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로 여권이 최대위기에 빠진 가운데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긴급 회동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됐다. 두 사람은 40여 분간의 회동을 통해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처리문제를 포함해 여러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박 대통령 이미 결단설 유력

이날 회동은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요청으로 이뤄졌고, 회동 목적 또한 "이 시기에 장기간 출국을 앞두고 여러 현안에 대해 당 대표의 의견을 듣고 싶어 만나자고 하셨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김 대표와의 회동을 위해 순방출발시간까지 연기했다. 그만큼 당 대표에게 할 말이 있었고, 출국 전에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총리 문제에 대해 "잘 알겠다. (중남미 순방)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말한 부분은 사실상 해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이미 모종의 결단을 내렸고, 발표 시점만 순방 후로 연기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대표는 회동 후 국회 대표실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당 내외에서 분출되는 여러 주장을 가감 없이 대통령께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이 총리에 대한 사퇴요구 여론도 포함된다. 이 같은 의견을 전달받고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말한 것은 "다녀와서 어떠한 조치라도 하겠다"는 의지표명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특별검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언급한 부분도 비슷한 해석을 낳고 있다. 이 총리로 하여금 자리를 유지하게 하면서 특별검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뭔가 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검사를 도입할 경우 수사착수까지만 해도 상당한 기일이 필요한 만큼 기약 없는 공방이 불가피하다. 그 기간 총리를 교체하지 않을 경우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측면도 생각해야 한다.

■총리 거취 명시 않아 설 분분

이날 회동내용에 대해 실망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핵심은 이 총리의 거취문제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명시적인 표현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와 어떤 말들을 주고받고 대책을 세웠는지는 몰라도 이 총리의 거취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현직 총리를 포함해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현직 광역단체장 등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연루된 대형 스캔들에 비해 대통령의 언급이 너무 불명확했다는 점에서이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와의 회동소식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결심을 했고, 당 의견을 들은 뒤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어쨌거나 대통령 순방기간 총리가 형식적으로나마 국정운영을 총괄해야 한다. 총리가 사퇴할 경우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해외출장 중인데 어쩌라는 말이냐"라면서 "당에서 의원총회 등을 통해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사퇴로 가닥이 잡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이 "이번 일을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 뽑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부분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전날도 부정부패 일소를 강조하면서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정권과 얽힌 의혹까지 파헤치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낳았다.

이 총리를 사퇴시킨 뒤 사정 태풍이 몰아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이 지난 14일 대정부질문을 통해 "지금 상황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모든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박 대통령의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