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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4> 서독사람 동독사람

군인·농부 밖에 할 게 없던 청년들, 통일열차에 새 희망 싣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1-20 19:41:11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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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 통일 환호의 순간 지난 뒤
- 정치재판 대량실업 경제불안 등 
- 암울한 격변기 겪어야 했지만  
- 젊은 세대에겐 가능성 열어줘

- 새 정치공동체 만드는 과정 속 
- 부딪히는 사회·정치적 문제들 
- 이해와 관용으로 극복해나가야

통일은 겸손이다. 이것이 한반도 통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북한뿐 아니라 관련국에도 해당한다. 평화주의자 묵자(墨子)는 이를 겸애라고 했다.
   
2011년 7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베를린 장벽. 이 장벽 앞에 서서 ‘통일은 겸손이다’라는 말을 곱씹었다. 하태영 교수 제공
유학중이던 내가 서독 뮌스터에서 동독 할레로 이사 온 첫날인 1992년 12월 1일. 통일된 독일의 동독 쪽 대학기숙사는 너무 조용했다. 미리 각오는 했지만, 이곳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부산 앞바다의 활력만 생각났다. TV를 켰다. 동독 기숙사에는 유선방송이 없었다. 통일 전 20개 이상 채널에서 3개 채널로 방송 환경이 바뀌었다. 공영방송1(ARD), 공영방송2(ZDF), 중부독일방송(MDR)뿐이었다.

7시 뉴스가 흘러 나왔다. 중동 분쟁과 유고 내전 같은 우울한 소식뿐이었다. 유럽 통합 관련 소식도 나왔다. 7시 20분쯤 뉴스가 끝났다. 이어서 3년 전인 1989년 12월 1일의 뉴스가 나왔다. 동독 정치가들이 화면에 등장하면서, 통일 당시 급박했던 상황이 재현됐다. 중앙당 행사, 긴급조치, 라이프치히 거리시위 등 ‘침몰하는 동독호’의 마지막 순간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중부독일방송(MDR)은 왜 지나간 뉴스를 보여주는 것일까? 3년 전 격동 시기를 보여주면서 현재 어려움을 잊자는 것일까?

당시 통일독일 정치상황은 어수선했다. 동독 정치가들의 형사재판, 대량 실업, 경제 불안이 이어진 암울한 시기였다. 구동독에서 보내는 첫날. 나는 ‘독일 오늘과 어제’라는 뉴스를 보면서 동독 사람들을 다시 생각했다. 동독 노인, 실업자, 주부, 초·중·고·대학생은 도대체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통일은 희망을 주었어요

   
1992년 12월부터 1996년 9월까지 동독 할레에서 생활했다. 보고 들었던 이야기다. 당시 동독에는 세 종류 사람이 살았다. 서독사람은 베씨(wessi), 동독사람은 오씨(ossi), 중간지대 사람은 보씨(wossi)라고 불렀다. 독일통일 환호와 열광이 지난 간 후, 동독 현실은 참담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폭풍이 휘몰아쳤고, 동독지역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엔지니어가 노무자로, 대학교수가 운전사로 나서는 직업생활의 일대 혼란이 계속됐다. 사회 기반세력인 30~50대 중간층이 붕괴됐다. 서독으로 ‘덮어씌우기’가 계속됐다.

독일 신탁관리청은 동독에서 인수한 모든 기업의 사유화를 책임지고 있었다. 3년 만에 1만 개 기업이 매각됐다. 재도산 기업이 속출했다. 동독지역 산업생산은 통일 전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고, 재생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독사람들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만 현장에 머물렀다. 서독에 가족이 있었고, 동독에 직장이 있었다. 구동독 전지역이 이런 생활이었다. 많은 젊은 사람이 고향을 떠났다. 남은 사람과 드라비(동독 자동차) 소리만 들렸다. 동독사람들은 스스로 ‘2등 시민’으로 칭하며 ‘점령지에 산다’고 한탄했다.

그때 내가 만난 할레 사람들은 불만이 많았다. “할레에 세 유형 계층이 있다. 할로커·할룽커·할렌저이다. 할로커는 할레에서 한몫 잡고 벌써 서독으로 도망간 사기꾼들이고, 할룽커는 아직 남아 한몫 잡고 있는 사기꾼들이며, 할렌저는 고향이 할레라서 그냥 남아 있는 원주민이다.” 경멸을 이렇게 표현했다. 주말마다 TV 토론이 있었다. 서독사람들은 동독사람들이 ‘무임승차’한다고 비난했다. ‘동독사람들은 자립성 창의성 결단성이 부족하고, 편협하며 정서가 불안하다’고 의심했다. 동독사람들 반감도 극에 달했다. ‘오만, 사기꾼, 공동체 정신이 결여된 이기주의자’로 서독사람을 몰아붙였다.

