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공장 사고로 장애 안아
- 盧 강의 듣고 인권 변호사 길로
- 박근혜 하야 외치며 팬덤 형성
“국회의원 경력 한 번 없는 ‘변방의 아웃사이더’ 저 이재명에게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겨 주셨습니다.”
지난 10일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뒤 감사 연설에서 언급한 대로 이재명 후보는 흙수저 출신, 국회의원 경험 없는 비주류 정치인의 대명사로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걸어왔다.
1963년(호적상 1964년) 경북 안동 화전민 가정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뒤 경기 성남으로 이주했다. 13세 때부터 소년공 생활을 시작한 그는 야구 글러브 제작 공장에서 프레스에 왼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팔이 구부러진 평생 장애를 안게 됐다. ‘주경야독’으로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고, 1986년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들은 것이 노동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고 이 후보는 회고했다.
이 후보는 변호사 개업 후 시민운동에 올인했다.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해 이끌며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때는 당시 성남시장과의 전화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가 공무원사칭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고, 이후 2008년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됐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시정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3대 무상복지 정책(청년배당·무상산후조리 지원·무상교복)으로 전국적 관심을 불러모았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6년 촛불집회에 현역 정치인 중 가장 먼저 참석해 ‘박근혜 하야’를 외쳤고, 대중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하는 ‘사이다 발언’으로 견고한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하며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2017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다. 2018년 3월 성남시장을 사퇴하고, 같은 해 치러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경기도정을 이끌면서는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자신의 기본 시리즈 정책 어젠다를 하나씩 구체화하며 대권 재도전의 칼날을 갈았다.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으며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내몰렸던 그는 지난해 7월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10월 무죄가 확정되면서 족쇄가 풀렸다. 부인 김혜경 씨와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정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