사업을 모두 맡겼다며 "장군님이 당과 군대사업을 직접 맡아 지도하게 됨으로써 선군의 정치이념을 전 사회적 범위에서 구현해나가는 선군정치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심지어 신문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에서 사업을 시작한 1964년 6월 19일도 "선군혁명 영도 실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중대한 계기"라고까지 주장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1969년 1월 인민군 당위원회 4기 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창봉 전 민족보위상 등 '군벌주의자'들이 숙청된 이후 군에 대한 당의 영도체계를철저히 세우기 위한 조직적인 조치도 취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1968년 1월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 작전과 그 이듬해 4월 미 EC-121 정찰기 격추 작전을 김 위원장이 직접 진두에서 지휘했다고 주장하며 김 위원장이 "60년대 말에 벌써 인민군 지휘관들은 나를 최고사령관으로 대하고 받들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처럼 선군정치의 역사를 두 배 이상으로 부풀리는 것은 장성택 숙청 이후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을 위시한 군부의 위상이 강화되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김 제1위원장이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기념일인 24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을 때 최룡해, 리영길 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등 군부 인사들만 대동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노동당 우위를 강조하지만, 체제 수호를 위해서는 결국 무력을 가진 군부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며 "경제 발전을 강조하는 김정은 체제에서도 선군정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