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내년 방위비 분담협상 앞두고
- 유리한 위치 선점 위한 사전포석
- 대선 전 비용책임 전가 의도도
- 정부 "SOFA 규정 美부담 원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주한미군에 배치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비용을 한국 정부에 요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한미 양국 합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으로, 사드 반대론에 불을 지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배치한 사드 비용과 관련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국내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10억 달러(1조1300억 원)는 사드 1개 포대의 가격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우리 국방부는 입장 자료를 통해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관련 규정에 따라 한국 측이 사드 배치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미 양국의 입장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실제 국방부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해 당황하는 분위기다. 사드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하게 한다는 것은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양국 합의에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SOFA에 따르면 한국에 배치되는 미군 전력에 대해 한국 측은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미국 측은 전력 전개와 운영·유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사드 장비의 비용을 대는 일은 없다는 게 양측의 합의였다.

외교부도 이날 "미국 측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바 없다"며 "'우리 정부는 부지·기반 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는 한미 간 합의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는 등 트럼프의 이번 발언이 일으킬 파문 확산을 경계했다. 그러나 한국 측이 뒤통수를 맞은 형국이 된 만큼 사드 반대 여론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사드 비용 부담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한국에서 다시 반미감정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로 미뤄 한미 간 협상에서 사드 비용 부담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비용 10억 달러를 한국이 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둔 사전포석의 측면이 크다고 분석도 나온다. 정부로서는 먼저 트럼프 대통령 발언 진의를 분명히 파악하고, 공식적인 요구가 들어오면 협상을 통해 최대한 우리 입장을 관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했던 최대 수준을 요구하면서 흔드는 특유의 협상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외교·협상력을 발휘해 우리가 부담할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다음 9일 열리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서적 측면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도 있는 상황에서 발언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트럼프 입장에서는 한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사드 비용과 관련해 못을 박아놓으려는 의도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