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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1> 탈북민, 분단의 프랙털

탈북 청소년·남쪽 학생 함께 ‘까르르’… 여긴 미래의 통일교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31 22:43:50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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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소설가와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반도 분단을 들여다보고 통일을 내다보는 ‘분단인 통일인’을 각각 3회씩 모두 6회 연재한다.


- 남북 다양한 태생의 아이들 함께
- 어울려 생활하는 ‘장대현학교’
- 송년회서 남한 아이가 사회 보고
- 北 출신 아이는 ‘렛잇고’ 불러
- 그곳에 편견·이념의 벽은 없다

- 사회 적응 쉽지 않은 탈북민 삶
- 분단 체제 상황과 너무 닮아
- 그들에게 귀 기울이는 작은 행위
- 휴전선 허물 거대한 파동으로

“난 모르겠다. 암만 해도 난 모르겠다. 삼팔선. 그래 거기에다 하늘에 꾹 닿도록 담을 쌓았단 말이냐 어쨌단 말이냐. 제 고장으로 제가 간다는데 그래 막는 놈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 나오는 철호 어머니의 절규이다. 소설이 발표된 1959년과 현재, 분단 상황이나 인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부산 강서구 신호동 장대현학교의 아이들. 탈북 주민의 자녀, 중국에서 온 아이, 한국 학생들이 어울려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다. 어쩌면 우리의 ‘통일’은 이 아이들의 모습 속에 있다. 장대현학교 제공
부산 강서구 신호동에 장대현학교라는 탈북 청소년 교육기관이 있다. 서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지만 갯내가 더 많이 나는 곳이다. 해안로를 따라 비슷한 크기의 다세대 주택이 이어지는 동네 안, 빨간 지붕을 인 예쁜 건물이 그 학교이다.

나는 지난 9월부터 그곳에서 역사와 논술을 가르쳤다. 북한에서 온 아이, 북한에서 온 부모님을 둔 아이, 중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어가 서툰 아이, 북한에서 태어나지도 탈북민의 자녀도 아닌 한국 학생들이 어울려 공부하는 기숙형 학교이다. 북한이나 중국에서 온 학생은 몇 년 전 북한이탈주민 정착기관인 하나원에서 많이 만났다. 우리는 하나원에 대한 기억만으로 금세 친해졌다. 탈북민이 한국에서 낳은 아이들과 일반학교에 다녀야 할 한국 학생들은 조금 낯설었다. 혹시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한두 시간 만에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했다. 나 역시도 다양한 출생 이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수업 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기말고사 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었더니 북한에서 온 아이는 감자를 먹으며 TV를 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혜산(북한 양강도의 도시) 감자는 이곳 감자와 맛이 다르다고, 그 감자가 먹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소원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실컷 들으며 쇼핑을 가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었다.

■장대현학교서 느낀 하나 됨

지난달 19일 장대현학교에서 열린 ‘선생님들의 위한 감사의 밤’에서 학생들이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지난 12월 19일 선생님들을 위한 ‘장대현학교 감사의 밤(사진)’이 열렸다. 다세대주택 1층 거실쯤 되는 곳이 공연장이었다. 베란다 창에 노란 반짝이를 늘어뜨리고 곳곳에 별을 달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다. 화려하지도 넓지도 않은 무대였지만 모든 재학생이 등장하여 노래 부르고 춤추고 편지를 읽었다.

미국에서 온 영어선생님과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부모를 따라온 유치원생까지 어울렸다. 가장 눈길을 끈 아이는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가인 ‘렛잇고’를 부르며 춤춘 북한에서 온 학생이었고 가장 바쁜 아이는 사회도 보고 조연으로도 등장한 한국 학생이었다.

사실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은 이미 편견이나 차별, 분단의 벽은 사라지고 남북이 하나된 모습이었다. 그제야 나는 한국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학교가 강을 건너고 바다와 접하는 부산의 끝에 있다는 게 크리스마스를 앞둔 탓인지 의미 깊게 느껴졌다.

