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이 달라지고 있다. 출범초기 화물연대 파업사태에서 나타나듯 ‘친노동’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노사관계에 성의를 보였던 노무현 정권이 지하철·철도 파업에 이르러서는 대화보다 ‘법대로’를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의 개혁정책에 기대를 걸며 ‘정치파업’을 주도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 노조의 산별전환 무산, 철도·지하철의 ‘백기 항복’ 및 정부의 강경대응,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택하는 현장분위기가 겹치면서 향후 투쟁에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타협보다 ‘법대로’=노 대통령은 최근 “대기업 노동조합에 대해 특혜를 없애야 한다” “노사문제에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밝혀 노사관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재계로부터 친노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받아온 노 대통령은 철도파업만큼은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변화에는 지난 4월20일 정부가 해고자 복직 및 1인 승무제 철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했는데도 또 다시 파업을 강행한데 대한 ‘배신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철도 파업 사흘째인 지난달 30일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조합의 힘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일부 거대 노조는 너무 경직돼 있어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정부의 상황 인식은 철도파업에서 선 업무복귀 후 협상→파업농성장 공권력 투입→파업 미복귀 조합원 8천여명 대량 징계라는 초강경카드로 이어졌다. 지난달 부산·인천·대구지하철 파업에서도 정부는 파업 적극가담자를 중징계하는 등 강경대응으로 맞서 파업 조기종결을 끌어냈다.
갈수록 얼어붙는 경기상황도 청와대가 노조파업에 엄정 대처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노동부 관계자는 “투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장 엔진’의 재가동이 불가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관계 안정이 필수적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도 대화와 타협에 무게를 두기보다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노동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여름투쟁 ‘소강상태’=철도파업이 해결됨에 따라 이달부터 시작될 임단협 투쟁의 강도도 약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노동계와 정부 모두 개별 사업장의 임·단협 파업에 대해서는 적극 개입하지 않고, 노사간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조흥은행이나 철도사태처럼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현재 임단협으로 분규가 진행중인 사업장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34곳의 사업장으로 나타났다. 노동쟁의에 참가하고 있는 근로자는 1만4천6백71명으로 집계됐다. 부산에서는 한진중공업을 제외하면 대규모 마찰을 빚을 사업장이 거의 없는 상태다.
한국노총은 “이달중에는 조흥은행이나 철도노조 파업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없다”고 말해 투쟁수위가 높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민주노총도 철도사태로 다소 격앙된 분위기를 보이면서 투쟁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시기집중 연대파업’이라는 초강수를 쉽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금속연맹 개별 사업장들의 임단협 투쟁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쟁의행위 찬성투표율이 54.5%로 저조하게 나왔고 현대차·대우해양조선의 산별전환도 실패하면서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여름투쟁은 당분간 소강상태를 맞겠지만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께에는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동계의 주요 요구가 △경제특구법 폐기 △비정규직 차별 철폐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 △고용허가 및 주5일제 도입 등 정부 정책과 맞물리면서 노·정 충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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