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때 피란지인 부산에서
- 김대중과 첫만남 뒤 백년가약
- DJ 옥고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 망명 땐 후견인으로 평생 지켜
지난 10일 밤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희호(1922~2019) 여사는 남편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부딪친 험난한 생을 마감했다. 2009년 8월 남편이 서거한 지 10년 만에 이 여사는 ‘인동초’ DJ 곁으로 돌아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고(故)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가 이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연합뉴스
이 여사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결혼 전에는 독신을 고집하며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 여성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 이전에 여성 지식인, 여성 운동가로서 평생 여성 인권 신장에 힘쓰며 한국 여성 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 여사는 이화고등여학교(이화여고 전신)와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전신), 서울대 사범대를 거쳐 당시 드물게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이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 여성 교육자 황신덕 여사, 헌정사상 첫 여성 당대표(민주당)가 된 박순천 여사 등 당대의 엘리트와 함께 여성운동 ‘1세대’로 꼽힌다.
정치인 아내의 길로 들어선 뒤 남편이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을 노심초사 지켜보며 험로를 걸었지만, 마침내 제15대 대통령(1998~2003년) 영부인이라는 영예를 누렸다.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 연금 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 시절에는 조언자로 곁을 지킨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내조자를 넘어 정치적 동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여사 곁에서 그의 인생 역정을 지켜봐 온 사람은 ‘DJ의 삶이 곧 이희호의 삶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여사는 스스로 주체적 여성 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였고, DJ의 둘도 없는 ‘동지’이기 때문이다. 실제 DJ는 1977년 이 여사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서 “우리는 사적으로는 가족 관계지만 정신적으로는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동행자 간”이라고 썼다. DJ는 또 1983년 미국 망명 시절 강연에서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회고했다.
DJ의 정치적 기반은 호남이지만 이 여사와 인연을 맺어준 곳은 1951년 6·25전쟁 피란지 부산이었다. 이 여사는 당시 전란 중 부산에서 여성운동에 투신하고 있었고, DJ도 부산에서 해운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DJ는 이 여사를 “이지적인 눈매를 지닌 활달한 여성”으로 기억했다. 공부를 많이 한 인텔리 여성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상하리만큼 말이 잘 통한다는 점이었다.
이 여사는 마흔 살이었던 1962년 대한YWCA 총무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전처와 사별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DJ와 결혼했다. 이들 두 사람의 부산에서 인연이 10여년 만에 사랑의 결실을 본 셈이다.
김미희 기자
이희호 여사의 생애 |
1922년 |
9월 21일 서울 출생 |
1958년 |
美 스카렛대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 |
1961년 |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
1962년 |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 |
1980년 |
김 전 대통령 내란음모 사건 당시 국제적 구명운동에 앞장 |
1998년 |
대통령 영부인(2003년까지) |
2011년 |
12월 김정일 조문 위해 방북 |
2019년 |
6월 10일 노환으로 별세. 향년 9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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