몇 년 전 하나원 근무를 계기로 북한에서 온 분을 적지 않게 만났다. 나의 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에도 등장하는 선주 씨는 수원의 작은 회사에 몇 년째 다니고 있다. 소형승용차를 몰고 출근할 때 꿈을 꾸는 것 같다며, 한국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17살에 혼자 넘어온 수지는 아직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애를 태우지만 그래도 대학에 잘 다니고 있다. 지난 학기엔 학점 자랑도 했다. 탈북청소년 특성화학교인 한겨레학교를 졸업한 후 중소기업에 취직한 윤혁은 작년에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이직했다. 처음엔 기계나 부품 용어에 영어가 많아 어려웠다고 했다. 혼자 수십 번도 더 외우고 확인했다고 한다. 그래도 모를 때에는 회사 사람들이 형편을 이해하고 도와주신다며 웃었다.

선주, 수지, 윤혁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모든 걸 바꾸어야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외롭고 불안했던 그 시간을 이겨낸 건 한국의 누군가 그들과 함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분단, 세계의 분단

한국에 온 지 6년째인 남매를 만났다. 중1이던 동생은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반이고 오빠는 서울의 전문대학에 다니고 있다. 만두와 피자 중 뭘 먹겠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피자라고 했다. 예전엔 바로 만두였는데. 식성만 변한 게 아니다. 외양도 말씨도 달라졌다. 여동생은 북한 억양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오빠는 좀 남아있는 편이었다). 밥을 다 먹고 6년 동안 가장 불안했던 때가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오빠는 대학 공부가 너무 어려워 과제를 할 수 없었을 때라고 했고 동생은 처음 한국 학교에 전입했을 때라고 했다. 북한에서 왔다는 게 알려져 한동안 힘들었지만 친구가 생겨서 그 위기를 극복했다고 했다. 표 나지 않게 관심을 보여주신 선생님도 많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빠도 한마디 했다. 서울에 있는 탈북청소년학교 다닐 때 제가 엄청 사고를 쳤거든요. 그때 교감선생님이 저를 붙잡고 우셨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그때부터 정신을 차렸어요. 그런데 대학 공부가 어려워 휴학하려고요…. 오빠는 말을 흐렸다. 6년 간 노력했지만 다시 출발선에 선 듯한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있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문이 나타나고, 누군간 영원히 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분단 상황 역시 탈북민의 처지와 다를 게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고 넓어진 분단은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여러 색이며 때론 두 가지 이상 색이 혼합돼 새로운 색이 되기도 한다. 벽은 두껍고 높은 것 같기도 하고 때론 낡은 차의 범퍼처럼 손만 갖다 대면 허물어질 것 같기도 하다. 허물어질 것 같다가도 다시 단단하게 원상복구됐다. 자주 쌀과 비료를 보내주는 걸로 정치권에서 다퉜고 미국과 중국 눈치를 봐야 했다. 끊임없이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 축구경기를 하고 음악회를 했지만 늘 그 자리, 분단의 가장자리를 뱅뱅 돌았다.

무엇보다 분단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것이어서 예측 불가능한 상태이거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태로 유지된다. 그러는 동안 분단의 구덩이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고 복잡해진다. 그러나 탈북민이 벽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오는 순간 견고한 분단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내부에 분단의 벽을 세우고 의심하고 경계하고 이용하지만 누군가는 그들을 통해 통일이 시작됐음을 본다. 손을 내밀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작은 행동이 권력보다 가볍고 빠르고 의미 있는 순간이다. 그 일은 탈북민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를 흔드는 미약하지만 거대한 파동이다.

■분단과 통일을 성찰할 때

‘오발탄’에 등장하는 철호어머니의 절규는 현재에도 계속된다. 누구도 허가를 받지 않고 남북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없다. 금기의 순간부터 남북을 동시에 욕망하는 것 자체가 죄, 공포가 된다. 우리는 그 공포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봐왔다. 삼팔선의 금기가 만든 우리의 공포와 두려움이 분단체계를 강화시켜온 것이다.

탈북민의 수가 3만 명을 훌쩍 넘었다. 북한을 떠나 남한에 온다는 것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살던 장소와 역사가 같이 오는 것을 의미할 것인데, 남북한의 차이와 다름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젠 분단의 ‘프랙털(부분과 전체가 비슷한 구조)’인 탈북민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통해 분단체제와 인식이 우리 삶과 역사를 얼마나 분열, 균열시켰는지 성찰할 때가 아닐까. 정영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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