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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6> 독일 통일과정 7대 과오

28년 만에 통일한 독일이 남긴 교훈, 따뜻한 자본주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03 19:07:36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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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전 수상 헬무트 슈미트
- 통일 과정에서의 과오 밝혀

- 시장에 모두 맡긴다는 미명 하
- 동·서독 화폐 1대1 교환하고
- 국유재산 민영화 위해 신탁관리
- 동독 경제·사회 함께 무너뜨려

- 북한 주민의 자유의지 존중해
- 의존 아닌 공생 자본주의 갖출때
- 남북통일의 길에 한발짝 나아가

“이건 아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은 정말 상상 못했다. 1989년 11월 9일에도, 1990년 10월 3일에도 그랬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이런 식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1918-2015, 사민당·독일 전 수상)는 1993년 ‘통일과정에서 7대 과오’라는 글을 발표했다. 첫 문장이 강렬하다.

7대 과오를 요약한다. ▷동서독 경제통합 문제를 어리석게 과소평가한 것 ▷동독이 선진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순진하게 믿었던 것 ▷ 동독 마르크를 서독 마르크로 1:1로 교환해준 것 ▷통일 기금을 1994년까지만 운영하도록 결정한 것 ▷신탁관리청으로 ‘인민자산기업’을 민영화한 것 ▷통일조약에 근거해 몰수재산처리 규정을 둔 것 ▷서독 노조가 생산성 향상보다 동독 임금 문제를 먼저 협상 탁자에 올린 것이다(‘통일의 노정에서’·오승우 옮김·시와 진실·2007). 특히 화폐교환, 신탁관리청, 몰수부동산 문제는 관심을 크게 끈다.
2019년 10월 촬영한 옛 동독지역 할레시의 할레 중앙역 부근 건물이다. 독일 통일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옛 동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독일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한다. 하태영 제공
■ 1:1 화폐교환 과오

1990년 7월 1일. 서독 마르크가 동독에 도입됐다. 화폐통합은 정치통합 선행 단계였다. 동서독은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됐다. 그러나 가장 큰 과오 중 하나가 임금과 상품 가격을 1:1로 전환한 것이었다. 동독 경제는 무너졌다.

동독 국민차 트라반트(Trabant, 1957-1991)는 동독 경제 상징이었다. 동독 사람은 이 차를 주문한 후, 인도받을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렸다. 화폐교환 이후 아무도 ‘신형 트라비’를 사려 하지 않았다. 같은 값에 오펠·폭스바겐·포드·피아트 소형차를 살 수 있었다. 품질도 좋고, 즉시 인도됐다. 고급 자동차도 중고시장에 쏟아졌다. 어떻게 됐겠는가. 동독 국민차는 생산이 중단됐고, 협력 부품공장도 문을 닫았다. 트라비 몰락은 동독 경제 몰락을 의미했다. 동독 공산품도 사라졌다.

동독 경제·사회 몰락 원인은 ‘시장이 만병통치약이다’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콜 수상은 제2 경제 기적이 온다고 했다. 대량실업과 실업자 심정을 읽지 못했다. 통일 초기 3년, 동독 지역 경제활동인구 중 약 45%만 정규직이었다. 화폐교환이 몰고 온 재앙이었다. 슈미트는 뼈아프다고 했다. “동서독 공식 환율 도입, 전 독일경제협의회 설립, 서독 세금 인상, 일회적 재산세 납부를 도입하자고 제안·경고했지만, 환상에 빠진 정부는 전부 거부했다. 1959년 사민당(SPD)이 제안한 자료를 정치인들이 충분히 활용했다면, 대부분 판단 착오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탁관리청 과오

1990년 3월 1일. 동독 정부가 국유재산 민영화를 위해 신탁관리청(Treuhand)을 세웠다. 통일 후 연방 재무부로 편입됐다. 통일 정부는 동독 국유산업을 정비했다. 3년(91-94) 동안 1만5000여 개 국유기업을 처분했다. 투자기업들은 민영화 이후, 경쟁력과 효율성을 내세우며, 대대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시장경제 전환과정에서 300만 명 동독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 제조업 분야 노동자 78%가 실직했다. 대부분 여성이었다. 동독에서 여성 실업은 사회체제 붕괴를 뜻했다. 슈미트는 “독일 연방정부는 동독 재산을 처분할 권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신탁관리청은 동독의 모든 주정부·주의회에서 절대적 제2 정부가 됐고 연방 재무부 명령만 따랐다. 동독 사람은 이 권한을 나눠 갖지 못했다. 민영화 담당자는 ‘동독 경제 장의사’였다. 콜 총리는 ‘핵심 산업 유치’라는 새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진실을 가릴 수 없었다. 신탁관리청 구조와 업무가 잘못돼 있었다.

