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지역균형발전협의체 주최로 열린 '박근혜 정부 규제완화 정책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정정순 충북도 행정부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잠자는 시민의식

- 산업화 시기 '서울 의존도' 심화

- '정부는 국가, 나는 국민' 인식

- 지방정부 역할·기능 제한 원인

- '2할 자치' 피해 고스란히 받아

# 군림하는 중앙정부

- 17개 시·도를 하부기관 치부

- 분권촉구 공동성명조차 무응대

- 자치입법권·지방재정 등 논의

- '자치여건 미성숙' 들어 반대

# 주목받는 시민운동

-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 등

- 작년 10월 서울서 지역주권 선언

- 한국지역언론인클럽도 힘 보태

- 분권확대 실현 지속적 제기

부산 북구 화명동에 사는 남천우(31) 씨는 경남 양산에 있는 회사에 근무한다. 그는 지난달 12일 부산시, 경남 김해 양산, 울산시 울주군이 행복생활권사업을 한다는 계획이 발표된 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러면 이들 도시가 사실상 하나가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국가가 이런 사업을 하면 특히 교통·교육문제에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남 씨가 말한 '국가'는 중앙정부를 뜻하지만, 이 사업의 주체는 지방정부인 부산시와 김해·양산시, 울주군이다. 중앙정부는 이들 지방정부가 계획을 입안하면 예산 일부와 행정절차 등 제도적 지원만 한다.

지방자치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들은 '정부는 국가'이고, '나는 국민'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해방 이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중앙집권적 국민의식이 형성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2할 자치'로 인해 지방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제한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한국지방세연구원장 재직시절 "국민들은 시민이나 도민이라는 의식보다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통틀어 국가 또는 정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지방자치 발전이 더뎌지고 있다"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갖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명박(MB) 정부시절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현재의 지방자치발전위원회로 통합되기 직전에 펴낸 지방분권백서에도 지방자치가 성숙하지 못한 원인의 하나로 "사회구성원들이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고 명시했다.

시민의 무관심→지방정부의 자치권 제한→중앙집권 유지라는 고리를 끊는 것이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절실한 과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민이 외면한 지방정부는 무력화되고, 결국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17일 '민선 6기 성숙한 지방자치 정착을 위한 전국 시·도지사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국의 특별·광역시장과 도·특별자치도지사 17명이 공동발표한 성명은 ▷기본적 자치권 보장 ▷지방재정 확충 ▷지방의 입법·정책참여 보장 ▷실질적 주민자치 실현 ▷지방분권형 헌법개정 등 5개 요구사항을 담았다.

시·도지사들은 성명의 서두에서 현 자치여건에 대해 "자율과 창의에 기반한 지방자치는 너무나 먼 실정"이라며 "민선 6기에서 성숙한 지방자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지방분권과제를 적극 추진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는 1일 "전국 시·도지사들이 낸 성명에 대해 정부 쪽에서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허탈해 했다.

서울특별시장과 제주특별자치도지사까지 17명의 전국 시·도지사들이 민선 5기를 마감하면서 내놓은 공동성명조차 중앙정부에 의해 무시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국정의 동반자가 아니라 하부기관으로 인식하는 배경에는 '한국에 국민은 있지만, 시민은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지방의 권한을 확장하는 문제를 다룰 때면 대부분의 서울출신 재판관과 중앙관료들은 '국민이나 시민이나 동일체이고, 국가가 지금까지 국민을 잘 보살피고 있는데, 굳이 능력도 없는 자치단체에 권한을 넘겨서 좋을 게 없다'는 식이더라"고 토로했다.

지방의회 자치입법권 확대, 자치경찰제 도입,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지방이관, 중앙-지방 간 협력회의 설치, 지방재정 확대, 주민자치위원회 구성 등 지방자치권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면 중앙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자치여건 미성숙'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시민사회가 국민의식 위에 시민의 주권의식을 더하기 위해 나서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지난해 10월 23일 서울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역주권 촉진대회를 열어 지역주권 선언문을 발표했다.

김윤식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공동의장이 낭독한 선언문은 중앙집권체제의 폐해를 지적한 뒤 "지역이 주권의식으로 강고히 다져져야 지방분권을 이끌어낼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전국 각 지역의 각계각층이 협력하여 주민과 지역사회, 지방정부가 결정권을 갖는 지역주권시대를 실현하는 대장정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시민사회단체는 한국지역언론인클럽(KLJC) 등 전국 지역분권운동단체들과 함께 시민의 주권의식 무장과 분권확대를 요구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