독일 통일 12년이 지난 후, 2002년 6월 독일을 방문했다. 할레대학교에서 페터(당시 25세, 법대 조교)와 안드레(당시 25세, 법대 조교)를 만났다. 페터 고향은 베를린, 안드레 고향은 막데부어그였다. 둘 다 구동독지역 출신이다. 통일 당시 이들 나이는 13살, 초등학생이었다. 인생 반을 각각 분단시대와 통일시대에 살았다. 페터와 안드레 소년시절 꿈은 직업군인이었는데, 통일이 그 꿈을 바꾸어 버렸다. 페터는 2001년 2월, 안드레는 2000년 9월 변호사시험(Staatsexamen) 1차 시험에 합격했고, 할레대 법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일통일은 이들 같은 많은 젊은이에게 희망의 싹을 틔워주었다.

여전히 ‘베시와 오씨’간에 장벽이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경제적 간격은 많이 좁아졌어요. 그러나 마음 장벽은 여전히 있죠. 극복에는 분단된 세월만큼 시간이 필요해요. 통일 당시 30대, 50대가 지금 40대, 60대입니다. 끔찍한 격변기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한 세대가 흘러야 완전한 통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대학생이 되어 법학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동독 체제에서는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길이 아니었다. 페터와 안드레 꿈은 부모세대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통일 없이는 불가능한 꿈이었는지 모른다. 페터가 말했다. “통일이 안 되었다면 모두 폐허가 되었을 겁니다. 통일 초기 할레에서 보셨지요? 거기엔 미래가 없었습니다. 군인이 되거나,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겠지요. 여행도 감히 꿈꿀 수 없고요. 외국인과 자유로이 대화를 할 수도 없었지요. 독일 통일은 젊은 세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는 동독의 ‘행운’을 말했다. “미래 희망이 상실됐던 독일 중동부 지역, 누가 도와줍니까? 부자인 ‘형제국가’가 도와주어야지요. 동독으로서는 행운입니다.”

안드레가 말을 이었다. “지금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범죄 등 각종 문제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실업·사회 불안·미래 불안 입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모두가 극복의 문제입니다. 통일 열차는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통일은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페터는 앞으로 있게 될 한국 통일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다. “정치가들은 남북한 주민에게 ‘통일의 빛과 그림자’를 솔직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통일 격변기에는 대량 실업과 사회갈등 그리고 경제적 부담이 불가피합니다. 이 고통은 자식 세대에 곧 희망의 싹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자유와 평화 속에서 꿈과 미래를 개척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민족은 ‘슈퍼 KOREA’를 만들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이 있다고 호소해야 합니다.” 안드레도 말했다. “12살 때인 1989년 11월 9일 화요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서독 하노버로 갔습니다. 그때 처음 코카콜라를 맛보았습니다. 니베아 크림도, 컴퓨터도, 장난감도 백화점에서 처음 봤습니다. 모두가 처음이었죠.” 페터가 말했다. “동독사람은 통일 후 한 번쯤은 ‘오씨와 베씨’의 차별을 받았을 겁니다. 통일은 점령이 아니고,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와 관용이 필요합니다. 통일에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올해 페터와 안드레는 43세가 됐을 것이다. 독일 어느 곳에서 멋진 가정을 이루고, 좋은 법조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2019년 10월 20일 독일 은사님 70세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크리스토프(50)는 대학교수로, 실비아(35)는 행정법원 판사로, 세바스찬(35)은 형사법원 판사로, 또 다른 세바스찬(40)은 베를린 로펌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구동독지역 출신이다. 통일은 30년 동안 이렇게 사람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들을 2020년 10월 한국에 오시라고 초청했다. “분단인 통일인, 통일 토크쇼 한 번 하자!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차별받았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 한국 사람에게 전해주었으면 한다. 할아버지 삶, 할머니 삶, 아버지 삶, 어머니 삶, 가족 삶도 듣고 싶다. 우리는 관심이 많다”고 나는 그들에게 당부했다.

   
통일은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한반도 현상 타파의 힘은 미국과 중국이 갖고 있다. 한국이 북한과 교류하는 것이 주변 강대국의 이해와도 일치한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지식정보혁명, 새로운 미래, 역동적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역동성이 있기에 역사적 진보를 이끌 가능성이 높다. 올바른 정신 상태로, 최소한 10년은 준비하자.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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