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권, 김 공적 거론에 강력 반발
- 靑 “낡은 이념 공세 납득 어려워”
- 국가 26번·유공자 19번 사용
- 애국 11번 진보·보수 9번씩 등장
- “美, 이 땅 자유 위해 큰 희생 감내”
- 한미동맹 숭고함·중요성도 역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비판하며 애국과 통합을 강조하는 데 공을 들였지만 약산 김원봉(1898~1958)을 언급하면서 추념사에서 말하고자 했던 애국·통합 메시지가 희석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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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서 고 성복환 일병의 부인 김차희 씨와 고인의 위패를 보고 있다. 고 성 일병은 1950년 8월 10일 학도병으로 입대해 1950년 10월 13일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했다. 현재까지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다. 연합뉴스 |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보수·진보를 떠나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고 강조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으로 갈라진 현 상황을 비판하고 통합을 강조했다. 이는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가르고 서로를 공격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다는 문제 인식을 담은 대목으로 해석됐다.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애국’을 11번 사용했고, ‘진보’와 ‘보수’를 9번씩 언급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국가’로, 총 26번 등장했다. ‘유공자’라는 단어도 19번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보수 진영에서 특별한 가치를 두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도 역설하며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 나라는 미국이다. 한미 동맹의 숭고함을 양국 국민의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역시 튼튼한 안보와 국가의 번영을 위해 이분법적 이념의 잣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일본 강점기 조선의용대를 이끈 항일 무장독립투쟁가 약산 김원봉과 관련해 “임시정부가 좌우합작을 이뤄 광복군을 창설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평가하면서 자유한국당 등 야권의 반발을 샀다.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 일제 수탈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하다가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다. 그러나 1948년 월북해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같은 해 9월 국가검열상에 오르는 등 ‘사회주의 성향 독립운동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경력으로 보훈처의 국가유공자 선정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야권은 문 대통령이 이날 김원봉의 공적을 거론한 만큼 국가보훈처가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지정을 추진할 것을 우려하며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2015년 8월 페이스북을 통해 “김구 현상금 5만 엔, 김원봉 현상금 8만 엔”이라는 영화 ‘암살’의 대사를 언급하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일제 시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야권의 반발에 대해 “애국을 위해 낡은 이념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얘기인데, 거꾸로 이를 문제 삼아 다시 이념 공세에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