■ 몰수 부동산 과오

동독 경제의 상징 ‘트라반트’.
1990년 10월 3일 이후 ‘부동산 전쟁’은 동독 전 지역을 강타했다. 연방정부는 ‘선 반환, 후 보상 원칙’으로 결론 내렸다. 이는 ‘독-독 재산전쟁’을 촉발시켰다. 서독에 사는 (동독 부동산에 대한) 원소유주 110만 명이 250만 건 각종 재산에 대해 심사를 청구했다(90-93년 통계). 소유권 반환요구 분쟁 사건이 독일 법원에 연일 접수됐다. 동독 사람들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부동산 문제는 ‘동서 갈등 화약고’가 됐다. 슈미트 전 총리는 “반환 원칙 대신 보상 원칙으로 법률을 만들었다면, 훨씬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1989년까지 과거 재산 소유자 상속인들은 돌려받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적절한 보상도 환영했을 것이다. 오류투성이인 반환 원칙을 굳히려고, 무분별한 사유재산권 이론을 들고 나왔다. 국가가 조장한 지속적 균열이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보상원칙’이 맞다.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입법을 할 경우, 남북 부동산 갈등은 심각할 것이다. 심각한 투자 저해 요소도 될 수 있다. 물론 보상정책도 엄청난 재원을 요구한다. 수혜자 범위 축소, 보상금액 상한선, 연금지급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 통일의 길

슈미트 전 총리가 1989년 12월 15일 ‘차이트·Zeit’에 ‘독일의 당면 과제’를 기고했다. 이 글은 분단 시절, 장벽 붕괴 3개월 후 쓴 글이다. 요약한다. 한국 통일에 귀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1. 독일 통일정책을 선거용으로 이용하지 마라. 동독에서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도 아니요, 사회적 시장경제도 아닌, 바로 자유를 향한 의지인 것이다. 동독 주민들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교훈) 남북통일은 북한 주민의 자유의지에 달린 것이다. 2. 동독 주민은 무혈혁명이라는 걸작을 이뤄냈다. 이제 우리는 동독 주민들에게 신중함과 끈기 그리고 인내라는 또 하나의 작품을 기대한다. 동독 주민들은 지금 즉시 전화, 팩스, TV, 인쇄기와 종이를 요구하라. 누구에게도 폭력을 사용할 구실을 주지 말고, 자유주의 운동의 자정능력을 믿으라. (교훈) 남북통일 과정에서 폭력·무력은 절대 안 된다. 내전은 치유하기 힘들다.

3. 당장은 동독 경제가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서독 형제들이 도와줄 준비가 됐 있다. 이를 믿고, 원하는 바를 말하라. 자본주의는 인간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아니다. 겁먹지 마라. (교훈) 따뜻한 자본주의가 남북통일의 길이다. 4. 반(反)폴란드 선동에 현혹되지 말라. 더는 새장 에 갇혀 살 수 없다. 민족 상호간에 적개심을 선동하는 작태에도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교훈) 남북통일은 겸손이다. 선동은 자기 이익 때문이다. 5. 잊지 말자. 언젠가 유럽이 하나의 집을 짓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교훈) 동아시아 평화와 세계평화가 한민족 염원이다. 우리 헌법에 명시돼 있다.

슈미트가 저서에서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서문 내용이다. 요약하면, ▷미국·러시아·중국은 북한이 아홉 번째 핵보유국이 되고, 더 나아가 일본까지 열 번째 핵보유국이 되는 사태를 원치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강대국 미·러·중의 동의와 참여 없이는 한국 통일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버팀목 역할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수백 년간 자라온 민족의식은 말살될 수 없다. 한국의 염원은 당연한 것이다. 반만년 역사의 한국 민족이 다시 한 지붕 아래에 모이게 되리라 믿는다. ▷통일 기회가 도래할 미래의 그 날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드린다.

독일 분단은 우리보다 늦다. 1961년 8월 13일이었다. 그러나 1989년 10월 9일 28년 만에 분단을 끝냈다. 총성 한 발 없이,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뤘다. 우리는 수많은 국난극복 경험이 있다. 70년 동안 성숙한 민주시민 의식도 성장하고 있다. 통일 의지는 가슴에 살아 있다. 철조망 걷히는 날, 우리 국민은 충분히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다. 자유로운 의지로 실천할 것이다. 겸손과 열린 마음도 준비돼 있다. 북한의 낙후된 사회기반시설에 대규모 투자도 이뤄질 것이다. ‘아리랑 DNA’는 우리 민족의 저력이다. 앞으로 50년 다 같이 한 마음으로 가자! 국제사회와 함께 가자. 통일에는 여야가 없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도 절대 잊지 말자.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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