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 모빌, 코노코필립스 등 거대 석유업체들이 최근 유가 급등으로 잇속만 채우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많은 비용을 새 유전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고 주장해 왔으나 실제로 자사주 취득 등을 통해 투자자와 임직원들을 위해 많은 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라이스대학 '제임스 베이커 3세' 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 5대 석유업체들은 지난 한해 동안 벌어들인 수익의 55%를 자사주취득과 배당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0년 25%에 비해 갑절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들 회사의 자사주 취득과 배당금 지급에 쓴 돈은 1993년 당시만 해도 전체 수익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새 유전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의 비중은 지난 수년간 한자릿수 중반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사주취득은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을 다시 사들여 주가를 올리는 수법으로, 거대 석유업체들 마저 이처럼 자사주취득에 지나친 열을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 업체 임원들의 급여 수준이 대개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등으로 주가에 연동돼 있어 도덕성 논란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이 올해 1/4분기에 자사주취득에 쓴 비용은 모두 88억 달러(약 8조9540억 원). 하지만 같은 기간 진행된 유전 탐사 등 다른사업 예산은 모두 합쳐도 55억 달러에 불과했다. 미국 에너지 업체 코노코필립스도 올해 2분기에 유전탐사 예산의 9배에 달하는 25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노코필립스가 향후 5년간 유전 탐사 등에 250억~30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지만, 지난 한해 동안 무려 320억 달러를 자사주 취득에 사용한 점을 감안하면 큰 돈이 아니다.

'제임스 베이커 3세' 연구소의 에너지 전문가 에이미 마이어스 자페는 "과도한 주가관리가 결국 세계 석유시장 점유율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거대 석유기업의 세계 석유시장 점유율은 지난 수십년간 계속 하락세를 그려 현재는 10% 미만에 머물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나 베네수엘라 등의 국영 석유업체 점유율은 80% 이상으로 늘어났다.

석유기업들이 1990년대 초에 비해 4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유전 탐사 및 개발에 투자를 꺼리는 것은 지표에 가까운 육상유전이 거의 고갈돼 새 유전 개발이 비싼 사업이 됐기 때문이다. 운좋게 유전을 찾아내더라도 수익창출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실제로 지난달 문을 연 멕시코만 썬더호스 유전의 경우 완공에만 9년이 걸렸으며, 건설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엑손모빌의 앨런 제퍼스 대변인은 "투자의 판단기준은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투자인지 여부"라면서 "남는 돈이 있다면 (배당을 통해)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