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극지 연구선인 아라온호가 지난해 9월 북극 생태계 조사를 위해 북위 82도19분의 북극해빙에 정박해 있다. '아라온'은 바다를 뜻하는 순 우리말 '아라'와 모두, 전부를 뜻하는 '온'의 합성어로 총톤수 6950t인 아라온호는 우리나라 국적의 최초 쇄빙선이기도 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 제공

◇지구의 마지막 보물창고

- 아시아 ~ 유럽 8000㎞ 단축
- 세계 석유·가스의 25% 매장

◇앞서가는 열강들

- 러시아·중국·일본 중심으로
- 항로횡단·연구활동 각축전

◇훨씬 뒤처진 한국

- 아라온호 과학조사 정도뿐
- 부산항 변화 등 대책 세워야

2009년 위성 사진을 통해 극지 변화를 판독하던 NASA (미 항공 우주국) 설빙자료센터 요원들은 경악했다. 북극에서 가장 오래되고 두꺼운 만년빙들이 1년 새 절반 이하로 줄어 250만 ㎢만 남은 것이다. NASA 관계자들은 "남은 유빙이나 빙산들도 너무 얇아져 헐리우드 세트장 같았다"며 "2012년께면 빙하가 일시적으로 모두 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관측은 맞아 떨어져 지난해 9월 북극항로 구간의 전체 얼음이 한때 녹은 적이 있다. 이에 맞춰 북극항로를 향한 각국의 각축전도 해빙 속도만큼 빨라지고 있다.

■석유 등 자원의 보고

북극지역을 거쳐 태평양 대서양을 잇는 국제항로는 캐나다 북부해역을 통과하는 북서항로와 시베리아 북부해안을 끼고 가는 북동항로로 구분된다. 북동항로가 우리나라가 이용할 수 있는 북극항로(Nothern Sea Route)이다.

북극항로의 최대 장점은 아시아에서 유럽을 갈 때 둥근 지구를 빙돌아서 가는 게 아니라 북극을 거쳐 최단거리로 가는 경제성이다. 동북아시아~인도양~수에즈 운하~지중해~대서양~유럽으로 가는 전통 항로가 아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8000㎞의 단축 효과로 운항시간도 24일에서 14일로 줄어든다. 컨테이너 운송을 기준으로 25~30% 가량의 물류비 절감 효과가 가능한데 고유가가 지속될수록 이 효과는 더 커진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해빙 속도로 볼 때 늦춰 잡아도 2020년엔 6개월, 2025년 9개월, 2030년이면 연중 내내 일반 선박의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뿐 아니다. 북극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양으로 지구 면적의 3.3%를 차지하지만 전 세계 석유·가스의 25%가 매장돼 있고 철광석 니켈 구리 등 각종 광물이 풍부한 자원의 보고다. 해운 관계자들이 "얼음이 녹아 쇄빙선 이용료 부담이 사라질 때면 그야말로 해양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게 이 때문이다.

■선점 경쟁 불붙었다

지난해 북극항로를 오간 배는 46척이다. 2009년 2척, 2010년 4척에서 폭증한 것이다. 주역은 북유럽 국가와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이다. 러시아는 구 러시아제국 시대부터 부동항 확보에 사활을 걸었던 만큼 북극 항로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러시아는 2008년부터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3단계 계획을 추진 중인데 항로와 기상 지질 등을 연구하는 1단계 계획은 이미 끝내고 현재는 2015년을 목표로 북극항로 관리시스템을 만드는 중이다. 러시아는 2011년 한 해만 해도 북극항로를 이용해 인천항과 충남 대산항 등을 8차례나 오갔다.

전통적인 해양 강국인 노르웨이나 독일의 관심도 높다. 독일은 2009년 7월 울산항에서 건설자재를 실은 2척의 화물선을 출발시켜 블라디보스토크와 베링해를 거쳐 북극해를 가로질러 50여 일 만에 로테르담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뤘다.

동북아 허브항만 자리를 놓고 숙명적인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는 중국이나 일본도 사정은 같다. 물동량 기준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항만을 5, 6개나 갖고 있는 중국은 내륙 운송 등 다양한 물류 루트를 내세워 애초 북극항로 개척에 미온적이었으나 지금은 쇄빙선 쉐룽호가 북극해를 횡단한 데 이어 자체 쇄빙선 건조 착수, 민간과 정부, 군이 모두 참여하는 국립해양국 설립 등 북극항로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북단인 홋카이도 일부가 북극해와 인접한 일본은 이미 1980년대부터 민간을 중심으로 북극해 연구가 활발했는데 노르웨이 덴마크 러시아 등과의 공동연구 공동운항에도 적극적이다. 이미 지난해 300여 명이 참여하는 답사단을 파견, 북극항로 사전 조사에 들어갔으며 북극항로 이용 확대와 관련 항만 개발 등을 위한 내각 차원의 위원회 설치와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오가는 타국 선박 쳐다만 볼건가"

"북극항로의 중요성에 대해 학계나 해운·조선업계 정부 모두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발등의 불'처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는 사이 부산항을 비롯한 국내 주요 항만들은 남의 나라의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시험 항만이 되고 있다."(남청도 한국해양대 교수)

우리나라가 북극항로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8년 건국 60주년 경축사에서 북극해 진출을 선언한 뒤 '북극항로 상용화 사업'을 국정과제로 추진해 왔다. 또 노르웨이, 그린란드 자치정부 등과 자원개발 및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거나 상호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뿐이다.

아라온호가 남극해와 북극해를 오가며 연간 30~40일씩 연구활동을 하지만 이는 극지생물과 유빙 등을 연구하는 과학조사 활동으로 러시아 중국 노르웨이 일본 등이 시도하고 성공하기도 한 상업운항 시범운항 항로 개척 등과는 거리가 멀다. 시범운항만 해도 국내 주요 선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도 10억여 원에 달하는 운항 비용을 전액 조달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올해로 늦춰진 상태다. 국가적 차원에서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데다 항로 개척 때 수반되는 리스크를 보전하거나 최소화할 제도적 장치도 없는 탓이다.

이런 사정은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도 마찬가지다. 부산시는 최근에야 북극해를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는 해상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해양플랜트지원기지 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남청도 한국해양대 교수는 "실어나를 화물 자체가 달라지는 데 따른 부산항 항만 성격의 변화, 운항 노하우 습득 등을 준비하려면 당장 장·단기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순익 선임기자 marine@kookje.co.kr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