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으로 짧게는 7년간의 전두환 정권, 길게는 26년간 지속됐던 군부 통치가 끝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민주화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또 민주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기본권이 대폭 신장되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급속하게 활성화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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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민정당 노태우 대표가 '6·29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6월 항쟁 사진자료집 |
하지만 개헌 과정에서 정치권의 분열로 6월 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가 주체 세력이 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결국, 직선제 개헌은 했지만 야권인 김영삼(YS)·김대중(DJ) 후보 단일화가 진통을 겪으면서 신군부 출신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뜻밖의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6월 항쟁이 들불처럼 번지자 신군부는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시위의 규모와 격렬함, 지속성 등에 놀라 계엄령 선포 등을 검토했다. 하지만 국민의 분노를 적절한 선에서 무마하고자 '6·29 선언'을 발표했다. 9개 항의 이 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 실시 ▷양심수 석방 ▷김대중(DJ) 복권 ▷대폭적인 민주화 조치 등이 담겼다. 그럼에도 6·29 선언에는 노동자와 농민 문제, 5·18 항쟁의 진상 규명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지나치게 모호한 점 등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6월 항쟁을 주도했던 국본 세력이 개헌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면서 불완전한 개헌이라는 평가를 낳았다. YS와 DJ의 후보 단일화 갈등으로 국본 세력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정치적 혼란상을 보였다.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과정에서 정치권이 정파 간 이해득실로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부마항쟁기념사업회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차성환 소장은 "당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개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터라 결과에 아쉬움이 많다. 6월 항쟁 이후 야권 분열 등으로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현 정치권이 촛불민심 등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길 기자 yjk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