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적폐를 뜯어고치며 국가개조를 이뤄낼 내각 수장으로서의 국무총리 찾기가 난항 끝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총리 후보자 2명의 연쇄낙마를 부르는 '롤러코스터'의 어지러운 흐름을 거듭하더니 결국 두달여의 국정공백만 초래한 채 별다른 소득없이 마감된 것.
발단은 '세월호 참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참사 발생 열이틀째인 4월27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자 이를 수용하면서도 사표수리는 사고수습 이후로 미뤄놓은 채 차기 총리를 물색하는 작업에 나섰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퇴진을 전제로 정 총리에게 사고수습을 맡기면서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라는 대국가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중량감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총리 후보자 찾기에 돌입한 것.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사고발생 열나흘째인 4월29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안전처의신설과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척결, 국가개조를 약속한데 이어 5월19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해양경찰청 해체와 민간참여진상조사위 구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제정을 정치권에 제안했다.
그래서 선택된 차기 총리 카드가 안대희 전 대법관이었다. 박 대통령은 담화 사흘 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세월호 책임회피성 발언'에 책임을 물어 김장수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전격 경질하고 안 전 대법관을 후보자로 선택했다.
자신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강직한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정부출범 후 최대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묻어난 인선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안 당시 후보자는 후보지명 불과 엿새 만에 생각지도 못한 '전관예우' 논란에 발목이 잡혀 낙마하고 만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 등 공직사회 개혁을 추진할 간판으로 내세운 이가 타파대상인 '전관예우' 논란에 휘말려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못하고 고꾸라짐으로써 박 대통령은 다시 한번 타격을 입게된다.
안대희 카드의 실패로 흔들리던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기자 출신인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지명하는 것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정 총리가 사의를표명한 지 44일만인 6월10일의 일이다.
청와대는 충청출신인 그를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의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며 차기 총리의 적임자로 내세웠지만 그 역시 수렁에 빠지는데는 불과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KBS가 다음날 저녁 9시 뉴스를 통해 과거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영상을 보도하면서 '친일 사관' 논란의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든 것. 본인의 해명과 부인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악화하면서 그를 후보자로 지명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곤두박질치는 등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결국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재가하지 않고 중앙아시아순방에서귀국한 뒤 재가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 사실상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유도했다.
부정적 여론과 청와대의 압박에 문 후보자는 총리지명 14일만인 지난 24일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인선난에 더해 후보자의 잇단 사퇴로 국정표류가 장기화할 것을 우려한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사퇴 이틀만에 정 총리의 사표를 반려하고 그에게 내각 수장의 임무를 다시 맡기는 고육책을 택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