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 중심 여권 질서로는
- 정권재창출·정치생명 위기
- 중도·보수 새판 주도하며
- '개헌 연대' 꾸릴 가능성

- 반기문 등 與 후보 약세 땐
- '김 대안론' 부상할 수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간의 '10년 애증사'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김 전 대표는 23일 박근혜 대통령 중심의 현 여권 질서를 '보수의 썩은 환부'라고 지목했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앞장서 '새로운 보수 재탄생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고 했다. 신(新)보수 탄생의 중심 역할을 위해 대선 포기를 선언한 김 전 대표의 승부수가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단절' 없으면 재기 불투명

김 전 대표가 이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밝힌 것은 박 대통령 중심의 기존 질서로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은 물론 자신도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이 성공해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의 오랜 소신이었다. 하지만 '청와대 게이트'로 박 대통령은 이미 실패를 넘어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다. '5% 지지율'은 고착화돼 있고, 새누리당에 대한 보수층의 민심 이반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과의 단절 없이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2005년 1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을 때 사무총장으로 발탁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이후 김 전 대표는 '친박 좌장→탈박→복박→비박'으로 수차례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박 대통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 투수'로 등판해 박 대통령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박 대통령과의 관계는 청와대 게이트 국면에서 김 전 대표에게 '독'으로 작용했다. '공동 책임론'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표가 수차례 박 대통령의 탈당과 탄핵을 주장했지만 김 전 대표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은 바닥권에서 정체돼 있다. 이는 박 대통령과 김 전 대표를 '한 몸'으로 보는 인식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 전 대표는 이날 회견문의 대부분을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채웠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를 끊어내지 않으면 함께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탄핵 탄력·대선 구도 요동

일단 김 전 대표가 대선 꿈을 버리면서 비주류 구심점으로 다시 부상할 가능성은 커졌다. 여권 내에서도 김 전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다. 따라서 김 전 대표가 주도하는 박 대통령 탄핵 추진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서 "국정 위기 수습과 당의 혁신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며 "김 전 대표가 보수의 저력을 보여주는 자기희생과 결단을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도 "대선 전선에서 후퇴하고 탄핵 전선으로 왔다. 같이하길 바라며 환영한다"며 "김 전 대표가 헌법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해 탄핵안 발의뿐만 아니라 의결 과정에도 적극 나서주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김 전 대표의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김 전 대표가 새누리당 내 탄핵을 주도하면 친박계와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결국 탈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 전 대표가 탈당파에 합류하면서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면 중도·보수진영의 새판짜기를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개헌 연대'로 친박·친문 세력의 고립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양극단 정치를 배제하고 민주적 협치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2보 전진'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개헌을 통해 내치 실권이 있는 국무총리를 맡거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보수 후보들이 대선 국면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면 '김무성 대안론'을 업고 다시 부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정치는 생물이니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